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 회사서 짤렸냐?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아아이구 큰일 났구먼. 나이 들어 이젠 뭐 해서서 먹고 산다니. 거기다 빚까지 졌으면” “다 자업자득이야. 누가 남의 돈 빌려서 집장사하라고 했나. 물론 친구니까 안타깝긴 하지만 어쩌겠어. 누구 원망도 못해” “아들이 아직도 대학교 다닌다면서. 지금이야 힘들겠지만 학교 마치면 좋은 일 있겄지. 안그려” “야야 민자야 그런 말 말어. 옛 말에 서방 복 없는 년, 자식 복도 없다고 하자녀. 영순이 걔 작년에는 대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 사람 때려서 5천만 원 주고 간신히 합의 봤자녀. 딸은 올해 졸업하는데 글쎄 그 애도 남자하고 바람이 나서 학교도 휴학계 내고 부산으로 도망간 것을 억지로 잡아다가 졸업시켰잖아. 시집도 안간 지집애가 중절수술까지 했다니까. 그러니 영순이에 비하면 나하고 넌 복 받은 거야. 우리 딸은 시집갈 때 까지도 그랬고 가서도 내 속 한번 썩인 적 없거든.” “그러면 얼마나 좋냐. 나두 어떤 때는 딸 하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는데 남의 집 딸 속 썩인다는 소리 들으면 아이구 딸 없는 게 복이라는 생각도 든다니까. 머슴애들이야 사고 한 두번 안치는 놈들 있나. 그저 그러려니 하는데. 지집애들은 한번 사고 치면 인생이 빗나가니까” “어쨌거나 큰 일여. 경숙이 돈까지 5천 만 원 현자 돈 1억도 영순이가 날렸잖아. 은행 융자 뺀 돈까지 합하면 5억이 넘는다더라구. 아이구 걔는 간덩이도 크지. 나는 김치냉장고 하나 카드로 사는 것도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하던데...” “그려. 나두 그렇게 큰 돈 한번 만져보지도 못했구. 써보지 못했어. 학교 다닐 적에는 그냥 이쁘기만하고 순진했던 애였잖어. 세상이 사람을 바꿔 놓는다니까. 그나저나 어쩌냐.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구.” 1년 만에 걸려온 고향 친구의 전화는 또 다른 친구의 가슴 아픈 현실을 폭로하는 장이 되고 말았다. 민자씨 친구 영순씨는 남편이 오십도 못 넘기고 교통사고로 죽어 보험금 받아 화장품 가게하면서 아이들 가르치다가 장사가 안된다고 접고 나서 2년 전 재개발 지역에 있는 집 두채를 샀단다. 집 장사 좀 해보려고 했는데 작년여름 이후 집값 폭락에 경제위기까지 겹쳐 재개발 얘기가 들어가자 집값은 더 떨어져서 한 채에 3억 원씩 주고 산 연립이 이제는 1억 8천 만 원도 안된다고 했다. 그러니 1년 6개 월 만에 2억 4천 만 원을 날렸고 거기다 융자받은 돈 이자까지 합치면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도 겨우 될까 말까 한 상황이 됐다는 거였다. 게다가 친구들 돈을 끌어들였으니 고향친구들끼리 “내 돈 내놔라”, “지금 어디서 돈을 만드냐” 하며 싸우고 난리를 쳤다는 거였다. 민자씨도 요즘 피부로 느끼는 게 바로 경제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화 통화하는 사람마다 어찌된 게 하나같이 다 돈 돈 돈이다. 돈이 아니면 할 말이 없다. 그만큼 상황이 안좋다는 얘기인 것이다. 목장집 안주인 민자씨도 이것저것 생각하면 모든 게 돈과 연관되어 차라리 젖소 팔아버리고 이젠 쉬자고 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지만 목장 떠나서는 못산다는 남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젖소 키우는 일에 동참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두 아들 대학졸업 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으니 당장 돈 들어갈 일은 없어 조금 아껴 쓰고 살면 되지 않나 싶은 마음으로 큰 걱정은 덜하다. 하지만 아이들 한참 크는 집들은 도시든 농촌이든 힘든 것은 매한가지 아니겠는가. 물론 민자씨 마음도 아주 편한 것만은 아니다. 두 아들이 회사를 다니기 때문에 기업들이 감원을 한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연봉이 깎인다는 소리만 나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사실이다. 더욱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큰 아들은 차장으로 진급이 되느냐 마느냐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중인 것을 알고 있어 민자씨 마저 노심초사하고 있는 중이다. 