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접속하지 마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아직 여름도 안됐는데 이렇게 더우면 어쩌라는 겨.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든 판에 때 아닌 더위까지 극성을 떨구 지랄여. 도대체 뭐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게 있어야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녀” 민자씨는 야채 밭에 물을 뿌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영어교육 문제로 시끄럽기 시작하더니, 대운하 건설과 조류독감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갔고, 이제는 쇠고기수입 문제로 전국이 술렁거리고 있으니, 올 들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밀가루 값 폭등에서 시작된 물가상승은 이제 유가상승이 불을 붙여 물건값 만 정신없이 올라가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 태산 같다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다. 이쯤 되니 촌에 사는 목장댁 민자씨라고 해서 한숨이 나오지 않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더위는 일찍 찾아와 한낮에는 선풍기라도 돌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집안이 온통 찜질방수준이 아닌가. 그때 마침 옆집 영식엄마가 와서 한마디 거들었다. “그려유. 아줌니 말이 맞네유. 살아도 사는 게 아니구먼유. 어제 시장 갔다 왔는데 참말로 걱정여유. 뭐 하나 안 오른 게 없어유. 싼 거 딱 두 가지 있어유. 중국서 만들어 온 옷하고 신발만 싸더라구유. 빤쓰가 네 장에 만원하구유. 샌달이 오천원 씩 하더라구유. 우리 영식이 하구 영식아빠 빤쓰 네 개씩 사구 저는 샌달 하나 사 신었어유. 애는 자꾸 커 가는데 모아놓은 돈은 없구 벌면 쓰기 바쁘니 큰 일 났어유.” “좀 더 지나 보라구. 중국서 만들어 오는 것두 이젠 비싸다는 말이 나올 거구먼. 중국 사람들 인건비가 올라가는데 언제까지 중국산이라고 싸겠냐구.” “아니 근데 이대통령은 금방 잘 살게 해줄 것처럼 하더니 어찌 된 게 거꾸로 가는 거 같어유. 대통령 혼자서 잘 한다구 다 잘되는 것도 아닌데. 좀 실망스럽네유.” “아이구 영식 엄마두. 젊은 사람이 인제서 그걸 알었어. 그나 저나 큰일이구먼. 다들 입맛 고급으로 바뀌고 보는 눈도 고급으로 바뀌었는데. 경제는 오히려 거꾸로 가게 생겼으니 ...쯧 쯧” “그런데유 웃기는 게 있는 사람은 더 잘살게 되는 것 같어유. 없는 사람은 죽으라 죽으라하구유. 영식이 아빠 친구는유, 2년 전 만해도 사는 집이 2억5천 정도였거든유. 지금은 5억이 넘는대유. 그래서 은행에서 대출 받아 일식집 차렸는데 그게 그렇게 잘 된다네유. 요즘은 조류독감하고 쇠고기 문제 때문에 장사가 더 잘 된데유. 복도 많지. 우리가 그때 집 안팔구 세주고서 내려왔으면 지금은 10억 재산은 될 텐데. 아이구 그런 생각하면 아주 잠이 않와유” “아이구 영식 엄마두. 지난 거 생각하면 뭐해. 돈도 지가 따라와야지 억지로 돈 따라가다가는 허구헌 날 빈 지갑여” 영식엄마와의 대화는 한참이 지나서 끝이 났다. 대화라고 하기 보다는 즐거울 게 없는 요즘 세상살이에 대한 넋두리이고 한풀이였다. 무조건 세상 탓 정부 탓 남의 탓 만 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이미 IMF를 한번 겪은 그녀들로서는 최근의 경제 사회의 난기류가 왠지 불안감을 더해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저녁 두 집 식구들은 모처럼만에 민자씨네 거실에서 저녁식사를 같이 했다. 형제처럼 사는 이웃사이지만 밥 한 끼 같이 한지가 서너달은 지나간 것 같아 두 여자의 사전 약속 하에 만들어진 자리였다. 영식엄마가 사 온 삼겹살을 민자씨네 광속에 묻어있던 묶은 지, 그리고 텃밭의 유기농 야채들을 뜯어다 함께 구어 먹으면서 소주도 한잔씩 마셨다. 7년 전 이사올 때만 해도 술은 입에 대지도 못했던 영식엄마는 어느새 40대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서인지 따라주기 무섭게 잘 들이켰다. 남편은 젖소를 언제까지 키울 것인지에 대해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고 민자씨는 앞으로 많은 세월을 살아갈 자식들과 손자들에 대한 걱정을 했다. 영식 아빠는 키우고 있는 흑염소를 더 늘릴 것인지 아니면 영식이 고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다시 도시로 나갈 것인지를 고민했고 영식엄마는 병원에 누워있는 친정엄마를 생각했다. 올해 중3이 된 영식이는 한참 먹을 나이라서 그런지 삼겹살 구워 놓기가 무섭게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무서운 소리가 나왔다. 영식이는 꿈이 뭐냐고 묻는 민자씨 남편의 질문에 녀석의 대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적어도 영식이 부모들에게는 그랬다. “저요. 농장 할래요. 