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간뎅이 부은 것 들여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아이구 힘들어 죽겄어. 장사는 안되구” “그만 혀. 못 살겄다 하면 더 힘만 드는 겨. 나라고 돈이 남아 돌아 가겠어..” “그래도 돈은 내야 되잖어” “3만원만 내면 돼.” “돈도 돈이지만 입고 갈 옷도 없어. 옷 사 입은 지도 오래돼서” “나도 똑 같어. 우리가 뭐 열 여덟 살 처녀야. 그냥 있는 거 입고 갔다 오면 되지.” 민자씨가 봄이라고 해서 꽃구경 가자고 먼저 누굴 꼬시기는 처음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읍네 사는 고등학교 동창생이 친한 몇몇이서 벚꽃 구경을 가는데 같이 가자면서 인원이 적으니 친한 사람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갑계든, 동창생이든 어디 놀러가자고 하면 못 간다고 빼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큰 돈 들이거나 며칠 가는 여행이 아니라면 어디든지 가고 싶었다. 나이 더 들어 몸 아프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생각을 하면서부터 생각이 달라진 거였다. 젊었을 때는 애들 키우느라 그럴 여유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놀러 다니는 게 즐겁지도 않았는데 나이가 사람을 바꿔놓은 거였다. 날씨가 한여름같이 더운 토요일 아침 민자씨는 수퍼댁을 데리고 여고 동창생이 나오라고 한 시외버스터미널 앞으로 갔다. 여자 나이 예순 전 후면 할머니 소리 듣는 이들도 많고 아무리 화장을 하고 화려한 옷을 입어도 이마와 눈가 그리고 목의 주름살은 속일 수가 없다. 민자씨 역시 터미널 화장실에 들어가 거울을 다시한번 봐도 어쩔 수없는 쉰 아홉 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관광버스에 오르고 나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차가 출발하는데 차안에 탄 여자들은 열 명 남짓했다. 회비는 3만원 밖에 안냈는데 그 돈으로 관광버스 임대비도 안될 터인데 어떻게 점심은 한식뷔페에서 하고 2차로 노래 하러도 간다니 이해가 안되는 일이었다. 차가 출발하자 여자들은 하나같이 핸드백에서 화장품을 꺼내 바르고 난리였다. 집에서 나올 때 다들 화장을 하고 나왔을텐데 한 시간도 안 지나서 거울을 보고 화장을 덧칠하는 게 참으로 별나 보였다. 그녀는 수퍼댁하고 나란히 앉아 귓속말로 말했다. “참 별난 여편네들이네. 저런다고 얼굴이 20대가 되냐구” “그러게 말여. 저기 맨 앞에 앉은 여자 좀 봐. 지가 무슨 탤런트나 되는지 스카프가 바닥으로 내려앉게 생겼네. 그리고 저기 세 번째 자리에 앉은 여자 좀 봐. 나는 저렇게 치렁치렁 늘어진 귀고리는 무거워서도 못하고 다니겠네. 다들 노망이 났나.” “유난 떠는 여자들이네. 요즘은 시골아줌마들이 더 멋을 부린다더니 그 말이 맞는가보네” 차에 올라탄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차가 대전시내로 들어갔다. 그러자 민자씨 친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둘이 같이 앉아있는 사람들은 따로따로 떨어져 앉으라고 했다. 민자씨와 수퍼마켓댁은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워하자 친구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아이구 이 나이에 우리가 여자들끼리만 뭐하러 떠나. 빨리 저 쪽으로 가서 앉아 얘. 너한테는 아마 근사한 남자가 갈 거야. 오민자 미모는 아직 살아 있잖아.” 그말이 끝나기 무섭게 버스는 대전역 광장에 도착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 열 두명이 차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듯 저마다 여자들 옆으로 가서 앉는게 아닌가? 수퍼댁 옆에는 안경 쓴 키 작은 남자가 앉았고 민자씨 옆에는 키가 크고 베이지색 면바지에 자켓을 걸쳐 입은 멋 좀 부리는 남자가 덥썩 앉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민자씨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 옆 좌석에 앉아있는 수퍼댁도 어찌할 줄을 몰라서 민자씨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물은 엎질러진 상황이니 도중에 차에서 내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여자들이 왜 버스 안에서 화장을 하며 호들갑을 떨었는지 그제서야 알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묻지마 관광이었던 것이다. 남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1년 전 대기업에 다니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요즘은 쉬고 있는데 몇 달 있으면 사회봉사단체에 나가 카운셀러로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란다. 