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마이 갓 ” “아니 그 지지배는 하필이면 왜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온다는 겨 그래. 참 환장하겄네. 영어라고는 ‘굿 모닝’ 밖에 모르는데. 참말로 까깝혀 죽겠네.” 민자씨는 서울에 있는 여동생의 대학생 딸이 외국인 교수를 데리고 목장을 놀러온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 여간 마음이 심란한 게 아니었다. 손님이니 밥 한끼는 해줘야하고 하다못해 인사말이라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음식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며 또 인사는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하지만 남편은 크게 긴장하는 구석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 심란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조급한 기색이 역력한 민자씨에게 괜한 걱정을 한다는 눈치다. “뭘 그렇게 걱정여. 아 된장찌개 좋아한다면서. 된장찌개 좋아하면 김치도 좋아할거구 그냥 있는대로 대접하면 되지 왜그렇게 안절부절여 그래.” “얼래. 저양반은. 아니 영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하는데다, 말이 그렇지 어떻게 된장찌개만 불쑥내놔요. 하여튼 남자들은 다 저렇다니까. 손님 치루는게 보통일인줄 알어요.” “아이구 이사람아 우리가 오라고 사정했나. 지가 오고 싶어오는데 뭘 그렇게 신경 써.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되는거지.” 여하튼 남편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민자씨는 달랐다. 형식엄마를 불러서 요리를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고 아침 일찍 읍네나가서 돈 십만원어치는 장을 봐다 놓고서야 마음이 조금 놓이는 듯 했다. 된장찌개와 잡채는 자신이 하기로 하고 불고기와 야채샐러드는 형식엄마에게 맡겼다. 옷은 그냥 치마에 스웨터를 입고 그위에 앞치마나 두르는 것으로 끝냈다. 음식을 하다 말고 형식엄마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줌니 미국 사람들은 인사할 때 포옹하며 입맞추잖아요. 그럼 아줌니도 그 미국교수님과 오늘 포옹을… 하하하” “아이구 형식엄마도 미쳤어. 무슨 첨 보는 남자하구 포옹을 혀. 그것도 남편이 쳐다보는 집에서. 아이구 남사스러운 얘기좀 하지 말어.” “어머머, 아줌니 텔레비전도 못보셨어유. 그 사람들은 그게 인사법이라니까유. 예의를 지키는게 그렇다니까유. 어찌됐든 우리 아줌니 오늘 서양 남자 한번 안아보겄네. 하하하....,” 형식엄마는 미국 사람 처음 보는 여자처럼 미국 사람 얘기로 수다를 떨었다. “근데 아줌니 그거 있잖아유. 그말이 진짜일까?” “그거라니 그건 또 무슨 말여?” “아이구 거시기 있잖어유. 그 뭐여, 거시기 코가 크면 남자들 거시기가 크다더나 어쩐다나. 그러면 미국남자들 코 크니까 거시기도 하하하하하…” “아이구. 별말을 다하네. 형식엄마 다시봐야겄네 뭔 그런 야한 얘기를 혀 그래. 누가 들을까 무섭네.” 민자씨는 마음이 조급해서 수다 떨 여유가 없는데 형식엄마는 음식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 놓았다. 12시가 다 되자 차 소리가 나더니 떠드는 소리가 들여왔다. 민자씨 남편은 조카딸과 미국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을 하면서 집으로 걸어들어왔다. 조카딸이 그녀를 보자 달려왔다. “이모 안녕하세요. 너무 갑자기 전화해서 죄송해요. 우리 교수님이 목장을 너무너무 좋아하시거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이모 힘좀 빌리기로 했지뭐.” “아이구. 어서와. 한 이틀전에라도 알려주지 그랬어. 그래야 뭐 먹을거라도 해놓는데. 그나 저나 인사는 어떻게해야되냐?” “아이구 그냥 대충해 이모. ‘글래두 투 밑 유’ 그러면 돼요.” 조카딸이 시키는대로 미국남자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민자씨는 웃는 얼굴로 “글래드 투 미트 유” 라고 했다. 그러자 미국인은 아주 반갑다는 듯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를 몇 구절은 떠들더니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섰다.