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지집애야 지금이 몇 시여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 1 “언니 나 내일 내려갈게. 뭐 일 시킬 거 있으면 시켜. 우리 애 아빠 일 잘하는 거 알지. 음식해먹을 건 내가 다 준비해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말구” “더워서 음식 장만도 못혀. 임서방 토종닭 좋아하니깐, 그거나 한 마리 잡아 줄겨. 그런줄 알구 조심해서 내려와” “알았어 언니. 그럼 낼 봐요” 여름휴가를 받은 동생 남편이 시골이 좋다고 민자씨네 집에서 며칠간 놀다 간다기에 민자씨는 두말 않고 그러라고 했다. 제부이긴 하지만 워낙 나이 차이가 나서 조카같이 느껴지는 데다 친정 엄마 돌아가시고 난 후로는 마치 민자씨네 집을 처갓집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말이야 토종닭 잡아주고 말겠다고 했지만 집에 손님이 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녀는 옆집 영식엄마를 불러서 읍네 시장가는 길 말동무로 만들었다. 날은 더웠지만 모처럼만에 운전대를 잡고 읍내로 향하는 그녀의 마음은 모처럼만에 막내 여동생네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는 설레임과 즐거움에 쌓여있었다. “동생네 오면 모처럼만에 사람 사는 기분 나겠어유. 그나저나 아줌니 동생네는 그래도 생각있는 분들이네유. 텔레비전 봤어유. 아이구. 그 정치하는 인간들 중 몇놈이 강원도 산사태 날때도 강원도서 골프를 쳤다잖아유. 진짜 난 이해가 않간다니까유. 뭐 그런것들이 있어유” “나두 봤는디 참 걱정스러워. 썩을 놈의 인간들 세금으로 월급 받아 쳐 먹구 살면서 그 지랄들을 하니께.” “정치인만 그런 거 아녀유. 잘났다고 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다 그런가봐유. 글쎄유. 우리 친구 중 하나가 대학 교수 부인이거든유. 수해 났으니 그 사람들은 학생들 데리고 휴가대신 봉사활동 할 줄 알았거든유. 오늘 아침 전화 통화했는데유. 글쎄 봉사는 커녕 강원도 어디로 놀라간다면서 자랑하더라니까유. 뭐 같은 과 교수가 콘도를 빌려줘서 간다나유. 에구. 알고 보면 많이 배운사람들도 별 수 없다니께유.” “어려울 때 도우며 살아야 하는데 배우 것들이 더하다니까. 사실 맘 같아서는 나도 강원도 가서 수해복구 일 거들고 싶던데. 20 년 전 여기 물난리 크게 났을 때 군인들하구 학생들이 많이 와서 고생하고 갔는디. ” “아 참 그 얘기 들으셨어유. 저번에 남자가 군 의원 선거 나온 묘암리 화훼농장집이 이번 수해에 큰 피해를 봤다던데. 영식아빠 말로는 비닐하우스 여러 동이 폭삭 주저앉았대유. 선거에서도 떨어지구. 농장도 그 지경이 됐으니 그 집은 올해 운수가 않좋은가 봐유. 쯧쯧” 영식엄마 얘기를 듣고서야 민자씨는 자신들 사는 같은 지역 내에도 피해를 본 집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2 영식엄마와 함께 시장을 몇 바퀴 돌면서 음식 장만할 것과 과일을 사서 차에 실어놓고 두여자는 식당에 앉아 한가하게 수다를 떨었다. 민자씨는 시장에 갈 때 마다 읍내가 갈수록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구 이러다 앞으로 한 십년 흘러가면 우리 사촌 사는 읍내처럼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거기는 버스터미널도 없어졌다니까. 군소재지인데도 은행이 달랑 농협하나뿐이라는 구먼. 벌써 올해만 봐도 읍네 점포들이 몇 개나 문을 닫았잖어. 점박이 생선가게는 애들 교육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갔고 과일가게 하던 노총각 이씨는 장사가 시원찮아서 농공단지 직원으로 들어갔구. 또 있어. 보건소 옆에 있던 옷가게도 말총머리 아가씨가 시집을 가면서 세를 내놓았지만 벌써 다섯달 째 비어 있다더라구.” 건물은 새 건물로 바뀌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둘씩 떠나는 것을 눈으로 지켜보면서 뭔가 아쉽고 그립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식엄마는 달랐다. “아줌니 걱정 말어유. 