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공범이야 ” “ 엇그제는 야채 담아 먹는 통 있잖아. 락앤락인지 록앤락인지 하는 거 그거 줬다고 하더라구. 아이구 생각만해도 아까워 죽겠다니까. 자기 때문이야. 하필이면 그런 날 결혼식장엘 가구 그래. 오늘도 정말 괜찮은 제품이라고 하더라구 ” 수퍼댁은 오늘도 신이 나있었다. 오늘은 은 나노가 들어간 방석을 준다고 했다. 민자씨도 아침 먹자 마자 곧장 읍네로 나와 수퍼댁 손을 잡고 행사장 앞에서 줄을 섰다. 처음에는 사은품 하나 받을려고 별짓 다한다 싶어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막상 공짜로 받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게다가 나노제품 행사장은 알고 보았더니 앉아만 있어도 돈이 생기는 그런 곳 이었다. 아침 10시쯤 가면 차 한잔씩 주고 건강에 대한 이런 저런 좋은 얘기 해주고 집에 갈 때는 참 숯, 화장지, 칫솔, 올리브유, 반찬통 등등 매일같이 사은품을 나누어주는 게 아닌가? 그녀는 속으로 ‘ 그래 나도 별수 없는 아줌마다 ’ 라고 생각하고 이왕 시작한 거 받을 수 있는데 까지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그 이튿날부터는 더 열성적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무엇 때문에 공짜서비스를 하는지였다. 처음에 수퍼댁이 말해서 따라갔을 때는 하루 이틀 하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장장 세달동안을 그렇게 한다고 하니 민자씨는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 이었다. 나노제품 홍보를 위해서 하는 행사라지만 민자씨가 일주일간 공짜로 얻어온 제품만해도 승용차로 한트럭은 될 만한 양이니 자선단체도 아닌 기업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낭비가 아닌가 싶었다. 가기만 하면 한보따리씩 받느다는 소문이 퍼지자 곳곳에서 여자들이 밀려들었고 결국에는 매일 300명씩만 선착순 입장을 시키는 일까지 벌어졌다. 수퍼댁은 가게를 신랑에 맡겨놓고 올 정도로 공짜 물건 받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 오늘 왜 방석 준다고 했잖아. 근데 그보다도 나는 멋쟁이 강사얼굴 보는 게 더 신날 것 같구먼. 아이구 왜 엊그제 우리가 않왔잖어. 그날 웰빙시대 건강에 대해 강연을 한 남자가 그렇게 말도 잘하고 잘생겼다잖어. 여자들이 박수를 치고 난리가 아니었데. 그래서 오늘 또 한번 한다잖아 ” 인기 스타들 보려고 학교도 안가고 극장에 갔던 여고시절 그때 친구들처럼 수퍼댁은 소녀처럼 뭔가에 빠져도 단단히 빠진 듯 보였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가 된 수퍼댁의 얼굴을 보면서 민자씨는 속으로 또 이런 생각을 했다. ‘ 그래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구.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늘 청춘인 것을 뽐내는 게 너나 할것없이 모든 인간들의 공통점인가보다 ’ 라고. 줄을 지어 늘어섰던 여자들은 문이 열리자 우루루 들어가 강의실에 앉았다. 민자씨와 수퍼댁은 앞쪽에 있었으니 당연히 강의실 맨 앞쪽의 의자에 앉았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는 모범소녀들인양 좋은 얘기하면 받아 적을 수첩까지 꺼내 놓고 강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마이크를 들고 나타나 00유통 상무라고 소개를 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니 민자씨 막내 남동생 친구 만수였다. 한 동네 살았기에 서로 기까이 지냈던 터라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민자씨는 만수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만수씨는 어렸을때 그대로였지만 키가 훌쩍 큰데다 차려 입은 옷 부터가 그야말로 세련된 중년신사 그 자체였다. 민자씨는 그를 보는 순간 놀라기도 했지만 어느새 나이가 들어 이런 행사장에 찾아온 자신을 생각하니 창피스러움이 앞서 차마 고개를 ! 들 수가 없었다. 이런 민자씨 입장을 수퍼댁이 알 리가 없었다. “ 아이구 저 얼굴좀 봐. 