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구유.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구유. 대통령은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들여와 일반 시민들이 먹도록 한다”고 하구. 정부 농업통상정책관이라는 양반은 “특정위험물질만 제거하면 독을 제거한 복어처럼 안전하다”고 하구. 참말로 누구 하나 광우병에 걸려 미치는 꼴을 봐야 된다는 거여 뭐여” 민자씨 신문을 읽고 나서 아침부터 목청을 올리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남편은 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았지만 쇠고기 수입에 대한 의견은 그녀나 다를 게 없었다. “허허. 당신은 참 총기 하나는 뛰어나구먼. 신문 한번 휙 보고 나서 어떻게 그렇게 잘 외우는 겨. 사실 지금 축산농가들 생각하면 쇠고기 수입은 아직 때가 아니거든. 어쩔수없이 해야 한다면 제대로 뭔가 갖춰놓고 해야 될 거 아녀. 농가들에게 소를 키우지 말라고 허구 그에 따른 대안을 주고서 시작하든지. 광우병만 혀도 그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강하게 나가야 혀. 일본은 미국에서 2003년 광우병 의심소가 발생한 후부터는 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을 제거한 쇠고기의 수입만을 허용해 왔다는데 .....,” 30년 넘게 낙농업을 해온 민자씨 부부로서는 배신감만 느껴졌다. 열심히 한 우물만 파온거 생각하면 상을 받아도 시원찮은 마당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노릇인지 가면 갈수록 힘들게만 하는 게 아닌가. 성격 급한 민자씨는 무조건적인 쇠고기수입을 강요하는 싸가지없는 미국년놈들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고 싶었다. 게다가 미국도 미국이지만 줏대도 없고 힘도 없이 따라가는 한국정부를 향해 대정부 연설이라도 하고 싶었다.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알 수가 없는 노릇여유. 제발 좀 조용히 살고 싶은데. 가뜩이나 사료값은 오르고 거기다 AI 발생하구 이제는 쇠고기수입하구. 나 이러다 환장하지. 축산업 이 통째로 무너지게 생겼는데 여지껏 우리가 요구해온 소득세 경감, 전기요금 인하, 가축공제료 국고보조 확대 같은 실질적인 지원책은 이루어지지도 않고 있구. 한마디로 욕 나와유. 썩을놈의 인간들....,” 자고로 사는 게 즐거워야 하는데 민자씨 생각으로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집값은 바람 부는 날 미친년 치마폭 올라가듯 분수없이 올라가고 영어 열풍에 다섯 살 먹은 애들도 학원을 가고 거기다 물가까지 올랐으니 이런 나라에서는 서민들만 죽을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 참 웃기지도 않는 것은 이명박 정부 첫 내각의 평균 재산은 31억 4천만원으로 나타났고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평균 재산은 35억원에 달한다니 이건 정말이지 뒤질랜드에 사는 거나 다름없는 일 아닌가. ‘오호 통재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새어 나왔다. 답답한 마음 달래보려고 며느리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여. 우리 성민이 잘 있지.” “네. 어머님 다음주 쯤에 찾아 뵐려고 하는데. 건강 하시죠” “그려. 건강은 하다만,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영 시원찮어서...,” “그렇죠. 저도 뉴스 봤어요. 정말 걱정이네요. 사료값도 엄청나게 올랐다면서요” “그려. 요즘 같으면 한숨만 나오는구먼” “사실 어머니 저희도 그래요. 먹거리는 온통 중국산이잖아요. 요즘은 과자구 식품이구 원산지 제조처 어디인지 꼭 봐야 안심이 돼요. 아이들 관련 사건은 자꾸 일어나니 잠시도 마음이 편치 않구요. 게다가 요즘 영어교육 때문에 난리가 났어요. 초등학교부터 잘하는 애들은 잘하는 애들끼리 수업하는 그런 것도 한다잖아요. 그래서 아파트 엄마들끼리 만나면 서로 얼굴보고 한숨 쉰다니까요.” 민자씨 듣고 보니 참 그는 아이들이 더 걱정이었다. 먹을 거, 치안, 교육, 물가 뭐하나 불안하지 않은 게 없는 게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민자씨 홧김에 갑자기 한마디 터져 나왔다. “얘, 여차하면 니들도 이민 가버려. 캐나다로 가 던지 호주로 가던지. 이 따위로 굴러가는 나라서 있다가는 애들까지 망치겠다. 갈려면 가라. 내 땅이라도 다 팔아서 해주마” 이쯤 되자 며느리는 깜짝 놀랐는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도 유학하고 이민가는 사람 다 잘못된 사람들이라구 생각했는데 이젠 아녀. 