조금 더 지나면 고향 다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돼 있어유. 젊을때는 도시가 좋지만 나이 들면 시골을 좋아하잖아유. 우리나라도 이젠 고령화 사회가 되어서유 공기좋고 물맑은 곳 찾아 도시를 떠나는 사람들 곧 많아질거여유” “글쎄. 그것두 돈 있는 사람들 얘기지. 그 뭐여. 미국하고 에프티에이(FTA)도 협상중이라면서. 그러니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꾸 줄어들걸” “물론 그런 것 땜에 농촌 떠나는 이들도 있지만 우리는 않그렇잖어유. 약초재배하고 젖소키우고 그러면서 살면 됐지유 뭐. 대신 우리는 좀 특화된 영농이나 축산으로 가야겠지만유” 냉면 한 그릇씩 사 먹고 집으로 돌아온 민자씨는 도우미를 자청한 영식엄마의 지원 덕에 열무 김치 담고 육개장 한 솥 만들고 몇 가지 마른반찬을 불과 두 세시간 만에 다 끝내버렸다. # 3 군대서 휴가 나오는 자식 기다리는 엄마 심정으로 민자씨는 여동생네 가족을 기다렸건만 어찌된 일인지 오후 세기가 넘어도 오지를 않았다. 12시면 도착한다는 사람들이 안오니 걱정을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문제는 여동생 핸드폰도 않받구 집 전화도 받지 않았다. 뭔 일이 터진것 같은 기분에 안절부절 못하는 민자씨를 보고 남편은 나이가 먹어도 급한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핀잔을 주었다. 제부인 임서방 핸드폰에도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받질 않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오다가 교통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는 방정맞은 생각도 들었다. 시계가 5시를 가르키는데도 여동생 남편 그리고 두 딸 이 네 식구의 행방을 알 수 없는 민자씨로서는 참으로 막막했다. 실종신고를 내야 하는 건 아닌지 갈등이 되기 시작했다. 노심초사하여 대문밖에를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를 삼십여 분. 갑자기 크락숀 소리가 들여와 나가보니 집 앞에 여동생 네 차가 서 있는 게 아닌가? 차 문이 열리고 여동생이 제일 먼저 내리면서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순간 민자씨는 가슴이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나왔다. “야 이 지집애야 지금이 몇 시여. 뭔 사고라도 났는 줄 알았잖아” 나이가 사십이 된 여동생에게 오죽하면 지집애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것도 제부가 있는 자리에서. 민자씨 화를 버럭 내도 동생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사실은 언니 우리 내려오다가 휴게실에서 애 아빠 회사 사람을 만났잖아. 근데 자기 형네가 수해를 입어 일 도우러 가는 중인데 알고 보았더니 읍내 근처인거야.” 제부가 말을 거들었다. “글쎄 저희 회사 직원 부모님이 수해를 입어서 오는 길에 좀 도와주고 왔습니다. 제 핸드폰은 물에 젖어서 통화가 안되고 애 엄마 것은 또 밧데리가 없더라구요.” 여동생에게는 화를 냈지만 제부에게는 화를 낼수없는 일. 게다가 일 수해복구 도와준 집이 다름아닌 영식엄마가 걱정을 하던 화훼농장 그 집이었다. “하여튼 사람들이. 임서방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어유. 남 도와주는건 좋지만 나는 놀랬잖어유” 민자씨 그제서야 동생네 식구들을 거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이 날의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카들이 민자씨를 두고 놀리는 게 아닌가. “어머 우리 이모 호랑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가 눈물을 다 보이시네.” “나도 보았는데. 이모 우는 거. 이모 엄마 때문에 울었어. 나 때문에 울었어” “요것들이 그냥.” “하 하 하”. <필자연락처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