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는데 된장찌게, 잡채, 불고기 등을 골구루 먹으면서 연신 조카딸과 남편을 쳐다보고는 웃는 모습이었다. 그 표정에서 민자씨는 특별히 문제는 없어 다행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김치를 입에 가져가 오믈거리던 그 남자 하는 말에 민자씨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버린게 아닌가? 그남자 말이 민자씨 귀에는 이렇게 들렸다. “디리 시었스 오-우 화 러 디리 시었스” 날이 풀해서 김장김치가 일찍 맛이 들긴 했지만 그렇게 못 먹을 만큼 신 것은 아닌데, 연신 되게 시다고 하니 이건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조카딸과 남편은 미안하지도 않은 냥 미국 남자의 놀라워하는 표정에 마냥 즐겁다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그 남자는 시어서 못먹겠다면서도 연신 젓가락을 김치에만 가져갔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웃긴 일은 또 일어났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 그 남자는 민자씨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땡 큐. 땡큐 베리마치. 화 러 디리 쉬었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없다고. 웃으면서 말하는 그남자에게 인상을 쓸 수는 없는 일 이었다. 아무리 김치가 시었다고 해도 그렇지 밥 잘 먹어놓고 또다시 “고마워요. 화나게 시어서”라고 말한건 뭔가. 민자씨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남편과 조카딸 그리고 그남자는 축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뭐가 그리 좋은 지 조카딸과 함께 눈으로 뒤덮힌 목장의 초지를 뛰어다니며 깔깔깔 웃고 떠들면서 어린애들처럼 놀았다. 그런 모습이 민자씨 눈에 예쁘게 들어올 리가 없었다. 아침부터 시장 보아다가 이것저것 한 상차려주었더니 김치 조금 시다고 그 난리를 떠는 미국남자가 도대체 이해가 되질 않았다. 휜칠한 몸매에 얼굴생긴 것이 근사하게 생겨서 첫인상은 그런대로 좋았는데 그후로는 완전히 ‘꽝’ 그 자체였던 것이다. 목장 주변을 돌면서 한참을 보내더니 남자와 조카딸은 해넘어갈때가 되어서야 돌아가겠다면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작은 선물 상자를 그녀에게 건넸다. 속은 말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물이라고 주니 받지 않을 수는 없어 억지로 미소를 띄우며 민자씨느 말했다. “때- 엥 -큐” 그러자 조카딸이 어슬픈 그녀의 말에 웃음소리를 내며 한마디 했다. “어머 이모 영어 잘하네. 그거 스카프야. 로버트는 선물을 잘하는 편이야. 되게 순수하고 정이 많아. 이모 봄에 또 놀러오고 싶다는데. 하하”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애니 타임” 그렇게 두 사람을 서울로 떠났다. 하지만 민자씨는 여전히 속이 풀리지 않고 약이 바짝 올라있었다. “참. 나 별사람 다봐. 기껏 정성들에 음식 장만했더니 잘 먹구나서 웬 김치타령이야. 뭐가 그렇기 못먹을 정도로 시었다구. 별 눔다본다니까” 그러자 남편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아니 당신은 그게 무슨말여. 김치가 시다니. 그 사람이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남편의 말에 민자씨는 더 화가 났다. 그 남자가 말하는 것을 듣고 웃었던 남편이 아니가? “아니 당신두 웃었잖어유. 그 남자가 김치 시다고 하니까?” 그제서야 남편은 무언가 생각난 듯 손바닥으로 무릅을 치더니 껄걸 웃는거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오 마이 갓”이 아닌가? 잠시 후 남편은 얼굴이 빨갛게 닳아올라 있는 민자씨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 사람이 한 말은 시었다는 게 아니라 ‘왓 어 딜리셔스’(What a delicious). ‘너무 맛있다’는 말이야. 당신이 오해를 했네. 허 허허” 순간 민자씨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부족한 영어실력이 결국 자신 스스로 오해와 화를 불러오게 한 것이었다. 남편 얼굴 보기가 민망해진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내리고는 이렇게 외쳤다. “오 마이 갓. 왓 어 딜리셔스.”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