오죽하면 며칠 전에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려운 시기에 진급은 안되어도 좋으니 회사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위로를 해주기도 했다. 예전처럼 고성장이 지속되고 과소비 얘기가 나올 정도의 호황이 지속되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로 허구헌 날 스트레스 받아 가며 살아야 한다면 이건 문제도 큰 문제인 것이다. 세계 경제가 다 어렵다고 난리이니 어려운 상황을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밝다는 식의 뭔가 미래가 보여야 하는데 그게 보이질 않으니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경제는 어려워도 봄은 오고 있었다. 해거름인데도 기온은 푸근하고 찬바람도 없는 오후였다. 남편은 축사를 둘러보고 거실로 들어오면서 뭐가 그리 즐거운 지 기분 좋은 얼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간밤에 꿈이 꿔지더니 뭐 좋은 일이 있으려나 감나무에서 까치가 어지간히 소리를 지르네.” “아이구. 평생 꿈 안꾸는 양반이 어쩐 일이래유. 로또 당첨 꿈이라도 꾼 거유.” “참 저 사람은. 아 벼락을 몇 번 맞고 살아나야 할 정도로 맞추기 힘들다는 로또 꿈을 그렇게 쉽게 꾸나.” “아이구. 욕심 같아서는 로또라도 당첨 됐으면 좋겠네유. 그러면 애들한테도 몇 억씩 떼어주고 우리도 맘 편하게 놀러나 다니며 살구 그러게.” “당신이야말로 꿈 꾸지마. 그냥 내가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게 좋은 거여. 그게 뱃속 편한거지.” 민자씨는 괜한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이 큰 욕심 없이 성실한 사람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욕심도 부려야 하는데 전혀 그러질 않았다. 몇 십 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이제 와서 욕심 좀 부리며 살라고 다그쳐서 뭐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날도 풀리고 했으니 보리밥이나 해서 나물에 비벼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민자씨 저녁 준비를 하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때 전화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점심 먹고 난 후 고향친구 영순이가 부동산 투기를 잘못해서 엄청난 돈을 날렸다는 씁쓸한 속식을 들었던 그녀로서는 이번 전화는 또 무슨 놀라운 일을 알려주는 전화일까 싶어 걱정이 앞섰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며느리였다. “아니 어쩐 일이냐 이 시간에.” “네 어머님 별 일 없으시죠.” “그럼. 우리야 뭐 별일 없지. 늘 니들이 걱정이지.” “아이구, 어머님은 . 저기요 어머님 그런데...” “그려 무슨 일 있냐” “그게요. 글쎄 짤렸어요” “뭐? 그게 지금 뭔 말여 짤리다니. 애비 회사서 짤렸냐. 엊그제 뉴스 보니까 감원이니 그런말 나오던데. 아이구 어떡하면 좋냐. 아니 왜 하필이면 애비가 짤리냐. 응. 아이구 못살아. 이 일을 어쩌면 좋냐.” 민자씨는 정말이지 앞이 캄캄했다. 아들이 회사에서 나오면 당장 뭘 해먹고 살까싶어 걱정이 몰려왔다. 설마 감원 태풍이 남의 집 일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자신의 아들의 일이 된 게 아닌가. 그녀가 너무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하자 며느리도 말이 없었다. “아니, 언제 그렇게 된 거여. 엊그제만 해도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더니. 아이구 내가 못살아. 퇴직금은 받았냐?” 순간 그래도 퇴직금은 얼마나 받았는지 궁금했다. 감원으로 짤리면 어떤 회사는 1년 치 아니면 2년치 연봉을 준다는 소리를 들었던 터라서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또 무슨 장난 같은 사건인가. 며느리가 말했다. “ 어머니 저기요. 그게 아니라 우리 성민이 팔에 난 그 혹 같은 거 왕사마귀 있잖아요. 글쎄 그게 신기하게도 방금 전에 목욕시키는데 그냥 뚝 짤려 나가더라구요. 그래서 수술 안시켜도 되겠다고 그 말이에요 ” 그날 저녁 민자씨 너무 놀랐다가 거꾸로 기분이 좋아져서 보리밥을 두 그릇은 비벼먹었다는 거 아닌가. 그것도 고추장으로 벌겋게 비벼서 볼에 코에 밥풀이 묻는 것도 모르고 마구 퍼 먹었단다. 체중 느는 것 쯤이야 신경도 쓰지 않고서 말이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