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도왔어 “ 옳지 옳지 아주 잘한다. 그려 넘어지지말구 잘혀” “어쩐일여. 당신이 드라마 안보고 피겨스케이팅 대회를 보구.” “아이구 조용히 좀 혀봐유. 제 연기하는거나 보라구유. 김연아. 저런 딸 하나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겠네. 그럼 눈에 넣어도 않아프겠구먼.” “허 - 허 할머니 다 되어서 뭔 놈의 딸 타령여.” “이 양반이 왜 이려 자꾸. 저거나 보라니까유. 또 금메달 따게 생겼네. 아까 그 일본 애 보다 훨씬 잘하는구먼. 아이구 이쁜 것.” “이쁘긴 이쁘구먼. 자가 고등학생 이라고 하던데 키도 크고 늘씬하네.” “아 늘씬하기만 해유. 저 얼음판에서 무용하는 걸 보라구유. 저거 봐 저거 몇 바퀴를 도는 겨. 아이구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참 대단하다. 장하구” 러시아에서 열리는 세계피겨스케이팅 그랑프리 5차전을 숨죽여가며 보던 민자씨는 연신 감탄을 했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연기도 잘하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보였다. 아들만 둘일 뿐 딸이 없는 오민자 여사로서는 한편으로 부러워할만도 했다. 그래도 딸은 나이가 들수록 엄마하고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 편한 사이가 되어서 다들 요즘은 아들보다도 딸을 더 좋아하는 시대가 아닌가. 가부장적인 남편은 아들 둘 있으니 든든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민자씨 마음은 또 달랐다. 그녀는 피겨의 요정 김연아에게 반해 있었다. 지난번 중국에서 열린 4차대회 때도 그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지 않고 김연아 연기하는 것만 볼 정도로 어느새 팬이 되어버린 셈이다. 역시 이번 대회도 최고 점수이자 2등과 20점 넘는 차이를 보이면서 김연아가 우승을 차지했다. 김연아가 우승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민자씨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다. 마치 자기 조카가 금메달을 딴 것처럼 즐겁고 기분이 좋았다. 남편도 잘한다는 칭찬은 했지만 민자씨 정도로 빠져들지는 못했다.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 저런 딸 하나 더 낳는 건데.” 남편은 헛기침을 했다. “김연아 처럼 예쁜 딸 아니면 어쩔라구.” “저 양반좀 봐. 우리 아들 둘 보면 몰라유. 엄마가 미인이니까 애들이 다 잘 생겼잖어유. 아휴 당신 닮았어봐. 그나마 날 닮았기 망정이지. 흥” “하긴 그려. 그런데 만약의 경우 당신 기대와는 전혀 다른 딸이 나올수도 있다는 야기지. 허기사 뭐 요즘은 성형수술하면 되니까. 돈이 문제지 뭐.” “아이구 그런 말 말어유. 성형도 하는 애들이나 하지 다 하나유. 애들은 키우는 과정이 더 중요한 거유. 꽃처럼 키우면 꽃만큼 예쁘게 돼 있다구유. 김연아 제도 아마 부모가 애지중지 키우느라 고생 많았겠지유. 저렇게 성공하려면 얼마나 힘이 들었겠시유.” “그거야 뭐 당연한 거지. 공들인 만큼 효과가 나타나는 거니까. 그나저나 정 딸이 그리우면 입양이라도 하는 게 어떠실까유 사모님.” 남편은 능청스럽게 장난기 섞인 말로 그녀에게 약을 올렸다. 입양 그것도 좋은 일이지만 아이들 키우려면 그만큼 엄마가 젊어야 하는데 민자씨 나이 이제 2년만 있으면 60이니, 괜히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 오히려 고생시킬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거의 만들다 시피 하는 세상인데 그녀로서는 무리가 따르는 일이었다. 그저 아쉬움의 한숨만 나왔다. 딸 얘기가 나온 김에 서울에 있는 여동생 딸들과 남동생 딸 얘기를 하면서 그나마 조카딸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었다. 남편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민자씨 잠자리도 안 펴고 그냥 잠이 들었다. 민자씨는 읍네 수퍼마켓에 서 있었다. 수퍼댁은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를 민자씨 앞으로 밀었다. 자기가 난 딸인데 딸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 그 아이를 데려다 수양딸로 키우라는 거였다. 여자아이는 인향처럼 예뻣고 똘망 똘망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수퍼댁 한테 달려가 안기면서 자기는 민자씨를 따라가지 않겠다며 울며 몸부림을 쳤다. 민자씨는 아이를 달랬다.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줄 테니 같이 가자고 꼬드겼지만 어린아이는 좀처럼 수퍼댁의 치맛자락을 놓지 않았다. 