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아이구 그런 사람은 이런데서 살지도 못해유” “아니 당신은 그 친구를 얼마나 안다고 그려. 돈 있으면 집짓고 땅 사서 살면 되는 거지, 뭘 그려” “글쎄. 여하튼 내가 보기에는 그 양반 농사지으며 촌에 살 사람이 아니어유. 고추 따러 가는데도 머리에 기름 바르고 구구 신고 갈 스타일 이잖아유. 멋이나 부리는 사람이 이런 시골서 잘 살겠네유 ?” “나야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친구가 온다고 하니까 오히려 잘 됐다 싶은 것 뿐여” “게다가 사슴을 키운다던디. 농장 운영하는 게 그렇게 보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아이구 그래도 젖소 키우는 거 보다는 나을 겨. 거기다 풀어놓고 방목한다는데 ....” 참 이상하게도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 민자씨에게는 남편의 고등학교 친구라는 k씨가 그랬다. 고급 공무원인 그 사람은 남편의 동창모임 회원인지라 결혼 때부터 상가집, 회갑연, 결혼식장 등을 통해 몇 년에 한번씩은 얼굴을 봐서 낯익은 사람이다. 하지만 옷 입는 거는 물 만난 제비가 따로 없는데다 하는 말투도 얄밉기만 했다. 잘 생긴 얼굴이지만 오히려 민자씨에게는 더욱 거부감만 갖게 하는 느끼한 얼굴이었다. 그런 그 남자가 퇴직하고 목장 근처로 이사를 온다는 거였다. 마누라도 없는 남자가 혼자서 시골에 내려와 사슴농장을 한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농장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남편 친구들 중에서도 인상 좋고 마음 착하고 마누라 있는 사람이 내려오면 그녀로서는 반길 일 이었지만 K씨는 달랐다. 하지만 더욱 짜증스러워진 것은 내일 땅 계약을 하러 내려오면 목장에서 불과 1키로미터도 안떨어진 곳이니 점심 대접은 해야 된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나서였다. 사실 남편으로서는 동창인데다 모임도 함께 할 정도면 집에 데려와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인 것이다. 이해는 가면서도 알 수 없는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서 한 말한마디가 그만 화근이 되었다. “읍네 나가서 사 줘유. 마땅히 반찬도 없는데 괜히 흉잡히게 하지 말구유” 민자씨의 말에 남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날마다 해마다 오는 것도 아닌데 그 밥 한 끼 해주는 걸 가지고 뭔 놈의 말이 그렇게 많어. 아 쌀이 없어 된장이 없어. 한여름 땡볕에서 가마솥에 밥을 하는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빗나간 민자씨 마음이 이쯤되고 나니 더더욱 비탈길을 탔다. “참 말이 쉽지유. 쌀하구 된장만 있으면 상이 차려지나유. 여자들은 뭐 허구 헌날 밥하고 상 차리는 거 좋아서 하는 줄 아는가봐유. 참 별일여” 남편도 마음이 몹시 상했는지 평소처럼 그냥 흘려듣지 않고 그녀의 말에 꼬리를 달았다. “사람이 마음을 잘 써야지 복 받는 겨. 아니 왜 멀쩡한 그 친구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반색을 하구 난리여. 그렇게 귀찮으면 읍네 가서 사 먹을 테니 그런 줄 알라구.” 민자씨도 이미 엎지러진 물 이판 사판 이었다. “마음대로 해유. 당신 친구니까 당신이 알아서 해유. 집으로 오라고 할거면 내일 아침 일찍 시장을 봐다 주던지. 아니면 배 속편하게 읍네 가서 사 먹든지” 한 방안에서 등을 돌린 부부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헛기침을 하며 혀를 차더니 밖으로 나갔고 민자씨는 읍네 슈퍼댁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었다. 일주일에 보통 두세 번은 전화로 이런 저런 수다를 떠는 민자씨는 그래도 슈퍼댁이 가장 말이 잘 통하고 부담이 없었다. 남편 흉을 보느라 방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고주알 미주알 늘어놓자 슈퍼댁은 장단을 맞췄다. 자신도 가끔씩 남편 친구들이 집에 오면 바쁘다는 핑계로 중국집에서 시켜주는게 다반사라고 했다. 남자들은 여자들 부엌 일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데 사실은 은근히 힘들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부엌살림 아니냐며 귀찮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잘한 일이라는 거였다. 한참동안 떠들던 슈퍼댁은 서울 사는 자기 고향친구 얘기를 했다. 집이 있는데도 올초에 한 채를 더 사서 투기를 했다가 아파트값은 거꾸로 내려간데다 집은 팔리지가 않아서 자신에게 하소연을 하더라는 거였다. 