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도 낙농의 선구자들* 
                                          –꾸로자와 도리조(黑澤 酉蔵)의 낙농철학을 중심으로-

                                                                                       낙농정책연구소 소장(영남대 명예교수) 조석진

  2015년 현재 일본 전체 원유생산량의 53%를 차지하는 북해도 낙농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선구자들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 가운데서도 꾸로자와 도리조(黑澤 酉蔵)의 낙농철학이 지니는 의미는 오늘날 어려움에 직면한 국내 낙농에 있어서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 같은 의미에서 북해도 낙농의 역사와 그 과정에서 꾸로자와가 보여준 낙농지도자로서의 역할과 발자취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북해도 개척>

  일본의 북방영토인 북해도에 대한 개척은 1869년 명치(明治) 정부가 북해도개척을 위해 개척사(開拓使)를 파견함으로써 시작된다. 이는 일본이 그동안 쇄국으로 늦어진 군사력과 경제력강화를 위해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면서 북해도의 풍부한 자연자원에 주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유사한 시기에 구소련은 1850년대부터 태평양으로의 진출을 꾀하면서 북해도의 부동(不凍)항인 하코다테(函館)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에 일본으로서는 북해도의 국경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도 북해도개척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1868년에 출범한 명치정부는 북방영토를 지키기 위해 1874년 둔전병(屯田兵)을 포함한 이민정책을 시행하였다. 즉,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는 이민자에 대해 토지를 무상으로 대여 또는 불하하여 농업생산을 독려하였다. 이에 대부분의 이민자가 처음에는 일본 본토에서와 마찬가지로 쌀 생산을 중심으로 영농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 본토와 기후조건이 다른 북해도에서의 쌀 생산은 냉해로 인해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그런 가운데 당시 북해도 개척사(開拓使) 차관이었던 꾸로다기요다카(黒田清隆)는 미국농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1871년 직접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 때 마사츄세스주 출신의 농무국장관 Horace Capron을 북해도 개척사의 고문으로 초빙하였다. Capron은 1875년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북해도의 농업발전을 위해 다양한 조언을 하였다. 그 가운데 북해도의 기후, 토질 등을 감안할 때 쌀 생산은 부적합하며, 넓은 토지를 이용한 밀 생산과 축산을 장려할 것을 주문하였다. Capron의 조언을 받아들인 북해도 개척사는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의 Edwin Dun의 도움으로 1876년 6월 삿포로 마코마나이(真駒内)에 최초의 서양식목장을 설립하였다. 아울러 81ha의 초지를 조성하여 젖소사육을 시작함으로써 북해도에 낙농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북해도낙농의 선구자들>

  삿포로에 서양식목장이 설립된 것과 같은 해인 1876년 9월 「삿포로농학교(현 북해도대학의 전신)」가 설립되었고, 초대 부교장으로 미국 마사츄세스 농과대학의 클라크 박사(William Smith Clark)가 취임했다. 현재 북해도대학 구내의 「목장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우사 및 낙농관련 각종 농기계 등은 당시 주로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것들이다. 이 때 삿포로농학교의 2기생이었던 마치무라긴야(町村金彌)는 졸업 후 1881년에 마코마나이(真駒内)목장에서 근무하게 된다. 당시 삿포로 농학교의 관비(官費)생이었던 마치무라의 동기생으로는, 훗날 유엔사무차장을 지낸 니도베이나조(新渡戸稲造), 사상가인 우치무라간죠(内村鑑三), 식물학자인 미야베깅고(宮部金吾), 북해도대학의 2대 총장을 지낸 미나미다카지로(南鷹次郎) 등 쟁쟁한 인재들이 있었다.
  한편 마코마나이(真駒内)목장에서 근무하던 마치무라긴야(町村金彌)는 1885년 우츠노미야젠타로(宇都宮仙太郎)를 목부로 받아들인다. 그 후 우츠노미야젠타로는 1887년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 주립농사시험장 및 주립 단기대학에서 선진낙농을 공부하였다. 그 후 1890년에 귀국하여 마치무라긴야(町村金彌)가 지배인으로 있던 우류하치스가(雨竜蜂須賀) 농장의 소 담당 계장으로 취직한다. 그러나 마치무라는 1891년에 독립하여 자신의 목장을 설립하여 종축목장으로 발전시킨다. 그리고 1905년에는 또 한 명의 북해도낙농의 선구자인 꾸로자와 도리조(黑澤酉蔵)를 목부로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마치무라긴야(町村金彌)-우츠노미야젠타로(宇都宮仙太郎)-꾸로자와도리조(黑澤酉蔵) 등으로 이어지는 북해도 낙농의 선구자들은 당시 미국과 덴마크를 벤치마킹하면서 초창기 북해도 낙농의 기틀을 확립했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마치무라긴야의 장남 마치무라히로다카(町村敬貴)는 삿포로농학교 졸업 후 10년간(1906~1916) 미국에서 낙농을 공부했다. 즉, 위스콘신주에서 목장실습을 거친 후 위스콘신 주립농과대학에서 낙농을 전공한 후 1916년 귀국하였다. 그리고 이듬해인 1917년  「마치무라농장(낙농목장)」을 개설하였다. 우츠노미야젠타로(宇都宮仙太郎) 또한 1925년에는 자신의 장남 우츠노미야츠도무(宇都宮勤)를 미국으로 보내 선진낙농을 배우게 한 뒤 1927년에 귀국시켜 목장경영을 맡긴다. 현재 마치무라농장은 삿포로 인근의 에베츠시(江別市)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후손 마치무라히도시(町村均)에 의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주로 낙농의 6차산업화를 통해 도쿄, 오사카, 삿포로 등 전국 주요도시에 지점을 두고, 다양한 유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올해로 농장설립 99년째를 맞으며, 북해도 낙농선구자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꾸로자와의 북해도행> 

