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돈이 뭐길래. 참 사람들 돈 앞에서는 우르르 무너지네유. 아줌니도 그 양반 찍었시유?” 대선이 며칠 지나고 시장을 보다가 민자씨 허탈한 마음에서 말을 꺼냈다. 그러자 생선장사 여자가 말을 거들었다. “야, 그려유. 요즘은 말 못하는 어린애들도 돈만 보면 움켜 잡는다더니 사람들이 돈돈돈 하며 살아유.” “사실 사람 낳고 돈 낳았지 돈 낳고 사람 낳았나. 세상이 어찌 돌아가려는지 참 갑갑혀유.” “워째튼 서민들 잘 살게 해준다니까 믿어보는 거지유. 거짓말을 하두 잘하니까 의심스럽긴 해두. 진짜 할 수 없이 찍었시유.” 장사 잘되게 해 줄 거라고 해서 찍었다는 생선장사는 기름유출사고까지 터져 사람들이 좀처럼 생선을 사가지 않는다면서 속상해 했다. 오는 봄에 딸 시집 보내려면 장사라도 잘 되어야 하는데 기름유출사고 때문에 예전의 절반도 안 팔린다면서 울상이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요즘 낙농가들도 소비자들이 믿고 안심할 수 있도록 깨끗한 목장 가꾸기 운동을 하느라 다들 난리인데 그 넓은 바다에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사고가 발생했으니 아무리 생선이 좋은들 그렇게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더욱이 우리나라 사람들 뭐 하나 터졌다고 하면 순간에 망름 바꿔먹는 사람들인데 말이다. 민자씨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목장을 목장답게 만들어 보겠다며 목장으로 들어서는 진입로 양 쪽에 통나무를 말뚝을 박고 있었다. 다행이도 한 겨울이지만 땅이 얼지 않아서 작업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듯 했다. 목장 입구하고 울타리 좀 그럴듯하게 통나무로 만들고 풀밭 중간 중간에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 벤치 서너 곳과 원두막 두 곳을 만들어 놓겠다는 계획이다. 또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마다 서로 다른 꽃이 피어나도록 울타리 주변을 꽃으로 장식하겠다는 거다. 물론 축사도 지금까지 관리해온 것보다 훨씬 깔끔하게 관리해서 2008년 새해에는 전국 제일의 깨끗한 목장으로 만들어 체험농장으로도 활용하고 상도 받아보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얼마 전 남편이 이런 구상을 했을 때 민자씨는 사실 콧방귀를 뀌었다. 나이 들어서 갑자기 목장혁신이 왠말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많은 사람들 식사대접을 어떻게 하나 그것이 더 걱정이었다. 게다가 체험학습장 식으로 운영되면 그에 따른 준비가 많이 필요하므로 이래저래 일거리만 늘어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제 나이도 있고 해서 목장을 젖소 사육과 우유생산에만 주력하기 보다는 테마목장으로 만들어 많은 이들에게 목장을 이웃집처럼 친근하고 편안하게 들러볼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다. 물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정비를 하려면 돈 천 만 원은 충분히 들어가겠지만 한꺼번에 쏟아 붓는 게 아니라 6개월 정도 꾸준히 시간을 갖고 꾸며나간다는 입장이었다. 고집 센 남편이 작업을 시작했으니 이제 민자씨는 어쩔 수 없는 거다.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왕 하게 되는 거 기분 좋게 해야 되겠다 싶어 이런저런 구상을 했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이 1박2일 체험을 원한다면 숙소도 제공해야 하고 욕실도 마련해야 하는데 남편은 아직 이 정도까지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우유 짜기 실습이야 남편이 주도하겠지만 치즈 만들기, 우유요리 등은 자신이 직접 선보여야 할 터이니 그녀로서도 할 일이 많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순간 민자씨는 걱정 보다는 기대가 앞서기 시작했다. 1박2일 체험 프로그램에 20 여명씩만 올 경우 1인당 2만원씩만 받아도 일주일에 40만원은 기본으로 생기는 게 아닌가. 한달이면 200만 원 정도는 수입이 들어오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격 급한 민자씨 곧장 서울에 사는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마도 5월부터는 목장테마교실을 운영하니 그때 아파트 부녀회 회원들좀 모집해서 데리고 내려오라고 했다. 또 옷장사하는 여동생에게도 전화를 걸어 상가 점포주들 일제히 쉬고 나들이 갈 때 가능한 자기네 목장으로 데려오라고 했다.