갈수 있으면 가라구. 지금 상황은 사람 환장할 노릇이라니까. 애미야. 무식한 내가 생각해도 그래. 교육 엉망이잖어,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애들이 특목고 준비한다구 하더구나. 도덕 그건 땅에 떨어지지 오래됐어. 허구헌날 성추행이니 재산은닉이니, 비자금이니 이런 소식만 들리구. 이제는 시장 개방 다 해서 뭘 어쩌라구. 니들 두 생각 잘해라. 애 제대로 키우려면” “어머니 말씀하시는 거 다 옳으신 말씀 이예요. 그러잖아도 우리 동만 해도 올해 두 집이나 이민 갔어요. 한국서 돈 들어가는 거 절반도 안 들어 간데요. 그러니 이민갈수 있으면 가는 게 낫다고들 하더라구유” “그려 어찌됐든 요즘 워낙 험악한 일이 많으니 애라도 잘 챙겨라. 끊는다” 전화를 끊고 나니 민자씨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아무 계산도 없이 며느리에게 한말이 자꾸만 머리를 어지럽혔다. 다름 아닌 이민 가면 땅이라도 팔아주겠다는 말이 그랬다. 땅이라고 해야 목장 터 3천 평 하구, 논 2천 평 정도가 전부인데 설령 다 팔아버린다고 해도 큰 돈이 될 턱이 없다. 그런데 덜컥 그런 말을 했으니 만일 며느리가 진짜 이민간다고 하는 날에는 이거 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홧김에 서방질한다더니 그 말이 꼭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남편은 나이 칠십이 넘더라도 목장을 고집할 성격이라서 목장 판다는 말 나오면 그 순간 이혼사유가 될수밖에 없었다. 이쯤되고보니 민자씨 자기 발목을 스스로 잡은 꼴이 된 것이다. 4월도 지나고 5월도 며칠이 흘렀다. 어버이날이라고 며느리가 서울서 내려왔다. 아들은 직장 다니기에 못 내려오고 며느리만 다섯 살 된 손자를 데리고 내려왔는데 민자씨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며느리 입에서 이미 얘기가 나올까봐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시집올 때는 김치도 못 담그던 며느리는 어느새 요리솜씨가 늘어서 미역국도 끓이고 돼지갈비도 만들고 오이무침도 하는 등 새벽같이 일어나 애를 썼다. 남편은 며느리가 차린 상을 보더니 얼굴이 싱글벙글 기분 좋은 눈치였다. “아이구 무슨 음식을 이렇게 많이 했냐. 힘들게. 아이구 우리 똘똘이도 일찍 일어났네” “아버님 생신 축하드려요. 성민이도 할아버지 생신 축하드린다고 해야지” “네. 할아버지 오래오래 사세요. 어 근데 왜 케익이 없어요” 그러자 다들 한바탕 웃었다. “그건 이따 저녁에 아빠가 우리 데리러 올 때 사온다고 했어” 며느리가 해주는 밥을 먹게 되니 민자씨도 마음은 흐믓했다. 물론 같이 만든 음식이지만 일년에 몇 번 이렇게 며느리 손자 같이 밥 먹으며 웃을 수 있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였다.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손자녀석이 한 말은 정말이지 시한 폭탄 같은 거였다. “할아버지” “응. 왜?” “있잖아요. 저는 다른 나라가서 공부할 거예요.” “그럼. 공부 잘하면 유학 가야지” “그게 아니구요. 진짜로 다른 나라로 가서 살 거예요.” 남편은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해 했다. 민자씨는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 자신을 느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뭐 이런 기분이었다. 며느리 말이 같은 아파트 사는 사람들이 올해도 두집이나 갔다고 했으니 이 참에 이민을 가려고 하는 게 분명하다는 느낌이었다, 일은 자신이 저질러놓았으니 아!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인데 드디어 며느리가 입을 열었다. “성민아. 아빠 직장 때문에 우리는 지금 이민 못가.” 민자씨 정말이지 며느리의 말을 듣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느낌이었다. “저희 옆집이 며칠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갔어요. 성민이가 우리는 언제 가냐고 하길래 그냥 나중에 갈 거라고 했는데 ..... 아직은 그런 생각없구요. 성민이 중학교라도 들어가고 공부 잘 하면 유학이라도 보내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민자씨 즐거운 마음에 선수를 쳤다 “그럼, 우리 성민이 더 큰 형아가 되고 공부 잘하면 유학가야지.” 목장댁 오민자 여사 남편 생일 아침, 자칫하면 이혼당할만한 일을 모면한 후에야 ‘이제는 살았다’하며 몰래 가슴을 쓸어 내렸단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