  청년 꾸로자와는 1885년 일본 이바라기(茨城) 현에서 태어나 20세가 되던 1905년에 북해도로 건너간 꾸로자와는 우츠노미야젠타로(宇都宮仙太郎)의 목장에서 목부로 처음 낙농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꾸로자와는 우츠노미야의 유명한 「낙농삼덕(酪農三德)」과 덴마크의 협동조합정신을 전수받는다. 그 가운데 ‘낙농삼덕’이란 당시 낙농을 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좋은 점(三德)’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관가에 머리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의 북방영토인 북해도에는 둔전병(屯田兵)을 파견하여 영토수호와 영농활동을 병행토록 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가운데 본토에서 많은 빈곤계층이 일종의 개척지라고 할 수 있는 북해도로 이주해 옴으로써 질서유지를 위해 군인을 포함한 관가의 역할이 컸다. 그런 가운데 낙농을 하면 굳이 관가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가 없어 좋았다는 것이다.
  둘째,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낙농은 가축인 젖소를 상대로 우유를 생산하는 삶이다. 따라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으며, 오로지 성실히 노력한 만큼의 보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의 건강에 좋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식량사정이 좋지 않았던 당시에 우유는 귀한 식품이었다. 아울러 우유가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우유를 생산한다는 것은 건강한 식생활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생산활동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낙농가로서의 삶>

  우츠노미야로부터 이 같은 교육을 받은 청년 꾸로자와는 24세가 되던 1909년 마침내 젖소 한 마리를 시작으로 독립하여 낙농가의 길로 들어선다. 그 후 낙농을 하면서 「북해도축우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이 때 종전(終戰) 후 식량난이 심화되면서 외국으로부터 분유를 포함한 저가의 유제품이 무관세로 대량 수입되었다. 따라서 저장성이 없는 원유가 남아돌면서 원유를 폐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꾸로자와는 1925년  스스로 유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기 위해 「북해도제락판매조합(北海道製酪販売組合)」을 설립하였으며, 이를 확대하여 「북해도제락판매조합연합회(酪連)」를 만들었다.
  이때 꾸로자와는 이미 낙농이 지니는 산업적 특성을 감안하여 「일원집유」를 통해 유업체와의 원유거래에 있어서 대등한 거래교섭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였다. 아울러 생산자의 유가공에의 참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위해 협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그 결과 버터를 중심으로 유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고, 그 수익을 조합원에게 배당하는 사업을 실시하였다. 그 후 이 연합회는 1950년에 주식회사 「유키지루시유업(雪印乳業)」으로 발전하였다. 그 같은 이유로 현재까지 유키지루시버터는 일본 내에서 소비자에게 가인기가 높은 버터제품이다. 그뿐 아니라 2000년 유키지루시유업의 가공유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키지루시유업은 일본유업계의 선두를 지켰다. 그러나 가공유사건 이후 한 때 어려움에 직면했던 유키지루시유업은 2009년부터 「유키지루시 메구밀크」로 변신하여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삿포로 유키지루시종묘(雪印種苗)의 구내에 있는 꾸로자와가 세운 기념비>

