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도 더운데 더위 먹었수?” “아이구 올해는 제대로 챙기지도 못했네. 아그들이 얼매나 서운할까. 내가 부지런했어야 했는데 그만 엉뚱한데 신경쓰다 보니 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했네.” “아따 자기는 별걸 다 갖구 신경쓰네. 애들이 한 둘여. 아이구 갸들 옷 다해줄라면 돈 좀들어가겄네. 돈 안 쓰고 잘 지나갔네 뭘.” “그런 말 말어. 아그들이 말을 안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다 서운하다고 생각했겄지. 지들이라고 속이 없겠어.” 동갑계원들이 모여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민자씨와 수퍼댁은 모처럼만에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자씨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속을 알 만큼 가까운 수퍼댁은 민자씨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 의리에 강한 여자였다. 여자들 여럿 모이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사실. 거기다 질투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니 남자들 모임은 술과 여자타령이지만 여자들 모임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말싸움 빼놓으면 시체다. 민자씨와 수퍼댁 정겨운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미장원집 여자가 그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머 손자들 생일이었어요? 아님 조카들 생일이었나? 요즘같은 불경기에 어디 신랑 생일인들 제대로 챙기겠어요.” 수퍼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웬 손자? 목장댁 손자가 몇이라도 돼. 뒤퉁맞은 소리 하고는” 미장원여자는 빨간 립스틱에 발간 매니큐어 거기다 빨간 원피스를 입어 완전히 빨간여우가되어버린 듯하지만 이마의 주름살은 지울수가 없으니 그야말로 심술궂은 늙은 여우처럼 보였다. 수퍼댁의 말에 뾰로퉁해진 미장원여자는 그래도 질수없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아 말하는거 들어보니 아그들이라고 하더구만 그러니 손자나 조카들인줄 알았지 뭐. 자기는 내가 말하면 꼭 쏘듯이 말하더라. 흥” 드디어 두 여자의 말싸움이 시작됐다. 수퍼댁의 입담도 보통은 넘었다. “어머, 자기가 무슨 10대소녀인줄 아나봐. 어른이 돼서 ‘흥’은 또 뭐야. 너무 이쁜척 한다. 그리고 우리 목장댁이 아그들이라고 한 아그들은 바로 금덩이같은 젖소들 말하는거야. 남의 얘기를 제대로 알고 끼어들던지, 참” 그러자 미장원여자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호호호 너무 웃긴다. 무슨 젖소들에게 옷을 입혀. 어머머 정말 웃긴다. 그리고 뭐라고 하더라. 응 옷을 못해줘서 서운하다고 했다. 어머 목장댁 정말 재밌다.” 이쯤되니 여자들 시선은 온통 민자씨에게 집중이 됐고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홍당무가 돼버렸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니 자기는 뭐가 그렇게 웃긴다는 거여. 아니 엊그제 6월1일 ‘우유의 날’이었거든. 그러니 몸바쳐 우유생산하는 우리 젖소들 생일이나 다름없으니 그렇게 말하거여. 뭐가 잘못됐남” 그러자 여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고 피식 웃기도 하고 제각각인데 유독 미장원집 여자는 호들갑을 떨었다. “젖소의 날. 어머 그런것도 있다니 정말 재밌다. 그러다 젖소부인의 날도 있겠다. 왜 그 영화 있잖아 ‘젖소부인’이라구. 호호호” 기분이 불쾌해진 민자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봐요. 미장원, 아니 자기 너무 교양없다. 지금 나를 두고 젖소부인 운운하는거야 뭐야.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면 안되지. 참는것도 한계가 있는거야” 이쯤되자 수퍼댁도 가세했다. “정말 웃기지도 않네. 자기는 그 주먹만한 개새끼를 자기 딸처럼 여기면서 하루에 먹이는 것만도 5천원어치가 넘는다며. 자기는 개새끼 좋아하는거 하구 우리 목장댁이 젖소 사랑하는거하고 뭐가 차이가 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아 젖소야 우유 생산해서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게 해주니 업어줘도 시원찮지. 그런데 그 주먹한 개새끼는 복날이 돼도 안팔리잖아. 아니 어떻게 자기 일은 로맨스고 남의 일은 불륜 취급혀” 수퍼댁의 과격한 말에 드디어 싸움이 붙었다. “어머 이 여편네들이 한통속이네. 뭐, 복날에 안팔린다구. 야 너 말 다했어” 머리를 쓸어 뒤로 젖히면서 미장원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퍼댁에게 달려 들려고 했다. 하지만 힘센 수퍼댁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 “야, 너 나하고 지금해보자는 거여. 뭐 이런 싸가지 없는 년이 다 있어. 남의 머리나 만져주는 주제에 누구한테 반말이야. 나이도 한살 어린 년이 까불기는” 수퍼댁은 말과 동시에 일어나 미장원여자 머리를 낚아챘다. 호리호리한 미장원여자 힘으로서는 역부족이었다. 한순간에 머래채를 잡힌채 앞으로 넘어진 미장원여자. 