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은 오버도 필요한 것 같어유 ” “오빠. 오늘 아침 메일 받았어요. 너무 반갑네요. 그렇게 인기 좋던 오빠가 시골에 산다니 좀 놀랍네요. 결혼도 늦게 하셨나봐요. 오빠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옛날에 김수미만 아니었어도 내가 오빠를 내 사람으로 만들었는데..하하 . 오빠 메일 주세요. 언제가 편하신지. 서울서 한 시간 십분 거리면 승용차로는 한 시간도 안걸리겠네요.” “너무 오랜만이다.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만나자. 나는 촌사람이니 특별히 요일에 상관 없단다. 차를 가지고 가면 오히려 시간이 걸리니 고속버스를 타고 갈 생각이다. 나도 너의 변한 모습이 무척 궁금하구나 ” “오빠. 저도 오빠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남편도 일주일간 해외출장이고 그래서 시간은 상관없으니 수요일 11시쯤 고속버스터미널 2층 커피숍에서 만나요. 나이 사십이 넘었는데도 오빠 만날 생각하니 떨리는 거 있죠.” 영식엄마가 왜 호들갑을 떠는지 글을 다 읽고나서야 이해가 갔지만 대체 어떤 여자인지 궁금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얼러려. 영식아빠가 서울까지 올라간단 말여. 대체 어떤 여자길래 그려.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 이구먼. 가을은 고독한 남자의 계절이라더니. 이게 뭔 일이여” 메일에서 긁어서 프린트를 한 문제의 종이를 다시 잡은 영식엄마의 손이 떨고 있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한다고 했던가. 상대편 안스러워하는 척 하면서 비슷한 사건들을 늘어놓아서 상대편 가슴에 불을 더 뜨겁게 질러 놓는 것이 여자들 수다 떠는 유형 중 하나가 아닌가. “우리 고향친구 하나가 작년에 이혼했잖어. 그 착한 애가 나이 쉰 다섯에 이혼을 할 정도면 알만하지. 젊었을때 허구헌날 바람피워 속을 썩었거든. 근데 작년에 또 바람을 피웠다잖어. 그것도 한 아파트에 사는 젊은 과부년하고 붙었데. 얼굴 들고 살수가 없어서 아예 이혼했다는구먼. 남자들은 워째 한 여자에 만족을 못 하는 겨 그래. 에구 - 그나저나 영식아빠는 바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혹시 고향 친척동생이나 뭐 그런 여자 아녀.” 민자씨의 말에 영식엄마는 홧김에 큰소리를 냈다. “아이구 아줌니도. 고향 친척 같으면 제가 다 알지유. 글구 혼자 몰래 만날 이유가 뭐 있어유. 분명 옛날 애인일거여유. 여자는 남자를 잊어두 남자들은 첫사랑이나 옛날 사랑했던 여자를 못잊는다잖어유. 이대로 그냥 있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떡하지유. 아줌니 ” 두 여자는 작전을 짰다. 수요일 날 아침 일찍 두 여자는 읍네 시장을 간 다음 미리 터미널에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영식아빠의 뒤를 밟기로 결정했다. 화요일 저녁 영식아빠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내일 서울 좀 갔다올께. 아이구 고등학교 동창녀석이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들 갔다 왔다고 하더라구. 올라 간 김에 예전에 같이 일했던 구차장하고 김상무도 좀 만나보고 올 라구” 아예 늦게 내려오겠다는 것을 못박는 말이었다. 남편의 이같은 거짓말에 영식엄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일단 참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읍네 버스터미널에 가서 잠복을 한 두 여자는 영식아빠가 고속버스를 타는 것을 보고 20분후에 있는 그 다음 차를 탔다. 터미널2층 커피숍이라고 했으니 찾기는 쉬웠다. 영식엄마는 커피숍 맞은편 제과점에 앉아 있고 민자씨는 머리에 머플러를 휘감고 고개를 숙인 체 커피숍으로 들어가 구석자리에 앉았다.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답답하긴 했지만 서로 마주보며 웃고 떠드는 모습이 보통사이는 아닌가 싶었다. 이십여분을 지켜보았을까.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앞서 걸어가더니 찻값을 계산하고는 영식아빠의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민자씨는 그들을 뒤쫓아 나갔고 행여 놓칠세라 제과점에서 불안하게 서 있던 영식엄마와 합류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탄 두 남녀는 터미널 뒷 골목으로 들어갔다. 