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여자 민자씨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고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는 후배에게 테마목장 운영소식과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시장바구니를 비워놓지도 않은체 한 시간 넘도록 전화를 한 그녀는 자시도 뭔가 큰 일을 한 것 처럼 기분이 뿌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여름이면 목장 담장엔 형형색색 꽃이 피고 언덕 나무 그늘아래 벤치에는 여기저기서 찾아온 방문객들이 대화를 나누고 자신은 멋진 브라우스를 입고 우유로 가능한 요리법을 소개하는 등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들인 것이다. 게다가 방문객들이 다녀갈 때 마다 통장에 돈이 쌓인다고 생각하니 그야말로 하늘로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나이가 올해 쉰아홉이라는 사실은 아예 무시한 체였다. 이런 기분은 저녁 준비하는 시간 내내 콧노래로 이어졌다. 이제야 농촌에 살아도 정말 사람 사는거 같은 기분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치원생이든 할머니들이든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하겠다는 각오도 했다. 기분이 좋으니 자신도 모르게 식탁에 올려놓는 반찬도 평소의 두 배가 되었다. 생선 조림, 구이, 김, 계란 찜, 김치찌개, 장조림, 콩나물무침, 쇠고기 무국 등등 . 식탁에 앉은 남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니 오늘 누구 생일여. 당신하고 내 생일은 가을이잖여.” 그러자 민자씨 애교 듬뿍 실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려유. 생일은 아니지유. 아니 우리 둘이 이 정도 차려놓고 먹는 거 당연한 거 아녀유. 육십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이것도 못먹구 살면 어쩐대유. 인생 뭐 있어유. 즐겁게 일하고 막고 싶은 거 먹고 그렇게 사는 거지유.” 그래도 남편은 뭔가 석연찮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생선조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남편은 묵은 김치와 함께 졸인 꽁치가 맛있다고 격찬을 했다. 하지만 민자씨는 음식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며 이날따라 닭살스럽게 이 잔찬 저 반찬 집어서 남편의 수저위에 올려주곤 했다. 두 사람의 식사 분위기는 신혼때의 그 특별함에 버금가는 정도였으니 두말할나위가 없었다. 거의 밥을 다 먹어갈 즈음이었다. 민자씨 입을 열었다. “아휴 우리목장도 이젠 몇 달 지나면 관광명소 되겄시유. 이쁘게 꾸며놓으면 사람들이야 저절로 올테니까유.” “그러면 좋겠지만 뭐 특별한 게 있어야지.” “아이구 당신은 참 별말씀을. 아니 꽃피고 새 날아다니는 이 넓은 초지위에 쉴 공간 있으면 그게 좋은거지유. 우리 젖소들 몸매 자랑하구 뭐 그런 거 아니겄시유. 아휴 나는 생각만 해도 좋네 . 그런데 홍보도 좀 해야되구. 1박2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받을건지 그런것도 생각해야 되지 않어유?” 그런데 이순 간 갑자기 곡사포가 식탁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이 여편네가 미쳤나. 무슨 돈을 받어. 아니 누가 돈내고 여기 온데.”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민자씨의 머리는 망치로 맞은 듯 ‘띵’했다. “아-아니 그럼. 나야 당연히 그런줄 알았지유.” “이봐. 오민자씨. 우리 나이에 뭔놈의 돈을 그렇게 밝히냐구. 그냥 내 목장에 많은 사람들와서 쉬었다가면 그것으로 좋은 거지. 게다가 우유 홍보도 저절로 되구 그러면 되지. 내가 젖소가 좋아서 목장하지, 돈에 미쳐서 목장했어?” 듣고 보니 남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제대로 상품가치 되게끔 완벽한 테마파크를 만들지 못할바에야 그저 누구나 편히 찾아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목장으로 알려지는게 차라리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몇 푼 벌자고 건물 더 짓고 사람 쓰고 그러다보면 초심은 간데없고 돈만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남편이 그 돈 많은 후보자 찍어준다고 할 때 민자씨 얼마나 많은 비난을 했던가. “돈이 뭐길래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찍어요”라고. 결국에는 민자씨 자신이 돈 밝히는 여자가 된 셈이니 그날 밤 민자씨는 입을 아예 봉한 체 남편 눈치만 살피다가 이불속에 들어가서야 남편 팔에 은근슬쩍 머리를 올려놓고 쥐 죽은 듯이 남편의 명령에 꼼짝 못한 체 그렇게 잠에 들었다고 했다. 정말 잠만 잔 건지(?)는 나도 알수가 없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