아무리 가자고 해도 그 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화가 난 민자씨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너 같은 애 나도 필요 없어.” 잠에서 깨어난 민자씨는 꿈에 여자 아이가 나타난 것이 그다지 기분 좋지는 않았다. 옛날 미신을 어느 정도 풍습처럼 따르는 그녀로서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남편은 아침을 서둘러 먹고는 읍네에서 망년회 점심 모임이 있다면서 나갔다. 12월 초 겨울 하늘은 눈이 올 것처럼 구름층이 두텁게 뭉친데다 기온은 약간 쌀쌀할 뿐 그리 많이 춥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날씨가 그녀는 더 짜증이 났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목장댁.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아침부터 큰 일이 났어.” 수퍼댁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꿈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수퍼댁은 늘 숨이 넘어가. 뭔일 인데 그려.” “글쎄 아침에 문을 열었더니 이 한겨울에 다섯 살짜리 여자애가 벌뻘 떨고 서 있는 거야. 어디 사느냐고 물었더니 서울이래. 그래서 왜 왔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모른데 잠에서 깨어나니까 우리 집 앞이더래.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만 있데. 집 전화번호도 다 외우더라구. 똑똑해. 그런데 없는 전화번호로 나오라구. 지 아빠 핸드폰 번호도 마찬가지구. 아무리 생각해도 지 애비가 애를 버린 것 같어. 어쩌면 좋아 이 일을 .....,” 민자씨 정말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꿈속에서의 일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래, 그 애는 어딨어.” “집에 연락해도 안된다니까. 그냥 지구대 데려갔다가 끝내 연락 안되면 고아원으로 가는 거지 뭐. 너무 안됐어서 오늘은 내가 데리고 있을려구. 밥이라도 먹이고 씻기고 하려구. 내일까지 기다렸다가 그래도 연락 안되면 지구대에 데려다 줘야지.” “내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그랬구먼.” “차라리 자기가 데려다 키워라. 얼마나 예쁜지 몰라.” 민자씨 꿈속에서 자신을 않 따라 가겠다고 울던 여자아이가 떠올랐다. “마음이야 막내딸 하나 더 키우면 좋겠지. 그런데 아이들 키우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어. 오히려 애한테 안좋을 거야. 어떻게 내 욕심만 채우고 살아. 그나저나 좋은 일 하고 있는데 애가 너무 안됐네” 수퍼댁이 전화 한 이유는 민자씨가 키우고 싶다면 키워 보는 것도 좋지 안을까 싶은 마음에서였던 것이다. 그녀 역시 그 속내를 알지만 함부로 결정할일도 아닌데다 정말이지 할머니가 손녀 키우는 거나 다름없어 아이에게는 더 좋은 젊은 엄마가 필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민자씨 갑자기 화가 났다. 대체 자식 낳아 놓고 키우지도 않는 인간들은 정말 용서가 안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혼자말로 떠들었다. “미친년놈들여. 애 버리려면 왜 낳았냐구. 쌍놈의 인간들. 여자가 더 나쁜년여. 아니 미친년 지 배 아파서 낳아 놓고서 어떻게 애 버리고 집을 나가. 아이구 망할 년. 개보다 못한 년. 잘 키우면 김연아 같이 성공해서 얼마나 좋아. 자식 버리는 년은 막말로 씨팔년여 .” 그때였다. 영식엄마가 얼굴이 울상이 되어서 들어왔다. “영식엄마 어디 아픈 겨. 왜 그려 얼굴이” “아이구, 아줌니. 지난해에 제 친구가 왜 읍내로 인사 왔다고 했잖아유. 그런데 그 애 딸이 이제 다섯 살인데 정신이 좀 왔다갔다해유. 그런데 어제 저녁에 집 나가서 여태 안들어오고있다잖아유. 성한 아이도 아닌데. 친구가 전화에 대고 우는데 너무 안됐더라구유” 그 순간 민자씨 정신이 번뜩 들었다. “영식 엄마 찾았다, 찾았어.” 민자씨는 곧장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수퍼댁에게 말했다. “아이구, 수퍼댁. 진작에 지구대에 데려다주지 그랬어. 그 애 읍네 사는 아이인데 정신이 좀 들어왔다 나갔다 하나봐. 우리 옆집 영식엄마 친구 지금 애 집나가서 난리도 아닌가본데. 빨리 지구대로 데려다 줘. 이 여편네야” 민자씨 가슴을 쓸어 내렸다. 딸처럼 키워보겠다고 나서서 아이를 데려왔더라면 큰 죄인이 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영식엄마에게 말했다. “아이구 잘못하면 유괴범 될 뻔 했구먼. 꿈이 도왔어. 꿈이.”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