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쒀서 개 줬구먼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내가 살아도 못 살겠다구. 사료 값을 감당할 수가 없다니까. 너는 몰라서 그려. 목장하면서 제일 돈들어가는 게 사료값이여.” “어머 그랬어 언니. 나는 언니네야 누구 돈 쓰는 사람 없으니까 통장에 돈 좀 있는 줄 알았지.” “얘는 요즘 여기 사정을 너무 모른다니께. 오죽하면 내가 젖소 몇 마리 팔 생각 까지 하겄냐. 여러 말 말구 돈 있으면 이백 만원 보내. 두 달만 쓰고 줄테니까.” “알았어. 언니. 너무 속 썩지 마. 애들 장가 다 보냈는데 뭘 그렇게 벌려구 해.” “지랄하네. 가만히 있으면 누가 밥 떠서 넣어주냐. 늙어두 내먹을 건 내가 챙겨야지.” 연말에 축사에 온수 자동급수기 설치하고 작은 며느리가 수술한다고 해서 백 만 원을 주고 했더니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 이틀 후면 또 사료 값 결재해줘야 하고 폭설에 담벼락이 넘어가 담장도 고쳐야 하니 돈 들어갈 일만 줄을 잇고 있었다. 남편은 담장이야 천천히 고치면 된다고 하지만 민자씨 생각은 달랐다. 하루를 살더라도 사는 것 처럼 살아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여동생한테 돈을 빌려서 우선 급한 것 먼저 해결하기로 했다. 몇 년 전만해도 통장에 몇 백 만원은 항상 남아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지난해부터는 통장에 잔고가 몇 십 만원 밖에 없는 날이 허다했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예 바닥이 난 것이다. 자존심 강한 그녀로서는 짜증이 나는 일이었다. 일 이백만원이야 수퍼댁한테도 빌릴 수 있지만 소문이 날까봐서 아예 여동생에게 말한 것이다. 원인이 뭘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돈 먹는 하마는 바로 사료 값이었다. 갈수록 오르기만 하는 것이다. 우유값도 그렇게 올라가면 상관없겠지만 우유값은 늘 그 자리인데 사료값에 갈수록 생겨나는 최신 설비들을 구입하느라 알게 모르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가고 있는 거였다. 남편도 조금씩 지쳐가는지 차라리 소를 몇 마리 줄이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막상 소를 판다고 생각하니 속이 너무 상했다. 늘리기는 커녕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픔을 불러왔다. 날이 풀리자 남편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축사 물 청소를 하고 부지런을 떨더니 힘에 부치는지 평소 잘 마시지 않던 커피를 한잔 끓여달라고 했다. 남편이 식탁에 앉자 민자씨 혼자서 떠들어댔다. “돌아오는 휴일에 애들 내려오라고 해서 담장 무너진 거 먼저 고쳐유. 누가 와서 볼까 무서워유. 하필이면 요즘처럼 돈 궁할 때 담도 무너져 그래. 사료값은 구해놓았으니까 내일 읍네 나가면 계산 치러줘유. 남 줄돈은 그때 그때 줘야지. 그것도 쌓이고 쌓이면 큰 빚이라니까유.” “처제한테 빌렸어. 나 참. 살다보니 처제한테 돈을 다 빌리네 그려.” “이게 뭐 우리 잘못여유. 그 잘난 정치하는 사람들때문이지유. 왜 축산농가에 저렴한 사료를 공급 못해주냐구유. 지랄하구 과학기술이 발전됐으면 사료 같은 것도 싸고 영양분 많으것으로 개발해서 공급해줘야지. 사실 국민건강 책임지는 게 누군데유. 애들 키가 부쩍 큰 것도 다 우리네 덕 아녀유. 대체 이놈의 나라는 우리한테 뭘해주겠다는 건지 모르겄네유. 돈 많은 부자들 장관에 앉혀놓을 생각이나 하구. 정치하는 사람들 정말이지 한번 목장에 와서 실상을 보구 가야 한다니께유.” “그 사람들 앉아서 떠드는 정치하는 게 하루 이틀인가. 이제 앞으로는 모르겄지. 실용주의 정책을 편다니까. 허기사 말로만 떠들어대는 공염불이 될 수도 있으니까.” “아이구. 믿을 걸 믿어유. 어디 한 두번 당해유. 칼라이스인가 칼자루인가 하는 그 여자 대통령 취임식에 온 게 다 꿍꿍이 속이 있어서 왔다고 하던데유 뭘.” “그려. 나도 들었구먼. FTA와 무관하지 않을테지. 그나 저나 우리야 앞으로 하면 얼마나 더 하겠어.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지. 사료값만 올라가고 축산 낙농가들 경영 힘들어지면 결국 그나마 많지도 않은 젊은 사람들이 두 손 들 수도 있다구. 만일 그러는 날에는 국가적으로 큰 문제 되는 거지 뭐.” 머리가 희끗해진 민자씨 부부는 한숨을 내쉬면서 넋두리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동생한테 돈까지 빌린 민자씨 마음은 정말이지 더욱 갑갑했다. 