그러면서 슈퍼댁은 “서울 사람들 아파트 여자들이 끼리끼리 집값 올려놓더니 이제는 눈에서 눈물 나올 날이 올 것이다” 고 비난하면서 자신의 고향 친구 역시 투기하다가 보기 좋게 벌 받은 거라고 말했다. 민자씨 역시 억 소리가 나는 서울 아파트 값은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뿐이었다. 아파트 하나가 15억 20억씩 간다는 것은 그건 현실성이 전혀 없는 거품 그자체일뿐이라는 생각이었다. 이삼십분을 그렇게 수다를 떨다 문 앞에서 남편의 기침소리가 나자 민자씨는 전화를 끊었다. 이튿날 남편은 전화를 받고 나서 아무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민자씨는 농장을 하겠다는 친구 K씨가 서울서 내려왔다는 전화일거라고 여겼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전화도 없었다. 해가 다 기울어진 시간에서야 집에 들어온 남편은 뭔가 언짢은 듯 안색이 좋지 않았다. 민자씨는 자신이 점심을 해주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다가 저녁을 준비하려고 주방으로 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편이 식탁으로 오더니 따뜻한 녹차 한잔 끓여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녹차를 잘 마시지도 않는데다 대낮에 식탁에 한가롭게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궁금한 끝에 민자씨는 컵에 녹차 티백을 넣어 식탁에 내려놓으면서 먼저 말을 걸었다. “뭔 일 있어유. 갑자기 녹차를 다 찾아유” “그려. 당신이 좋아할 일여” 남편은 조금은 비아냥거리듯 그렇게 말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한대유. 내가 좋을 일이라니 .....,” “거 있잖어. 오늘 내려온다던 동창 녀석. 아무래도 못 내려올 것 같어. 참 밤새 안녕이라더니 그런일이 있을 줄을 누가 알았어” 민자씨 갑자기 달라진 남편의 말에 놀랐다. “아니 오늘 그 사람 않왔시유. 당신 그럼 누구 만나러갔시유” 남편은 마치 책을 조용히 읽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 녀석 큰 아들이 대신 내려왔더라구. 계약금까지 치룬 땅이니, 안 살수는 없어서 내려 보냈나보던데. 친구 놈이 어제 등산 갔다 내려오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하더라구. 뇌졸중인가 뇌경색 뭐 그런 건데. 그나마 빨리 수술해서 고비는 넘겼는데 퇴원해도 팔 다리 한쪽은 못쓴다더라구. 참, 여기 내려와서 사슴 키우면서 살면 구십살은 더 살거라고 하던 친구였는데 안됐어. 내일이라두 병원에 가봐야지” 민자씨는 남편의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 누구든 나이 들어 쓰러지면 남은 인생이 더 걱정인 것이다. 그래서 아무일없이 발 뻗고 잘 자다가 편히 죽어야 하는데 풍이 와서 반신불수가 되면 그것은 슬픈 노후를 예고하는 일이 아니던가. 민자씨 후회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남편도 같이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인생 덧없음을 느끼게 되는 일이었다. K씨가 자기에게 해를 끼친것도 아니고 돈 빌려가서 갚지않은것도 아닌데 무작정 미워하고 모처럼만에 집에 온다고 하는데도 점심을 못해주겠다고 한 자신이 너무도 악한 사람이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게다가 남편이 한 말중 ‘ 마음을 곱게 써야지’ 라는 말이 자꾸만 가슴속을 후벼 팠다. 민자씨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은 악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왜 이유도 없이 K씨를 미워했는지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이튿날 아침 남편은 밥을 먹자마자 옷을 챙겨 입었다. 친구 병원에 가기위해서였다. 순간 민자씨도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 입었다. 커피색 투피스를 챙겨 입자 남편이 물었다. “당신은 어딜가려구” “당신 따라가려구유” 그러자 남편은 참 엉뚱한 사람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민자씨 그녀가 누군가. 나이는 들었어도 부드럽고 여우같은 여자가 아니던가. 민자씨 남편에게 조금은 얄밉게 조금은 애뜻하게 한마디 던졌다. “있잖어유. 미운정도 정 이거든유. 우리 끔찍한 서방님 친구이신데 병문환은 꼭 가봐야지유. 하하하”.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