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트 명품 사서 개폼 잡다가 거품으로 날렸네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나 이년 전에 에스카다 선글라스 하나 샀잖아. 어머 그거만 쓰고 나가도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거기다 구찌 시계 차고 버버리 가방만 들어봐 달라진다니까. 아가씨들이 어찌나 친절하게 착착 달라붙는지......, 자기는 미모도 받쳐주는데 명품 한 두 개만 있으면 강남 사모님이 안부러울거야. 내일 아침에 가기로 했으니까 터미널 앞으로 나와. 내 차 갔고 가니까 차비도 안들잖아. 꼭 와야 해.” 치과 사모님은 저 하고 싶은 말만 열심히 늘어놓다 전화를 끊었다. 민자씨 기가 막혀도 한참 막히는 일이었다. 읍내서 동갑계 하는 여자들 중 몇이서 여주에 생겼다는 명품 아울렛매장을 가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는 거였다. 전날 이미 미장원집 여자가 전화를 걸어왔지만 그녀는 할 일이 많아서 못 간다고 핑계를 댔다. 그런데 이번에는 치과 사모님이 또 같이 가자고 유혹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오민자 여사는 명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버버리’, ‘구찌’ 정도야 써본 적은 없어도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치과 사모가 말하는 ‘에스카다’, ‘센존’, ‘에르메스’, ‘코치’ 등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쇼핑비용으로 남편 몰래 모아둔 돈이 있다는 말에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전화통화 후 집 앞 야채밭에 물을 주면서 민자씨는 신경질적으로 혼잣말을 해댔다. “미쳤지, 미쳤지. 팔자 좋은 여편네들 돈지랄이지 그게 뭐여. 아니 명품 지갑 갖고 다니면 돈이 저절로 굴러 들어오나. 지갑 하나에 60만원씩 하면 난 그 돈으로 두 달 동안 세금 내고 생활비 하겠네. 낼 모레면 나이 육십 다 되는 여자들이 그게 뭐하는 짓여. 신랑 등골 빼먹을 년들여. 에구.” 그때 옆집 영식엄마가 바가지를 들고 나타났다. “아줌니, 저 상추 좀 조금 뜯어 갈께유. 우리 밭에 있는 건 엊그제 비 맞고 나더니 다 녹아 버렸어유. 아이구, 어쩌면 이렇게 푸짐하게 잘 컸대유. 근데 아줌니 누구한테 그렇게 욕을 했어유? 뭔일 있어유.” “뭔일은. 읍내 동갑계 여자들 몇이서 여주인가 어디에 새로 생긴 명품타운에 가자고 전화가 왔어. 난 명품 같은 건 사돈의 팔촌처럼 담쌓고 사는 여자니까.” 하지만 영식엄마는 달랐다. 마치 빅뉴스를 들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면서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와! 그런 게 생겼어유? 아울렛이면 좀 쌀텐데. 돈 있으면 한번 가보고 싶네유. 영식 아빠 꼬셔볼까.” 나이가 열댓살은 차이가 나니 영식엄마 마음은 이해가 갔지만, 그래도 ‘명품’하면 사치스럽다는 생각 먼저 떠오르는 민자씨로서는 명품 소리만 들어도 화가 날 정도였다. “아이구. 가방 하나에 몇 십만 원씩 한다는데 그런걸 뭐 하러 사. 날마다 그거 들구 다니면서 보험영업을 할것도 아니구. 오륙십만원씩 한다는디 그 돈이면 나는 옷 열벌은 사 입겄네.” “아줌니 말이 맞어유. 요즘은 그렇게 사고 싶은 생각이 들한데. 저도 처녀 때는 그런 거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더라구유. 한번은 영식아빠가 크리챤 디오르서 나온 스카프를 사줬는데, 아까워서 영식아빠 만날 때만 했다니까유. 하 하 하” 영식엄마는 그래도 철이 든 여자였다. 여자로서 명품 한 두 개 걸쳐 보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야 보기 드물겠지만 명품은 고사하고 5천 원 짜리 속옷 하나 사는데도 몇 번을 생각한다고 했다. 민자씨는 영식엄마의 그런 생각은 평범한 주부로서 아주 바람직한 거라며 그녀를 추겨 세웠다. 이튿날 민자씨는 명품숍 나들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미장원집 여자로부터 전화가 또 걸려 왔지만 갈수 없는 상황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여자들은 극성이었다. 점심때쯤 되자 명품숍 나들이에 같이 간 군청사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머, 오여사가 없으니까 심심해. 비싼것도 많지만, 뭐 좀 싼 것도 더러 있더라구. 아이구, 말도 마. 우리 치과 사모님하고 미장원 집은 벌써 돈백 만원씩은 썼을 걸. 