‘치즈 열풍’에 외국산만 불티…국산 유제품 생산지원 확대 절실
외국산이 점령한 국내 치즈시장…자급률 높일 대책은
미국·뉴질랜드·EU 등 한국시장 공략에 총력 맞춤제품 개발·홍보 열 올려
한국시장 ‘세계 최고’ 성장세 소비량 6년 새 56% 늘었지만 국산 자연치즈 점유율 4%뿐
FTA로 관세철폐 확대되고 무관세물량 늘어 상황 심각
유업체엔 저렴하게 공급하고 생산원가 보장할 정책 있어야 국산 치즈 생산기반 확대 가능

우리나라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미국·뉴질랜드·유럽연합(EU) 등 낙농선진국들이 최근 국내 치즈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최근 6년간 연평균 9%씩 성장할 만큼 한국의 치즈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커지고 있어서다.

문제는 늘어나는 치즈 소비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산 치즈의 생산기반 확대를 더이상 미루면 우유 자급률 50% 선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치즈는 효소나 균을 우유 등 동물의 젖에 넣어 단백질을 응고시켜 만든 발효식품이다.

◆ 낙농선진국, 한국시장 공략 강화=미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미국유제품수출협의회(USDEC)는 미국 우유 생산량의 15%인 수출 규모를 2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에 따라 한국 치즈시장에서 미국산의 점유율을 높이는 데 힘을 쏟고 있다.

USDEC는 11월 초 서울에서 ‘미국 낙농의 비즈니스 및 혁신 컨퍼런스’를 열고 미국산 치즈의 소비촉진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톰 빌세크 USDEC 회장은 개막연설에서 “한국은 멕시코에 이어 두번째로 큰 치즈시장”이라며 “한국의 유제품 소비 트렌드에 맞춘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공급을 확대해나가겠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USDEC는 또 한국시장 내 유통망을 개선, 고객서비스를 개선하는 데도 노력하기로 했다. 미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한 수출업자는 “(USDEC가) 최근 한국 내 판매점을 개설한 것은 물론 유제품 보관장소도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역시 한국시장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뉴질랜드 낙농업협동조합기업인 폰테라 한국지사 측은 조만간 한국시장을 겨냥한 피자용 치즈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한국지사에 근무하는 인력을 보강한 데 이어, 더 많은 치즈제품을 배송하기 위해 보관창고도 사들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U도 마찬가지다. 특히 아일랜드는 16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서울호텔에서 ‘한·아일랜드 지속가능한 유제품 포럼’을 갖고 자국산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의 우수성을 국내 소비자에게 홍보했다.

◆ 한국시장은 아시아 진출 위한 ‘테스트마켓’=낙농선진국들이 이처럼 한국시장 공략에 나선 이유는 국내 치즈시장이 전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EU와의 FTA 발효 직전연도인 2010년만 해도 8만8000여t이던 치즈시장은 지난해 13만8000여t으로 56% 이상 성장했다. 발효 후 6년간 연평균 9% 이상의 성장률을 보인 것이다. 같은 기간 흰우유 소비량이 154만t에서 156만t으로 정체상태인 점을 감안하면 치즈 소비량의 성장세는 매우 큰 셈이다.

특히 한국이 아시아 치즈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테스트마켓(시험 시장)이라는 점도 한국을 공략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계적인 시장조사기관인 민텔(Mintel)은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소매점이나 음식점에서 다양한 형태와 맛을 가진 치즈를 접할 기회가 많아 치즈에 대한 한국 소비자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낙농선진국의 표적이 될 정도로 국내 치즈시장은 급성장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치즈 수요량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낙농진흥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유제품으로 만드는 가공치즈를 제외한 국산 자연치즈 생산량은 4200여t으로 전체의 4%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해 국내 자연치즈시장의 96%를 외국산이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현상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1년 한·EU FTA를 시작으로 미국(2012년)·호주(2014년)·뉴질랜드(2015년) 등과의 FTA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 관세가 점진적으로 철폐되고 무관세물량도 확대되기 때문이다.

◆ 가공용 쿼터 설정으로 국산 유제품 생산 늘려야=국산 치즈의 생산기반을 서둘러 확대하지 않으면 지난해 53%였던 우유 자급률이 50%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따라서 낙농산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도모하려면 늘어나는 치즈 수요량의 일정 부분을 자급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1인당 연간 치즈 소비량은 2010년 1.8㎏에서 지난해 2.8㎏으로 늘었다. 치즈 100g을 만드는 데 약 1㎏의 우유가 필요한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우유 28㎏을 먹은 것과 같다. 지난해 1인당 흰우유 소비량(32.7㎏)의 86%에 달하는 양이다. 결국 외국산 치즈를 국산으로 대체하면 국내 낙농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국내 원유값이 많게는 외국산보다 3배 이상 비싼 상황”이라며 “정책적인 지원이 없는 한 치즈 생산기반 확대를 통한 자급률 제고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남아도는 원유(原乳)량에 따라 치즈 등 국산 유제품 생산을 지원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조석진 한국낙농육우협회 낙농정책연구소장은 “전국단위쿼터제를 도입하고 별도의 가공용 쿼터를 설정, 치즈 등 국산 유제품 생산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공용 쿼터 설정은 낙농가에게 생산비 수준의 가격을 보장하고, 유업체엔 국제 경쟁가격으로 판매하면서 발생하는 차액을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한·EU FTA 체결 후 수입량 62% 급증 183만여t…국내 원유 생산량 89% 달해
외국산 유제품 얼마나 들어왔나
치즈 가장 많아…66% 차지 우유·유제품 국내 자급률 6년 새 65→53%로 떨어져
 

국산 원유(原乳)가 남아도는데도 외국산 유제품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유제품은 원유를 가공해 상품화한 것 모두를 일컫는다.

관세청에 따르면 2016년 원유로 환산한 유제품 수입량은 183만2000여t으로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직전연도인 2010년 113만4000여t보다 62% 늘었다. 지난해 국내 원유 생산량(207만t)의 89%에 달하는 규모다.

종류별로 보면 치즈 수입량이 전체의 66%인 121만8000여t으로 가장 많고, 혼합분유 30만2000t, 탈지분유 26만6000t, 전지분유 2만8000t, 조제분유 1만5800t이었다. 혼합분유는 제빵·제과·아이스크림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 분유는 유업체가 우유(백색시유)와 유가공제품을 만든 후 남는 원유를 말려 가루로 만든 유제품을 일컫는다. 전지분유는 우유 그대로를 말린 분말이고, 탈지분유는 우유에서 지방을 빼낸 뒤 말린 것이다.

국내 우유·유제품 총소비량 중 외국산 유제품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만 해도 35%였던 외국산 유제품 비중은 지난해 47%로 12%포인트나 늘었다. 지난해 우유·유제품 자급률이 53%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는 우리와 가까운 일본의 자급률 63%(2014년 기준)와 견줘도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외국산 유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흰우유 소비 중심인 국내 낙농업이 쪼그라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같은 추세라면 (원유로 환산한) 유제품 수입량이 국내 원유 생산량을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인 만큼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민신문 11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