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사채 얻어 썼냐?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수박이 제대로 익었네” “그렇지유. 엄청나게 싸네유. 너무 싸서 맛이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꼭 싼 게 비지떡인 것만은 아니네유” “얼마나 줬길래 싸다구 그려” “삼천원유. 이렇게 큰 수박이 3천원이면 싼 거지유. 지난 장날만 해도 5천원, 7천원 했다니까유” “그러게, 싸긴 싸네” “애구, 농민들이 피 땀 흘려 재배한 농산물만 싸다니까유. 사실 요즘 공산품이 싼건 다 중국산이기 때문이잖어유. 그래도 중간 유통업자들은 마진이 괜찮다더라구유. 그러니 농사 짓는 사람들만 불쌍하다니까유” “자네는 아는 것도 많어” “어머나 저 양반 말하는 것 좀 봐. 중국산 싼 거야 세살 먹은 애도 아는 사실이잖어유. 그나저나 물건 값 싸다구 좋아할만한 일은 아닌 것 같더라구유. 우리 친구 남동생이 경기도 어디서 작은 공장을 운영했는데 중국산이 너무 싸서 수출도 잘 안되구 내수도 안좋아서 한 2년 동안 힘들었나봐유. 결국에는 사채를 끌어 들여 썼는데 빌린 돈은 1억 원인데 1년 사이에 이자가 8천만원이 넘었대유. 할 수 없이 공장 문 닫고 정리해서 사채 해결하고 작은 식당이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공장은 빨리 안팔리구 허구헌날 사채업자가 전화하고 집으로 찾아오고 그랬나봐유.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살을 했다네유. 에구.쯧 쯔” 민자씨 얘기가 끝나자 남편도 화가 나는지 큰소리로 말했다. “싸가지 없는 놈들, 그놈들은 도둑놈보다도 더한 놈들이라니까. 아 몇 년 전에 우리 친구 하나도 사채 조금 얻어 썼다가 집 뺏기고 가게도 날리고 그랬어. 그놈들은 돈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이거든. 사채 쓰면 곧 망하는 지름길이라구” 남편과 사채 얘기를 나눈 날 그날 저녁 TV 뉴스에서는 개인사업자나 직장인들은 물론이고 요즘은 학생들에게까지 사채업자들이 손길을 뻗쳐 빚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거였다. 언젠가 신용카드 때문에 세상이 한번 떠들썩하더니 이제는 사채업자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여기 저기서 사채 얻어 쓰고 패가망신 하거나 자살까지 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부모마음이 다 그런 걸까? 부모는 눈 감는 날까지 허구헌날 자식 걱정만 하는 게 부모 아닌가. 민자씨 역시 뉴스를 본 후로 괜한 걱정이 들었다. 매사에 융통성은 없지만 착하고 일 저지를 줄 모르는 큰아들은 그럴 리 없겠지만 주변에 사람 잘 꼬이고 일 잘 저지르는 둘째 아들이 혹시나 사채를 쓰지는 않았나 걱정이 되는 거였다. 몇 달 후면 장가들 녀석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모르게 불안했다. 한번 걱정을 시작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오민자 여사. 그녀는 가끔씩 집착력 때문에 스스로 속을 끓이곤 했는데 오늘밤도 마찬가지였다. 시계 바늘은 이제 밤 10시를 가르키는데 남편은 어느 샌가 깊은 잠에 빠져 코를 골고 있었다. 민자씨는 수화기를 들었다. “엄마여” “아니 밤중에 무슨 일 있어요” “일은 뭔 일. 저녁은 먹었어.” “예. 친구하고 먹고 들어왔어요. 엄마는” “집에 있는 사람이 여태 밥도 안먹었을라구. 그나 저나 거시기 있잖어. 요즘 사채가 난리라는데 너 - 너는 그런 거 쓴 적 없지?” “엄마는 왜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고 그래요. 내가 장사해. 사채를 쓰게” “아니 그냥 걱겅이 돼서 그러지. 말도마라. 오늘 뉴스 보니까 대학생들도 사채를 쓴다잖어. 하여튼 그런 건 쓰면 큰일 난다. 알았지” 아들은 걱정도 팔자라면서 빨리 잠이나 자라고 오히려 그녀를 나무랬다. 이렇게 확인을 하고 나서야 마음이 가라앉은 그녀는 후덥지근한 날씨 탓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이튿날 잠에서 깨어난 것은 전화벨소리 때문이었다. 밤새 설 잠을 자다가 새벽이 돼서야 깊은 잠에 들은 그녀는 그만 늦잠을 잔거였다. 시계를 보니 일곱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평소 같으면 여섯시면 일어나서 야채밭에 물 주고 착유하는 남편 일을 거들곤 했었다. 수화기를 타고 들려온 목소리는 매우 다급해보였다. “미안해 아침부터 전화를 해서. 워낙 급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어.” 읍네 수퍼댁이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아무일 없었는데 갑자기 아침부터 전화를 건 게 아무래도 수상했다. “아니 무슨 일여. 뭔 일 있는거여” “어쩌면 좋아. 미안하지만 자기 돈 있으면 삼백만 빌려줘. 일주일 안에 돌려줄께. 일 터졌어. 