<건토건민(健土健民) 사상>

  북해도 낙농의 지도자가 된 꾸로자와는 한랭지인 북해도농업에 있어서 「적지적산(適地適産)」과 「순환농법(循環農法)」에 관심을 가지면서 건토건민(健土健民) 사상에 몰입하게 된다. 즉, “건강한 토지에서 생산된 양질의 농산물이 국민을 건강하게 한다.”는 취지의 사상이다. 이는 당시 점차 화학비료와 쌀 생산에 편중되어 있던 ‘전국 획일적’인 농정으로는 북해도농업을 살릴 수 없다는 경종을 울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건강한 국민은 건강한 식생활로부터, 건강한 식생활은 건강한 농업으로부터, 건강한 농업은 건강한 농지로부터, 건강한 농지는 건강한 농민으로부터, 건강한 농민은 건강한 심신(心身)으로부터」를 주장하고, 이를 위해 우선 마음의 밭(心田)을 비옥하고, 건강하게 유지할 것을 주장하였다. 또한 낙농과 건토건민(健土健民)에 대해서는 ‘낙농은 유우를 중심으로 하는 유축기계화농업으로, 각종 농업형태 중 최고의 과학영농’이라고 규정하였다. 아울러 북해도에서 낙농을 중심으로 하는 유축농업이야말로 냉해의 위험에서 벗어나 건토건민(健土健民)의 결실을 위한 적지적산(適地適産)의 농법임을 설파하였다.

<교육자로서의 삶>
 
  낙농을 주축으로 하는 북해도의 농업발전을 위해 인재양성이 불가피함을 인식한 꾸로자와는 마침내 1933년 「북해도낙농의숙(北海道酪農義塾)」의 설립을 시작으로 낙농교육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후 1942년에 「노호로기농학교(野幌機農學校)」를, 1948년에는 통신교육을 통한 「노호로고등낙농학교(野幌高等酪農學校)」와 현재의 「일본낙농청년연구연맹」의 전신인 「북해도낙농청년연구연맹」을 설립하였다. 이어서 1949년에는 「낙농학원 대학부」를, 1950년에는 「낙농학원 단기대학」을, 1957년에는 「재단법인 낙농육영회」를, 1958년에는 「낙농학원여자고등학교」를 각각 설립하였다. 그리고 1960년에는 마침내 「낙농학원대학 낙농학부 낙농학과」를 설립하여 낙농분야의 고급인재양성에 매진해 왔다.
  현재 북해도 삿포로 인근의 에베츠(江別)에 위치한 낙농학원대학은, 「농식환경학군(農食環境學群)」과 「수의학군(獣医学群)」으로 대별된다. 그리고 「농식환경학군(農食環境學群)」은 다시 『순환농학류(循環農學類)』、『식 및 건강학류(食と健康學類)』, 『환경공생학류(環境共生學類)』의 3개 학문분야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낙농 및 축산분야는 『순환농학류(循環農學類)』에 소속되며, 현재까지 전술한 꾸로자와의 「순환농법(循環農法)」 및 「건토건민(健土健民)」 사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꾸로자와는 북해도의 낙농발전을 위해 자신의 낙농철학을 교육이념으로 구현시킨 셈이다. 그 결과 그의 이 같은 낙농철학은 현재도 북해도낙농에 있어서 후세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한편 이 과정에서 꾸로자와는 종전 후 농업국 덴마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1개월 동안 덴마크에 체재하면서 덴마크농업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리고 1952년에 『일본농업의 나갈 길 –농업국 덴마크-』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농업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서 덴마크 농업역사의 교훈으로 자조(自助)정신과 농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전후 일본의 식량문제해결 및 이를 위한 축산의 중요성과 축산을 통한 국민식생활의 질적 개선을 위한 낙농 및 농업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정치가로서의 삶>

  북해도에 정착하여 낙농가로 출발한 꾸로자와는 협동조합운동 및 교육자로서의 삶과 함께 마침내 정치일선에까지 활동영역을 넓혀가며 북해도개발을 위해 노력하였다. 즉, 꾸로자와가 정치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1924년 북해도의회의원이 되면서부터이다. 그 후 그는 1942년에 중의원의원이 되면서 중앙정치무대에까지 진출하여 종전이 되던 해인 1945년에는 「일본협동당」을 결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듬해인 1946년 종전과 함께 연합군사령부에 의해 ‘공직추방’을 당했으나 1950년에 ‘공직추방해제’를 맞아 1951년에 북해도 지사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다. 그 이후로는 1982년에 97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정치와는 거리를 두었다.

* 본고는 「월간 낙농·육우」 2016년 3월호에 투고한 내용임.

<참고자료>

1. 「先覺者たちの酪農哲學と現代」, 酪農総合研究所(1993. 6.21)
2. 「酪農學園史」, 酪農學園大學, 2003.10.
3. “健土健民”に虹を架けた農思想, 仙北富志和 강연록(2015.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