식당과 모텔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은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오가는 이들로 북적였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모텔건물 1층에 자리한 샤브샤브전문점 이었다. 식당안은 커피숍처럼 크지를 않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두 여자는 그들이 밥을 먹고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나오자마자 모텔 엘리베이터를 타면 상황은 끝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 인지 밥을 다 먹고 나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두 사람은 나오질 않았다. 그제서야 안으로 들어간 민자씨의 눈에는 영식아빠도 여자도 보이질 않았다. 그녀의 눈에 띈 것은 식당내부에서 모텔로 통하는 문이었다. 더 이상의 추리가 필요 없어진 셈이다. 식당문을 열고 나온 민자씨는 영식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영식엄마는 더 이상 생각할 것이 없다고 결정했는지 모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뛰어갔다. 문제는 그 순간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여자가 쇼핑백을 들고 나오는 거였다. 영식엄마의 순발력은 대단했다. 나오는 여자를 벽쪽으로 끌어 잡아당긴 후 여자의 손목을 잡았다. “야, 너 누구야, 우리 남편 어딨어. 바른대로 불어.” 민자씨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젊은 여자가 뭐 할짓없어 남의 서방을 건드려. 세상 말세구먼” 여자는 갑작스런 두사람의 출현과 공격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더욱 놀라웠다. “당신 누군데 지랄이야. 야 시간 없어. 울 오빠 바지 다려와야 돼. 별 미친년들 다보겠네” 영식엄마는 여자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뭐 이런 나쁜 년이 다 있어. 오빠, 야 이년아 언제부터 내 서방이 니 오빠가 됐니” 이쯤되자 식당집 주인은 물론이고 손님들이 뛰쳐나와 싸움을 말리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식당집 여자가 끼어들어 영식엄마를 떼어놓으면서 문제의 여자에게 “어머 사모님 이걸 어쩌지요. 괜찮으세요” 라며 사정하듯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여자의 머리는 정신없이 흐트러지고 브라우스는 찢어지고 쇼핑백의 바지는 바닥에 팽개쳐지고 그야말로 꼴사나운 광경이었다. 알고 보니 사연은 이랬다. 여자는 영식아빠 고등학교 친구 여동생으로 그저 오빠 동생하며 친했던 사이인데 자신의 친오빠가 몇 년 전 지병으로 일찍 세상을 뜨고 나자 오빠생각이 나서 인터넷 동창회 사이트에서 영식아빠를 수소문해 연락이 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저 점심이나 먹으려고 여자가 친구들과 단골로 다니는 이 음식점에 오게 됐는데 마침 일하던 아줌마가 음식을 들고 가다 넘어져 영식아빠 바지를 온통 국물로 버려놓았단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집 방인 2층으로 영식아빠는 올라가 주인집 남자 옷으로 갈아입는 사이 여자는 옷을 세탁소에 가져가 급히 해결하려 했던 것 뿐 이었다. 그런데 이 난리가 났으니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난동을 피운꼴이 된 두 여자는 낯선 그 여자에게는 미안하다고 두 손으로 싹싹 빌어야했고 식당집 주인에게도 머리를 조아려 죄송하다는 뜻을 비춰야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영식아빠와 엄마는 며칠동안 각방을 쓰면서 서로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고 민자씨는 행여 영식아빠와 눈이 마주칠까 두려워 문밖으로 나가는 게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10여일이 지난 어느 날 민자씨를 찾아와 영식엄마가 하는 말은 참으로 쇼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영식아빠가 더 잘 해줘유. 뭐 내가 자기를 그렇게 많이 사랑하는줄 몰랐다나유. 이 참에 확인이 됐다면서 요즘 밤이면 밤마다 귀찮게 혀서 죽겄시유. 가끔씩은 오버도 필요한 것 같어유 하 -하” 그날 민자씨 자신도 남편의 메일을 검사해보겠다고 마음 먹고 가까스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내 추적을 했는데 실망스럽게도 남편에게 온 메일들은 하나같이 ‘싼이자 대출’, ‘비아그라 특별 판매’, 성인병 치료의 선구자’, ‘남성 확대수술’ 등등 이더란다.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