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째 저러는지 몰라 “ 우리 막내 내일 모레 뉴욕 가잖아. 뭐 내 생각은 그래. 지가 하겠다는데 밀어줘야지 어떻게 해. 그리고 이왕 배울 거면 좀 더 큰 데 가서 배우고 오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유학 보내는 겨. 공부를 잘하는가 보구먼.” “무슨 유학. 1년 동안 어학연수 간다잖아.” “어머 얘. 민자야 넌 말을 그렇게 하니. 어학연수도 유학은 유학이잖여.” 10년 만에 모인 초등학교 동창회서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의 영순이가 아들 자랑을 하자 민자씨는 부럽다는 듯 말을 거들었지만 질투심 많은 정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유학이 아니고 어학연수라며 꼬집어 말하는 게 아닌가. “야 영순아 정자 저것이 괜히 심술이 나서 저런다. 그려 우리 여동생 둘째 딸도 작년에 캐나다로 어학연수 갔다왔다고 하더라구. 요즘은 많이들 가는가 보더라구 . 우리 아들 들은 못갔다 왔는데.....” 민자씨 중간에서 조금은 난처해서 영순씨를 달래듯이 말을 거들었다. 그러자 영순씨는 다시 신이 난듯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우리애는 장학금도 두 번이나 받았어. 그리고 작년에는 과대표도 하구 그러더라구. 공부도 잘하구 성격도 좋구 활동적이고 그래. 그래서 그런지 여자애들도 많이 따르고 그러는것 같애. 군대도 갔다 왔고 어학연수하고 돌아와 복학하면 4학년인데 결혼도 서서히 생각해봐야할것 같은데. 사실 결혼은 아무하고나 시킬 수 없잖아. 안그래?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집 애를 만나야 할텐데.....” 자기 아들 잘났다고 자랑하는데 같은 아들 가진 엄마 입장에서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이해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오민자 여사는 그냥 미소로 답했다. 하지만 영순씨 자랑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딸 시집 갔잖아. 사위가 닥터야. 개업할 때 되면 도움 좀 줘야 하는데 걱정이야. 성형외과 의사라서 그런지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내 얼굴에 칼 댈 일은 없지만 그래도 잔주름이나 작은 반점 같은 건 우리 사위가 직접 없애준다니까. 게다가 엄마 없이 자란 애라서 그런지 어찌나 살갑게 ‘엄마’, ‘엄마’하고 따르는지 아들 하나 더 생긴 느낌이야. 민자 너도 가벼운 거 뭐 없앨 것 있으면 말해. 그 정도야 내 빽으로 충분히 가능하니까. 호호호.” 이쯤되면 민자씨도 살짝 약이 올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 “그려. 사위 잘 얻었구먼. 나는 아들 둘인데 다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녀. 큰 애는 올해 과장되었구. 작은애는 들어간 지 이제 3년째라서 아직 대리여. 우리 애들 인물이 어디가도 빠지지는 않잖여. 그래서 그런지 며느리들도 잘 골랐어. 큰 며느리는 친정아버지가 대학교수님여. 그래서 며느리도 곧 학교강의 나갈거랴. 아직은 애 때문에 못나가고 있잖어. 작은 며느리는 은행 다니는데 과장여. 얼마나 똑똑한지 몰러. 하여튼 난 우리 며느리들만 봐도 배부르다니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여자들 시기인걸까. 남한테 지고는 못 사는 스타일이 오민자 그녀의 마음속에도 가득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고동창생들 몇 명은 서로 잘 아는 사이지만 초등학교 동창들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민자씨 며느리들에 대해서 알 리가 없었다. 민자씨 얘기를 듣고 난 영순씨 얼굴 색이 달라지더니 민자씨 곁으로 더 달라붙었다. “어머. 그랬어? 너도 이제부터는 등산 모임에 나와라. 1반부터 3반까지 다 합쳐도 늘 나오는 사람은 스무명이 채 안돼. 물론 다들 잘 나가는애들만 나오잖아. 예전에 우리반 반장했던애 철수는 공군 중령 제대한 후 항공사에 이사로 근무하잖아. 까불까불 하던 민식이 그애는 중소기업 사장이야. 그리고 옥자 있잖아, 그애 남편이 성민병원 원장이잖아. 우리 등산모임 나오는 애들이 다들 먹고 살만한 애들이야. 자식들도 거의 유학보냈구. 민자 네가 나오면 분위기가 한결 좋아지겠다. 모임은 한달에 한번이고, 회비는 10만원 이니까. 