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배신이라구. 배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오민자씨 맞습니까?” “당신네들이 불러다 놓구 이름은 왜 물어 봐 . 싱겁기는” “여기는 신성한 법원입니다. 비아냥 거리면 안됩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남 굶어 죽게 만들어놓구. 뭔 얘기여. 글구 당신부터 나 한테 말 고분고분 혀. 자식뻘도 안되는 것들이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 혀. 검사면 다여” 그러자 검사는 기가 막히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고 옆에서 컴퓨터를 두들겨 대던 사무관은 벌떡 일어나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오민자씨. 말 함부로 하시면 곤란해집니다. 지금 왜 여기 와서 조사받는지 몰라서 하는 행동입니까” 그렇다고 기가 죽을 오민자가 아니었다. 그녀도 일어섰다. “싸가지 없는 정부가 소값 똥값으로 만들어서 그 책임 좀 지라고 청와대 마당에 송아지 몇마리 풀어놓았는데 그게 뭐 잘못여. 당장 우리 농가들 굶어죽게 생겼는데 어쩌란 말여. 총 칼 들고 쫓아가지 않은 걸 감사히 여겨. 글구 당신 월급 누가 주는 줄 알어. 우리 국민들이 주는 거여. 그런데 뭘 잘 났다구 월급 주는 사람 앞에서 큰 소리를 치고 지랄여. 시방 나하고 너 죽고 나 죽고 하자는 겨 뭐여” “이 아주머니가 정말 ....., 자리에 앉아요. 여기 법원이라고 했지요? 잘못해서 끌려온 사람이 뭘 잘했다고 큰 소리입니까?” “너 나한테 뭐라고혔어. 내가 뭔 잘못을 혔어. 이놈아. 새파랗게 젊은것이 어디 눈을 부라리고 지랄여. 니 애미한테도 그러냐 “ “이 아주머니가 진짜. 김 사무관 알아서 조사하고 있어” 30대 중반의 검사는 신경질투로 사무관에게 말하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러자 사무관이란 사람이 그녀를 자기 자리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아주머니 지금 여기서 저희와 소리지르며 싸우시면 오민자씨 입장만 더 힘들어집니다. 저희도 오민자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드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말씀 좀 아끼시고 묻는 말에만 답해주세요” “이봐유. 내가 뭔 소리를 질렀다고 그려. 저 새파란 검사가 내 성질을 돋구니까 그렇지. 검사 나는 안무서워. 검사고 국회의원이고 장관이구 간에 내가 원하는 건 우리도 먹고 살게 해달라는 겨. 나도 댁들한테 큰소리 내고 싶은 마음 손톱만큼도 없어. 하지만 왜 날 불러다가 지 맘대로 깨 까부르듯이 하냐구.” “아주머니 자꾸 이러시면 안돼요. 계속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제발 거기 자리에 좀 앉으세요. 커피한잔 드릴까요?” 사무관이 그녀를 살살 달랬다. 곱게 나오는데 점잖게 대해줘야지 어쩌겠는가. 민자씨는 입을 실룩거리면서 사무관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갑자기 의자가 푹 꺼지는 것 같더니 허공 속으로 사정없이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그녀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 사람은 대낮부터 꿈을 꾸고 그래” 민자씨의 얼굴 위에 남편이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그녀는 몸을 일으켜세우고 일어났다. “어- 얼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구먼. 점심 때 다 됐나유” “밥 생각도 없어. 아침 먹은 것도 소화가 안되었는데 뭐.” “허긴 나도 그렇네유. 마음이 편해야 소화도 잘 되는데......,” 거실로 나와 물 한잔을 들이킨 민자씨는 꿈에서 깬 것이 오히려 억울했다. 법원이든 국회든 청와대든 달려가서 낙농인들 가슴 썩어 들어가는 지금의 이 심정을 쏟아놓고 싶은 심정이다. 정말이지 말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수입쇠고기 때문에 한우와 젖소가 푸대접을 뛰어넘어 개값(?)이 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처음부터 국민들 생각과는 빗나가는 신정부는 그렇다고 치자. 국회의원들은 대체 뭐하는 것들이고 이제는 국민들까지 값싼 수입산 쇠고기로 배 채우려는건지 이해가되질 않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배신감 마저 느낄 정도다. 가뜩이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힘들게만 느껴지는 목장 일인데 한 겨울에 찬물을 뿌리다니 이건 상식밖의 상황인 셈이다. 