소, 돼지, 염소 이렇게 세 종류만 기를 거예요. 닭이나 오리는 조류독감 때문에 싫구요. 소, 돼지, 염소는 수입사료 먹이지 않고 우리 것만 먹여서 키울거예요. 그래서 명품 먹거리로 만들어 팔 거예요” 그러자 다들 놀란 눈으로 영식이를 쳐다보았다. 술 기운 탓일까. 평소 험한 욕을 하지 않는 영식엄마가 화난 얼굴을 하면서 한마디 던졌다. “넌 고작 생각한 게 그거여. 너 때문에 내가 사는 재미가 없어. 속이 터져 내속이 터진다니까유” 하지만 영식아빠는 의외였다. “당신 왜 그래. 뭐든 지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밀어주면 되지 . 당신이 얘 인생 대신 살아갈 거여 나를 보라구. 우리 아버지 나를 의대 보내려고 했지만 내가 싫었는데. 내 실력이 안되는데 어쩌겠어. 삼수까지 않하구 차라리 내가 가고 싶은 미대 갔으면 지금은 다른 일 하고 있겠지. 요즘은 산업디자인 하는 친구들에 돈도 잘 벌고 만족도도 높던데...” 민자씨와 민자씨 남편은 영식이네 식구들 눈치만 보았다. 영식 엄마 입장에서는 이제 열여섯살 된 아들이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뭐 이런 직업을 꿈꾸길 희망할 터였다. 그런데 아이 입에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영식이 녀석은 나름대로 꿈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저는요. 아저씨처럼 축산학 전공할거구요. 농장을 좀 더 과학화 시키고 관광상품화 시킬 겁니다. 그리구요 학교 급식에 절대 수입쇠고기 돼지고기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거예요. 요즘 TV 보세요. 대도시에 있는 중고등학생들 다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에 참가하잖아요. 미친 쇠고기는 먹을 수 없다구요. 물론 미국 수입쇠고기가 미친 쇠고기가 아닐지라도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우리 축산물 공급하는 것은 뜻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쯤 되자 민자씨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식아빠가 말을 거들었다. “그래 니 하고 싶은 게 그거면 해. 아빠는 너 대학 졸업할 때까지 염소 열심히 키워서 땅을 사놓으면 되겠네. 허 - 허. 우리 아들 다 컸네” 민자씨 남편도 그제서야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와. 영식이 똑똑하네. 그렇게 구체적인 농장의 꿈을 갖고 있는 줄 몰랐네. 그래 영식이가 농장 한다고 하면 아저씨가 갖고 있는 소에 대한 노하우는 다 전수해주마. 허 녀석도.....” 하지만 여전히 영식엄마의 얼굴은 구겨져 있었다. 이런 영식엄마의 마음을 민자씨는 이해했다. 엄마의 마음이란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때 영식이가 다시 하는 말이 참으로 놀라웠다. “엄마 걱정말라구요. 그때는 농장 운영도 거의 다 기계화로 바뀔 것이고 또 그때 쯤되면 우리 축산물 인기가 좋아질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저는 학교 졸업한 후 4~5년 정도는 직장 다닐 거예요. 식품회사 다니면서 축산물 가공에 대한 노하우를 배운 후 농장을 운영할거예요. 그래야지 직접 치즈도 만들고 햄 소시지도 만들지요. 그래서 나만의 브랜드를 가질 거예요.” 영식이의 아주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장기 마스터플랜에 어른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민자씨도 영식이의 생각이 이 정도라면 부모들이 밀어줘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영식아빠는 영식이의 꿈이 실현되길 희망한다면서 술잔을 부딪혔다. 그때였다. 영식엄마의 입에서 희망의 폭탄선언이 터져 나왔다. “그럼 앞으로 십 오년 동안 더 염소 키우라는 겨. 내가 너 땜에 못살아. 아이구. 애국자 나왔어유 애국자. 장하다 이 녀석아. 네 맘대루 혀” 완전한 긍정은 아니었지만 영식이의 꿈을 더 이상은 반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그날 두집 부부는 영식이의 꿈으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그런데 민자씨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영식이가 꿈에 대한 전략적인 계획을 세우기까지는 남편의 조언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남편과 영식이는 다른 사람들 모르게 축산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자씨는 행여라도 이 사실을 영식엄마가 알게 되면 모든 탓이 민자씨 남편에게 돌아올까봐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날 밤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접속하지 마유. 훗날 원망 듣지 않으려면 당장 접속을 끊으라구유. 알겄지유”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