그 정도야 너도 부담없잖아. 안그래? 그리고 애들이 돈 좀 있으니까. 횟집을 가든 호텔을 가든 서로 한번씩 크게 쓰고 그래. 그렇다고 부담 갖지는 마. 너는 목장한다니까 내가 참고할게. 그리고 가끔씩 우리 회원 중에 애경사가 있는 달에는 등산 대신 그것으로 대체하거든. 꼭 나와야 해. 참 내가 총무거든 호호호.” “그려 한달에 한번이야 뭐. 거시기 한달에 돈 십 만원 그것도 뭐 상관없구. 그러잖아도 우리 며느리들이 나 보구 놀러 좀 다니라고 야단여. 용돈도 얼마나 잘 챙겨주나 몰라. 알었구먼. 연락만 해주라구. 소백산 아니 한라산도 갈거구먼.” 동창회에서 만난 영순씨와 민자씨 두 사람의 대화는 궁합이 척척 맞아떨어졌다. 한 사람은 잘난척으로 다른 한사람은 거짓말로 그렇게 웃기는 대화를 나누었다. 문제는 민자씨였다. 영순씨의 자기자랑에 대해서 주변의 알만한 친구들은 이미 다 아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똑똑하고 적극적이고 예쁘기로 소문났던 민자씨가 거짓말쟁이로 알려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그 파장이 엄청날 수 밖에 없었다. 친구와의 수다 중에는 갑자기 신분상승이 된 기분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고속버스 안에서 민자씨는 정말 후회했다. 대책도없이 무작정 없는 사실을 떠들어댄 그녀로서는 뒷감당이 문제였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그녀를 보자 남편은 아픈 곳이 있냐며 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녀가 목욕간 사이에 전화가 왔으니 남편이 받을 수밖에. “안녕하세요. 저 오민자 친구 박영순입니다. 민자가 전화를 안받아서 집으로 했습니다. 이번주 토요일에 저희 모임 친구 중 최민식이가 자기네 회사 20주년 기념식을 호텔에서 한다고 초대를 했어요. 저 친구 들어오면 이번 24일 오후 5시까지 터미널에 있는 체리호텔 로비로 오라고 전해주시겠습니까. 회비는 10만원입니다. 네. 안녕히 계세요.” 남편은 목욕탕에서 돌아온 민자씨에게 전화내용을 메모한 쪽지를 건넸다. 깜짝 놀란 그녀는 드디어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실을 남편에게 밝히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토요일 호텔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남편한테 욕을 얻어먹을 각오도 했다. 어쩌겠는가. 더 이상은 거짓말이 지속되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있잖어유. 거시기. 저기 내가 .....” “뭔 말여. 지대로 말을 못하구 왜 그려.” 이미 모임정보를 들은 남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저기 아까 그 전화는 그냥 저 거시기..... 내가 미쳤지유. 어떻게 말하다보니까 그만 .....” 말을 듣고 난 남편은 기가 막힌 지 할 말을 잃은 체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더 큰일은 그 순간 전화가 걸려왔고 남편은 잽싸게 수화기를 가져갔다. “어. 그려. 날 추운데 애들 감기 걸리지않게 잘 혀라.” “어머니 계시죠. 좀 바꿔주세요. 아버님.” “그려 기다려봐라.” 남편은 수화기를 그녀에게 주며 큰소리로 말했다. “저기 곧 대학교 강의 나가실 큰 며느님 전화여. 받아 보시라구.” 얼굴이 홍당무가 된 민자씨는 남편을 노려보며 손사래를 쳤다. 수화기속으로 그 얘기가 다들릴 수밖에 없었다. 난감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민자씨. 며느리가 ‘대학교수는 무슨 소리냐’며 묻자 다른 사람 얘기라고 얼버무리며 가까스로 통화를 마쳤다. 화가 난 그녀는 남편을 향해 소리쳤다. “미쳤어 저이가. 워째 저러는지 몰라. 어쩌다 거짓말 한번 한 것 같구서.” 하지만 남편은 놀리듯 다시 말했다. “왜 정치판에 뛰어들지. 거기가면 거짓말 잘하는 비슷한 사람들 많지 않은가. 작은 애 전화 오면 그때는 은행 잘 다니냐고 물어 볼 참이구먼. 허허.” 그때부터 한동안 전화만 걸려오면 민자씨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고 남편이 못 받게 먼저 받아서 며느리들이면 아예 자기 선에서 동화를 마무리하느라 엄청나게 고생을 했단다. 그런데 웃지 못할 또 하나의 거짓말은 동창생 영순씨에게 다리를 삐어서 한동안 외출이나 등산을 못간다고 했단다. 하하하.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