내가 그년 때문에 오래 못살아” 몇 년 전 아들 대학 등록금 마련할 때 한번 빌려달라고 한 것 빼고는 돈 빌려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던 그녀였다. 게다가 수퍼마켓을 하니 급한 돈은 얼마든지 돌릴 수 있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름에는 장사가 잘 안된다는 얘기를 들었던터라 돈에 쪼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캐묻지 않으려했지만 목소리로 전해지는 느낌이 예삿일은 아닌가 싶었다. “말 좀 해봐. 뭔 일이 생겼걸래 그러는겨.” “아휴 내가 챙피스러워 죽겠어. 우리 막내 동생 년때문에. 미친년 시집도 안가고 저렇게 노처녀로 살거면 떳떳하게나 살지. 돈 모아놓은 거 작년에 남자한테 사기당하고 뭔 놈의 방문판매 사업을 한다고 하더니 빚만 졌나봐. 그것도 사채를 오백만원 빌렸는데 석 달 만에 8백만 원으로 불어났다 잖아. 아이구 내가 살아도 못살아. 그년 때문에......,” 얘기를 듣고 보니 막내 여동생 급한 빚을 우선 융통해주기 위해서였다. 사채업자들이 날마다 집을 찾아와 죽이니 살리니 한다니 참 안된 일이었다. 민자씨는 남편이 모르게 관리해온 돈이 이백만원이 조금 넘었다. 친구 간에도 돈 거래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수퍼댁 만큼은 도와주고 싶었다. 그녀는 선뜻 이백만 원을 빌려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아침을 부랴부랴 해서 남편 밥상을 차려주고 급한 마음에 자신은 밥도 먹지 않고 곧장 읍네로 나갔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 수퍼댁에게 건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마음은 우울하기만 했다. 결혼 한 후에도 맏딸이라는 이유로 부모 대신하여 늘 동생들 신경 쓰느라 애쓰는 수퍼댁이 측은해보이기도 했고 골드미스는 커녕 가난한 노처녀로 전락한 수퍼댁 여동생의 인생도 한참 꼬인 인생이라는 생각에 안스러움만 느껴졌다. 개도 안물어간다는 돈 때문에 허구 헌날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때로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세상이 안타깝고 처량하게만 다가왔다. 아침부터 내리쬐는 무더위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소나기라도 잠시 쏟아져 내린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자씨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에잇 몹쓸 놈의 세상, 누가 이따위로 만든 거여. 어떤 악마같은 인간들이 세상을 이모양으로 만들었냐구” 짜증이 극에 달하다보니 집에 도착하자마자 홧김에 신발을 벗은 게 그만 한쪽은 마당한가운데로 날아가 떨어졌다. 그녀는 그것마저도 그냥 무시했다. 차라리 샤워나 시원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에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는데 다시 수화기가 울렸다.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를 더욱 짜증나게 하는 전화속 목소리는 여동생이었다. “언니 있잖어. 저기 돈 좀 있어” “뭔 놈의 돈 타령? 먹구 죽을 돈도 없어. 돈은 어디다 쓰게 ” “아니 그냥 좀 필요한데가 있어서 정말 없어. 한 달만 쓰면 되는데 ....” 동생은 어렵게 말했지만 민자씨는 쌀쌀맞게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건 순전히 자기 기분에만 빠져있던 탓이었다. “너도 사채 얻어 썼냐? 아니 평소에 저축 안하고 왜 남한테 돈을 빌리며 궁색하게 살어” 그러자 동생은 참다못해 울분을 터트렸다. “아니 동생이 돈 좀 빌려달라는 게 무슨 죄야. 내가 죄졌어. 언니 그러는 거 야냐.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난리야. 그렇게 상대하기 싫으면 인연 끊어. 애가 갑자기 수술을 하게 되어서 돈 백만원 좀 빌리려고 했는데 그렇게 냉정하게 살지마.” 전화는 끊겼다. 그제서야 민자씨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비상금은 이미 수퍼댁을 빌려줬으니 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평소같았으면 당장 돈을 들고 올라갈 그녀였다. 그러고 나니 민자씨 자신의 경솔함 그리고 병원비 때문에 신경쓰고 있을 동생 생각에 눈물이 저절로 나왔다. 울면서 그녀느 말했다. “지지배 진작 그렇게 말했었으면.....” 결국 그날 오후 민자씨 남편에게 이해를 구하고 남편 통장에서 100만원 찾아서 조카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찾아갈 수 밖에 없었으니 이건 한여름 낮의 잘못된 분풀이가 그 값을 단단히 하고 만 셈이었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