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갈병(당뇨병)의 이해 “100년만의 더위가 온다”, 혹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상반된 예측으로 시작된 올 여름은 그 어느 해보다 무더웠습니다. 8월 하순을 기준으로 말라리아 환자가 전년대비 10% 이상 증가하였다고 하는데 그 원인이 열대야에 의한 야외활동 시간의 증가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렇듯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던 더위는 어느새 가버리고 하늘은 높아지고 아침, 저녁으로는 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딱 이맘때 같으면 좋을 가을에 건강관리를 잘하여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여야겠습니다.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질병들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많은 질병이 정복되었고 또 새로운 질병들이 출현하여 사람들을 위협하는 질병의 주연들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예전의 모자람, 궁핍함의 시절에 비해 지금은 넘침, 윤택함의 시대이기에 질병 또한 그 넘침과 윤택함이 원인인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한 원인에 의한 질병을 우리는 성인병이라 부르는데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동맥경화 등이 이에 속합니다. 모든 질병의 고통이 적지 않지만 먹는 즐거움을 절제의 고통으로 바꾸어 버리는 당뇨가 윤택함의 시대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질병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당뇨는 한국인 100명 중 적어도 5명 이상이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어 어떤 질환보다도 흔하며, 그 합병증으로 인한 환자수와 사망율도 날로 증가하고 있어 사회적, 경제적 손실이 증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당뇨병은 일단 발병하면 완치가 쉽지 않은 질병으로 평생 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환자가 많습니다. 따라서 당뇨병을 이해하고 예방·관리하는 지식을 가지는 것이 더 이상 환자들만의 몫이 아닌 것입니다. 당뇨는 말 그대로 소변을 통해 당(포도당)이 배출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포도당은 인체 내 세포의 에너지로 쓰이는 물질이므로 신장(콩팥)에 이상이 없는 한 버려지지 않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혈액 속의 포도당 농도가 180mg/dL 이상으로 상승하게 되면 신장에서 포도당을 소변 속으로 방출하게 됩니다. 포도당은 세포막에 존재하는 포도당 수송체(glucose transporter)에 의해 세포 속으로 운반되는데, 포도당 수송체는 인슐린(insulin)의 도움 없이는 포도당을 운반하는 기능을 할 수 없습니다. 당뇨병 환자의 혈액내 포도당 농도가 상승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인슐린이 부족하거나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송유관(혈관)내에 공장(세포)의 동력으로 쓰일 석유(포도당)는 충분히 흐르는데 이 석유를 공장으로 보내 주는 펌프(인슐린의 도움에 의해 움직이는 포도당 수용체)가 충분히 작동되지 못하여 공장(세포)에는 에너지 공급이 부족해지고 송유관(혈관)내의 석유(포도당)가 엉뚱한 곳(소변)으로 흘러나가는 현상인 것입니다. 당뇨병 환자들이 소변을 자주 많이 보게되고 그에 따라 갈증을 느끼며 물을 많이 마시게 되는 것을 다뇨, 다갈, 다음이라 하는데 이러한 증상은 포도당이 신장에서 소변으로 빠져 나올 때 물을 끌고 나가게 되어 소변량이 늘고 탈수 현상이 초래되어 갈증이 느끼게 되어 생기는 것입니다. 당뇨병의 발병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규명이 되어 있지 않았지만 밝혀진 바에 의하면 유전적 소인이 가장 큰 발병인자입니다. 만약, 부모가 모두 당뇨인 경우 자녀의 당뇨병 발병률은 30% 정도이고, 한 사람만 당뇨인 경우는 15% 정도입니다. 이외에 비만, 식생활, 호르몬 분비의 이상, 스트레스, 약물 등이 당뇨의 발병과 관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당뇨병을 ‘소갈(消渴)’이라 칭합니다. 한의학의 역대 저서에 비록 당뇨병이라는 말은 없지만, 당뇨병에 대한 인식은 일찍부터 있었습니다. BC 400년경부터 이미 ‘소(消)’라고 하여 입맛이 달고 소변량이 많아지는 증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후 이러한 증상을 ‘소갈’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후대에는 ‘소갈’ 자체의 증상만이 아니라 ‘소갈’의 합병증까지도 관찰하고 기록하여 치료방법, 발병기전 등에 대한 연구가 있어왔습니다. ‘소갈’의 ‘소(消)’는 소모의 뜻이며, 위나 대장의 이상으로 소화액이나 소화기 내분비계에 이상이 초래되어 체중감소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명문, 간, 담, 삼초의 인체 기능 활동의 원동력인 상화(相火)의 이상 항진이 지속되어 야기되는 체중감소도 ‘소’라고 합니다. 아울러 ‘소갈’의 갈(渴) 역시 내열에 의해 체액이 감소되어 갈증이 유발되고, 이에 따라 수분 섭취를 갈구하는 증상이 말합니다. 즉 ‘소갈’의 기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음허조열(陰虛燥熱)한 것입니다. 열(熱)이 폐음(肺陰)을 상하면 진액이 고갈되므로 아무리 물을 마셔도 갈증이 나고, 열(熱)이 위음(胃陰)을 상하면 위화(胃火)가 타올라 아무리 먹어도 배가 고프며, 열(熱)이 신음(腎陰)을 상하면 소변량이 많아지고 잦아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한의학에서는 소갈을 기능이상의 차이에 따라 각각 상(上)·중(中)·하(下)소로 구분하였는데 폐기조(肺氣燥)는 ‘상소’로, 위대장(胃大腸)의 조열(燥熱)·결취(結聚)나 비열(脾熱) 혹은 비허(脾虛)나 소장열(小腸熱) 등은 ‘중소’로, 신수부족(腎水不足)에 의한 음허(陰虛)나 신양부족(腎陽不足)에 의한 양허(陽虛)는 ‘하소’로 구분하여 치료합니다. 이러한 소갈의 음허조열(陰虛燥熱)을 만드는 원인을 한의학에서는 음식부절(飮食不節), 정지부조(情志不調), 번로과다(煩勞過多), 약물중독(藥物中毒), 병후혈쇠(病後血衰), 기후기상부조(氣候氣象不調) 등으로 봅니다. 음식부절은 고량진미(膏粱珍味), 주락동유(酒酪潼乳) 등 음식을 절제치 못한 것으로 이러한 음식물들은 조습내열(助濕內熱)의 성질을 갖고 있어 진액을 고갈시키기 때문에 ‘소갈’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일반적인 음식물 섭취의 문제를 말합니다. 정지부조는 칠정(七情)의 부조, 그 중에서도 특히 격노(激怒) 등이 간기(肝氣)를 울결(鬱結)시켜 진액이 소모되어 조열(燥熱)이 결취(結聚)되는 것으로 스트레스에 의한 발병을 말합니다. 번로과도는 노상과도(勞傷過度), 애욕자정(愛慾恣情)에 의하여, 약물중독은 단석열약(丹石熱藥)의 남용에 의하여 진액을 손상시켜 ‘소갈’의 원인이 되고 병후혈쇠는 질병의 이환 후 혈(血)부족에 의하여 조열(燥熱)이 결취(結聚)되기 때문에 ‘소갈’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도 이번 호에 이어 당뇨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필자연락처 : ☎ (02)2247-1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