나야 돈이 있나. 그냥 아이쇼핑만 열심히 하다가 할인 많이 하는 바지 하나 샀어. 날씨가 좋구 사람도 많구 뭐 나름대로 재미있네. 자기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점포가 엄청나게 많으니까 한 바퀴 돌려면 하루 다가겠어. 일단 지금은 점심을 먹는 중이야. 세상에 부산서 온 사람들도 많아. 다음에는 꼭 같이 오자구.” 군청사모님의 전화가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나서 전화라도 해주는 성의는 고마웠다. 본래 사치스러운 여자도 아닌데다 남의 말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여자도 아니어서 치과 사모님이나 미장원집 여자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나자, 영식엄마가 읍내 서점에 간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마땅히 살 책은 없었지만 서점이라는 곳을 가본지도 십년은 넘은 것 같고 명품 숍에 가는 여자들도 있는데 돈 안드는 서점가는 것 쯤이냐 남편도 별 얘기 없을 것 같아 그녀는 따라 나섰다. 읍소재지 서점이라야 단층 매장에 규모 또한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나름대로 신간 코너, 베스트셀러 코너, 경제 경영 코너, 여성코너 등 구색은 맞추어 놓고 있었다. 영식 엄마는 아들이 적어준 메모지를 꺼내들고 청소년 권장도서를 열심히 찾았다. 민자씨의 발걸음은 자신도 모르게 건강코너로 향했다. 수없이 많은 책을 보노라니 책 제목도 비슷비슷하고 어떤 책을 보노라니 책 제목도 비슷비슷하고 어떤 책을 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삼십분 동안 이책 저책 들었다 놓았다 하다가 결국 그녀가 고른 책은 당뇨, 고혈압, 치매, 비만 등 성인병에 대한 내용을 고루 담고 있는 책이었다. 책을 산 게 너무도 오랜만이다보니 책 한권 들고 서점을 나오는 기분이 마치 우등산을 받은 여학생처럼 가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았다. 민자씨는 읍네 나온 김에 시원하게 냉면이라도 먹고 들어가자며 영식엄마를 데리고 냉면집으로 갔다. 책도 사고 냉면도 먹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었다. 게다가 영식엄마가 운전까지 해주니 집으로 오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두 여자는 ‘날마다 오늘 같은 날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둥 수다를 떨고 깔깔 웃으며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바로 뒤퉁스럽게도 민자씨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어머 목장댁. 이 일을 어쩌면 좋아. 나 차라리 가지 말걸 잘못했어.” 군청 사모님의 목소리였다. 겁에 질린 듯 그녀는 떨고 있었다. “아니 뭔 일이길래 그려유. 아까느 좋다고 하더니만 뭔일이길래” “어휴 나도 몰라. 치과사모 그 여자 오늘 쇼핑한 거 다 잃어버렸어. 몽땅” “사람이 넷이나 되면서 대체 어딜 갔길레......,” “글세 감쪽같이 없어졌다니까. 쇼핑 끝나구 나서 덥다구 나무 그늘 아래 앉아서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있었거든. 우리는 산 게 한두 가지니까 쇼핑백을 손에 들고 있었고 그 여자는 여러 개 라서 우리 바로 옆 벤치에 놓았었는데 잠깐 웃고 떠드는 사이에 누가 가져 갔는지 없는 거야.” “아니 비싼 거 샀으면 간수를 잘해야지. 에구 쯔-쯔. 그래 얼마치나 &#49326;는데 그래유” “적게나 샀어야지. 자그만치 백팔십만원이나 썼다는데. 울고 난리가 났어. 사실 내가 빨리 집에 가자고 할 때 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어. 나이든 여자들이 무슨 폼을 잡겠다고 벤치에 앉아 아이스커피를 마신게 화근이지. 잃어버린 건 그 여자 잘못이지만 같이 있던 우리가 되레 미안하구 죄인 같은 거야. 거기다 차도 그 여자꺼 타고 갔는데.....,” 민자씨 따라가지 않기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했다. 전화가 끝나자 옆에 있던 영식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남의 일이지만 참으로 어이가 없었는지 한숨을 쉬며 하는 말이 그야말로 어록에 남길만한 말이었다. “어머 그 여자 누군지는 몰라도 명품 사서 개폼 잡다가 거품으로 날렸네”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