그래도 입은 살아있어 맞대응을 했다. “어 이뇬이 사람죽이네. 돈 벌었으면 죽여봐라 이뇬” 갖자기 식당안은 아수라장이 됐고 여자들은 말린답시고 동시에 엉키고 설켜 그야말로 가관이 아니었다. 두 여자의 싸움은 단 5분도 못지나서 수퍼댁의 손에 하웅큼의 머리카락이 남는 한판 승부로 끝이났다. 민자씨는 여러모로 마음이 무거웠다. 결국 싸움은 자신 때문에 벌어졌는데 실제적인 몸싸움은 슈퍼댁이 대신했고 싸움으로 인해 두달만에 모인 동갑계 자리는 밥 한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파장을 맞았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몸둘바를 몰랐다. 미장원여자와 친한 세명의 여자들은 그녀를 끌고 미장원으로 갔으니 남은 사람은 계원 12 명중 8명이 남아 있었다. 회장을 맡은 군청 사모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모처럼만에 만났는데 이런 불상사가 생겨 미안하구요. 모든게 회장인 제가 잘 이끌지 못해 생긴것이니 저를 욕하십시오. 단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는 하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에 조심을 기해야 할 필요는 있네요. 싸움이란 늘 사소한 것에서 발단이 되거든요. 아 다들 기분 푸시고 어차피 모인 자리니 어서 점심이나 먹고 나가서 2차로 맥주 한잔씩 하자구요. 날도 엄청나게 덥잖아요”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는 민자씨나 수퍼댁을 나무라는 사람들은 없었다. 한결같이 남의 일 참견하기 좋아하고 소문 퍼뜨리는데 선수급인 미장원여자를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수퍼댁 말이 맞어. 그 여자는 그 주먹만한 개라면 죽고 못살더라구” “사실 우리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린데 하도 끼워달라고 해서 허락했더니 결국은 이런 불상사가 나는구먼” “여휴 나는 그 여자 화장한 얼굴만봐도 마음이 심란해. 술집마담 스타일이잖아.” “맞어. 그 여자 너무 야한 것 같더라. 우리 취향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어” 결국 계모임은 미장원집 여자 흉보는 것을 안주삼아 맥주 한잔씩 마신 뒤 끝을 냈다. 하지만 민자씨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두 사람을 화해시켜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수퍼댁을 구슬러보았지만 전혀 화해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그날 저녁 민자씨는 두사람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 수퍼댁에게는 ‘미장원여자가 많이 미안해 하는데 신랑이 있어 못찾아갔다’고 말하더라며 이해하라고 했다. 또 미장원여자에게는 ‘사실 수퍼댁이 성격이 급해서 그렇지 특별한 마음이 있어 그런게 아니며 이미 마음은 풀렸다. 그리고 워낙 뚝뚝한 성격이어서 직접 대놓고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자 두 여자 모두 시간이 흘러서인지 한풀씩 누그러져서 자신들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 민자씨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가 싶었다. 더 큰 일로 확대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며 남편에게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이튿날 읍내를 다녀온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녀를 아주 우울하게 만들었다. “사료 사러 가는데 말여. 미장원 앞에서 수퍼마켓 아줌마하고 미장원집 여자하고 머리를 잡고 싸우더라구. 읍네사람들 한 백여명은 몰려들었을거여. 아이구. 수퍼 아줌마 힘이 장사더구먼. 미장원집 여자 어디가 부러졌는지 나중에는 엠블런스가 와서 실고 갔다니까. 여자들 싸움 무섭더라구.” 남편의 말을 듣고 난 민자씨는 말성임 끝에 전화를 들었다. 사실 어제의 일 때문에 오늘 다시 싸움이 난거라는 생각에 그녀로서는 난감할 뿐이었다. 민자씨 조심스럽게 수퍼댁에 싸웠느냐고 묻자, 갑자기 수퍼댁은 요란스럽게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그야말로 민자에게는 충격이었다. “아이구. 참 나. 아저씨두. 말씀을 잘 하셨어야지. 내가 아니고 아 미장원 앞에 있는 미성수퍼있잖어. 그 집 여자하고 한판 했나보더라구. 결혼식 갈려구 머리하러 갔는데 잘못해서 완전히 컷트머리가 됐다잖아. 그래서 말다툼끝에 싸웠나보더라구. 아이구 그 여편네. 허구헌 날 싸움질이네. 어제는 나하고 하더니. 하하하” 전화를 끊고 나자 민자씨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마당에 있는 남편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여보, 날도 더운데 더위 먹었수. 미성수퍼 여자라잖아 .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하지만 남편도 할말은 있었다. “어쨌든 수퍼마켓 아줌마인 것은 맞잖어. 내가 언제 당신 친구라고 했는가. 참 사람두” 결국 이 일로 토라진 민자씨는 날도 더운데 남편과 이틀동안 말을 하지 않고 보냈단다. 목장집 젖소부인인 그녀 입장에서는 속이 터지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