속 답답한 그녀는 수다라도 떨어야만 숨통이 트일것만 같아 여고동창생인 현숙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고시절 단짝이었던데다 일년에 한두번 통화를 해도 늘 맘 편안하고 속내를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친구여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도 부담이 없었다. “현숙이냐.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지난번 송년회때 못나가서 아쉽지만 사는 게 이렇네. 이해혀라” “예, 민자야. 내 이름이 현숙이니. 벌써 치매 온 거야. 나 경숙이잖아.” 갑자기 민자씨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화번호를 그만 잘못 누른 거였다. “으~응. 아이구 미안허다. 내가 종종 이런다니까. 잘 있었어?” “그래. 생전 전화 한통 안하는 오여사가 전화를 다 주고 영광이다 얘. 그런데 너는 애들 다 키워 놓고 뭐 그리 바쁘다고 송년회에도 안 나오고 그러냐. 너 보고 싶어하는 애들 많더라. 왕년의 오민자! 야 이제부터 제2의 인생이야. 앞으로는 동창회든 모임이든 좀 자주 나와라 얘” “그려. 내가 촌에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 너는 아직도 보험회사 잘 다니냐?” “그럼 당연하지. 어머 얘 일하는 재미없으면 못살아. 돈이야 다음이고 일단 사람들 만나서 활동하다 보면 너무 재미있어. 어제는 우리 팀이 일등해서 기분으로 고깃집 가서 회식했잖아. 내가 팀장이니 한턱 낸거지. 뭐. 열 명이서 고기 실컸 먹었는데도 돈 이십 만원 가지고 뒤집어 쓰더라구. 이런 게 다 사는 재미지 뭐” “그려. 너같이 살아야 하는데. 고기는 뭐 돼지고기 먹었냐. 삼겹살 값은 비싸다고 하던데....,” “어머 얘는. 요즘 쇠고기 값 싼데 뭐 하러 돼지고기를 먹니. 어머 요즘 수입산 쇠고기 너무 싸고 맛있어 얘” 순간 민자씨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송아지 값이 3만원이어도 안 팔리는 이유가 그놈의 수입 쇠고기 때문인데 동창생이 수입쇠고기 먹고 자랑하니 속이 뒤집히는 것만 같았다. “그려. 수입쇠고기 많이 먹어야지. 많이 먹어야 돼. 그래서 우리나라 소 키우는 사람들 다 쫄딱 망해야지 뭐 어쩌겠냐” 그제서야 낙농가 안주인인 민자씨에게 해서는 안될말을 한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렸는지 경숙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래. 참 세상 좀 드럽다. 어떤 것들은 축산농가 낙농가 망하게 만들려고 수입쇠고기 잔뜩 들여오고 그거 먹고 춤추며 노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같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살길이 막막해지고. 그려 인생이 그런건가 보지. 아무래도 내가 너한테 전화를 잘못 한 것 같다.” “아 아냐. 내가 말을 잘못한 것 같다. 네가 목장 한다는 걸 깜빡 잊었네. 어휴 내 주둥이가 방정이다. 민자야 서운하게 생각 마. 정말 미안해.” “아녀. 사실 니가 미안해할 것은 없지. 어찌됐든 우리나라 사람들 참 변덕스럽다. 촛불 들고 시위 할 때는 언제고, 이제서는 싸니까 막 사 먹고. 그냥 니가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배신감 같은 게 느껴진다. 허기사 국민들도 주머니가 가난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정말 나쁜 놈들은 따로 있지. 그려, 다음에 또 통화 하자”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나서 민자씨 한숨을 쉬었다. 없는 사람들이야 한 푼이라도 싼 것 먹을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실 동창생에게 서운하니 어쩌니 할 얘기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답답한 속 풀어 버리려다 오히려 더 화만 치밀어 오르게 된 민자씨. 그녀는 미칠것만 같았다. 차라리 소리라도 시원하게 질러보고 싶었다. 이마저도 안하면 또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싫은 소리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 소리를 질렀다. “이건 배신이라구. 배신이야. 배신! 정부도 배신, 정치인도 배신, 국민도 배신 배신이라구.” 한참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거실로 나온 민자씨.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더욱 놀랐다.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려고 샤워기를 틀어놓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만 그 샤워기에서 떨어진 물이 자신의 몸을 흠뻑 적시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정신 나갈 정도로 혼돈스럽고 힘든 민자씨의 가슴을 아니, 낙농인들의 속내를 과연 누가 아는 걸까?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