가뜩이나 인적드문 산골에 살면서 만나는 이도 적어 웃을 일도 그다지 없는 그녀에게 돈 걱정까지 겹쳤으니 스스로 거울을 보아도 자기 얼굴 표정이 마귀할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민자씨에게 갑자기 신나는 일이 생긴게 아닌가? 꿈을 한 참 꾸다 아침에 일어난 민자씨는 혼자서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 “그래 바로 이거야.” 아침부터 웃는 얼굴로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남편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대체 뭔 일이 있는겨. 로또라도 당첨 됐는가.” “뭐 그렇다보고 볼 수도 있지유. 당신은 가만히 기다려 보시라구유. 하늘에서 돈 자루가 내려올지도 모르니까유.” 민자씨의 말에 남편은 더욱더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민자씨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비밀보따리를 풀어놓는데 그것은 이런 거였다. 주택복권이 집없는 사람들을 위해 생겨났듯이 이를테면 ‘농민복권’ 같은 복권을 만들어 여기에서 발생한 수익을 농가에게 돌려주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뭐 그런 게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조금 축소시키면 아예 ‘우유복권’으로 만들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민자씨는 이 아이디어를 신정부가 접수받고 있는 ‘국민아이디어 제안’에 보내 당첨되면 상금도 천만원 받고 우유복권이 만들어지면 낙농가들 사료구입지원비도 좀 받고 그렇게 되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한동안 방송을 통해 아이디어 접수 홍보를 접했던 터였다. 이 말을 듣고 난 남편은 혀를 찼다. 마치 초등학생이 밤하늘의 별을 따러 가겠다고 말하는거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니 기가 막힐 수 밖에. 나이는 적나 자그마치 쉽 아홉이나 된 마누라가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민자씨는 여전히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그녀는 컴퓨터를 켜고 제안서를 만들어 이메일을 통해 ‘국민아이디어 제안’ 이벤트에 접수시켰다. 발표가 한 달 후면 나오니 그때까지 좋은 생각만 갖고 기다리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막상 접수시켜놓고 나니 시간이 너무도 가지 않았다. 십 여 일이 지난 것 같은데도 불과 삼일밖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니 그녀는 그야말로 애가 탔다. 며칠이 더 지났을까. 낯선 남자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거기 오민자씨 계십니까.” “그려유. 내가 오민자 인데유. 실례지만 그쪽은 누구세유” “저 혹시 국민아이디어제안 이벤트에 응모 하셨습니까.” 이 순간 민자씨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기대했던대로 결국 채택이 된게 아닌가 싶었다. 접수마감 기간이 어제까지였는데 그새 발표를 할 일은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온 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그려유. 응모 했구먼유. 그런데...” 그 다음 그 남자가 말했다. “메일을 잘못 보내셨던데요. 보내신 메일주소는 ○○○기관이거든요. 참고하시라고 연락드렸습니다.” 전화는 뚝 끊겼다. 접수 마감은 어제 날짜로 끝났는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게다가 엉뚱한 곳으로 보내 아침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너무도 화가 나고 황당한 입장이 된 민자씨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축사에 나갔던 남편이 깜짝 놀라 뛰어왔단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인 즉 “그럼 그렇지 나 같은 년한테 뭔 복이 있다구. 죽 쒀서 개 줬구먼.”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