남매를 다 대학 졸업시킨 터라 돈 들어갈 일도 없단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아내와 성격이 맞지 않아 퇴직 후에는 유난히 더 부딪히는데 생각 같아서는 이혼이라도 하고 싶은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캔을 따서 건네주고 진지하게 말을 하는 모습에서 민자씨는 그나마 안심을 했다. 비록 처음 보는 남자지만 매너가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퍼댁은 그 반대인듯 싶었다. 남자는 혼자서 열심히 떠들어대는데 그녀는 고개를 창으로 돌리고 무관심한 듯 보였다. 졸지에 말로만 듣던 묻지마관광을 하게 된 민자씨. 그녀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더욱 놀랐다. 한두 커플을 제외하고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부부처럼 팔장을 끼고 걷는 것은 기본이고 서로 입에 먹을 것을 넣어주고 어떤 여자는 아예 ‘자기야’를 입에 달고 말했다. 민자씨와 남자는 한발 짝 옆에 떨어져서 걸었다. 처음에는 낯설은데다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내심 마음이 두근거려 말도 못했는데 상대가 워낙 정중한 스타일이라서 묻는 말에 대답은 해야되겠다 싶었다. 문제는 수퍼댁이었다. 모두가 둘씩 떨어져서 벚꽃 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즐기는데 앞을 보고 뒤를 보아도 수퍼댁이 보이질 않았다. 점심시간이 되어 모이기로 한 한식뷔페로 들어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찾던 수퍼댁이 파트너인 남자와 철썩 붙어 앉아 밥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점심을 먹고 나자 버스는 다시 달려 시내로 들어가더니 ‘00 댄스클럽’에 도착했고 커플들은 들어가서 앉기 무섭게 춤을 추었다. 민자씨는 춤도 못추는 데다 상대와 진지한 대화만을 나누었기에 자리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면서 일행들이 노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상대 남자가 춤을 추겠냐고 제의했지만 그녀는 정중하게 거절했다. 잠시 그녀의 머릿속에 상대의 품에 안겨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지만 아니 될 일이라고 다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녁 8시가 되자 일행 여자들은 파트너였던 남자들과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읍네까지 오는 내내 여자들은 누구 파트너가 멋있었고 누구네 커플은 화장실 앞에서 키스를 하는 모습을 봤다며 깔깔깔 웃어댔다. 또 어떤 여자는 남자가 며칠 후 읍네로 오기로 했단다. 하지만 그녀는 집이 가까워질수록 겁이 나고 두려웠다. 남편의 귀에 들어가면 안되는데 행여라도 소문이 들어가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근사하고 매너 좋았던 상대 남자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다지 불편한 하루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했지만 어찌됐든 묻지마여행이었으니 남편에게는 죄를 지은 건 사실 아닌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심기가 불편한 듯 말했다. “꽃구경이 아니라, 바람 피우러가는 인간들이 더 많다더구먼” “그게 무슨 말여유. 시방 나보고 하는 말여유” “그게 아니구 아까 TV보니까 ‘묻지마 여행’이라던가 뭐 그런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더라구. 거 어디여. 아예 손잡고 춤추는 모습까지 다 나오더구먼” 이쯤 되니 민자씨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혹시 자신들 일행의 모습에 화면으로 나온 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는 어디라고 혀유. 우리들 간 데는 그런 사람들 찾아볼 수도 없더구먼”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긴 어디여 000산이지. 아이구 나이 들어서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손잡고 다니며 뭐 먹여주고 하는 짓들 보니까 세상 말세더라구. 신랑 있는 여편네들이 간도 크지 어디 외간남자와...쯔쯔” 민자씨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이 멍해졌다. 다행이도 자신이 다녀온 곳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는 특별한 부정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하고 나서 남편에게 아무일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거짓말을 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처음 알았던 것이다. 그날 밤 민자씨 화장실에 가서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단다. ‘그려, 바람피우는 것들은 정말 간뎅이 부은 것 들여’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