여자들이 환장하게 생겼구먼. 아이구 탈랜트는 저리가라네. 워매 저 느끼하게 웃는 눈좀 보라구. ” 수퍼댁은 민자씨 옆구리를 찔러대며 수다를 떨어댔다. 만수는 말도 기가막히게 술술술 물흘러가듯이 청산유수처럼 해댔다. - 우리 어머님들 제일 중요한 게 무엇이죠. 남편, 자식, 돈 ? 수십년 옆구리 부여 잡고 살 맞댄 남편 지금쯤이면 싫증 날 때 도 됐지요. 아 얌전하게 가만히 있고 시키는대로만 움직이는 가전제품들도 일이년 쓰다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가끔씩은 화도 내고 저 잘난 멋에 설쳐대지를 않나. 게다가 돈 좀 있으면 마누라 몰래 젊은 여자들하고 바람이나 피워대는 남자가 뭐 그리 애착이 가겠냐 말입니다. 자식들도 마찬가지죠. 시집 장가 가면 부모생각은 안중에도 없는 자식들 물론 잘되길 바라는 건 엄마 마음이지만 다 소용없다구요. 그렇다고 돈이 전부냐. 그것도 아니거든요. 돈이 많으면 뭐 할 겁니까. 몸은 병들고 허리는 구부러졌는데 돈 있다구 해외여행을 갈 겁니까. 캬바레를 갈 겁니까. 결론은 뭐죠. 저기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건강이죠. 일단 건강하고 봐야죠 .......“ - 강의를 들으면서 민자씨는 몇 번이고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보면 볼수록 그럴듯한 외모와 달변가나 다름없는 말솜씨가 그녀로 하여금 혹시 만수가 아닌 비슷한 사람인가 싶은 생각을 갖게 한것이다. 하지만 그는 만수였다. 강의가 끝나자 남자는 민자씨 앞으로 다가왔고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인사를 하는 게 아닌가? “ 누님 이게 얼마만입니까. 민혁이 한테 여기 어디서 목장 하신다는 얘기를 듣긴했는데 이렇게 만날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이구 아직도 얼굴은 옛날 그대로 미인이시네요 ” 민자씨 피할수도 없는 상황인지라 어쩔 수가 없었다. “ 어머 오랜만이네. 나는 비슷한 사람이란 생각은 했지만 설마 동생일까 했어. 맞구나. 어쩜 그렇게 말을 잘해 ” 강의실을 빠져나가던 여자들이 하나같이 뒤를 돌아보며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수퍼댁은 말할 것도 없이 놀란 토끼 그 자체였다. 침이 마르도록 내내 멋있다고 떠들어댔던 이 남자가 민자씨에게 누님이라고 하니 이게 왠일인가 싶은 것이었다. 만수는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며 민자씨는 놔주질 않았다. 결국 갈비탕집을 자리를 옮긴 두 사람. 너무 오랜만인지라 특히 민자씨가 처음에는 낯설어했지만 식사를 하면서 옛날 얘기를 하다보니 잘생기고 훤칠한 유통업체 상무 만수는 그저 귀여운 동생 친구일뿐이었고 나이는 들었지만 여고시절 얼굴 그대로인듯한 예쁜 민자씨는 예날 그대로 ‘예쁜누나’ 였다. 두사람은 밥을 먹고 나서도 커피를 마시며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민자씨가 누구인가? 궁금한 거는 못참는 사람이 아닌가? 그래서 입을 열었다. “ 동생 궁금한 게 있어. 우리네야 허구헌날 좋은 사은품 받고 살이 되는 강의 들어서 좋지만 회사는 뭐가 남는 거야. 나라에서 뒷돈이라도 대주는 거야 ” “ 아이구 누님은 어느 나라에서 민간 유통업체 돈을 대주겠어요. 그건 아니구요. 사실 이 얘기는 누님 혼자만 알고 계셔야 합니다. 친구분들에게도 말씀하시면 절대 안됩니다. 다음주부터는 행사장 한켠에 새로운 제품들이 진열됩니다. 지금은 만원 이만원짜리 싼 물건이지만 다음주에 전시되는 제품들은 보통 50만원부터 비싼 것은 이백만원짜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계속 강의하는 내용이 뭡니까. 웰빙시대 건강이거든요. 처음에는 머뭇거리다가도 강의 계속해서 듣다보면 안살수가 없다구요. 게다가 6개월 할부를 판매하니까 부담도 덜하구요. 물론제품이 좋긴 하지만 가격은 비싼 거지요. 원가 계산하면 10배도 넘게 남는 장사지요. 그동안 사은품 준 비용 다 거기서 빼는 겁니다.. 사고 나서 후회하는 분들 많지요. 그런데 받은 게 있어서 나중에 불만이 생겨도 아무 말 못한다구요. 누님은 아무것도 사지 마세요. 아셨죠. 마지막 철수하고 가는 날 제가 몇가지 드리고 갈테니까 절대 사지마세요. ” 그제서야 민자씨 이해가 갔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민자씨로서는 고민스럽지 않을수 없었다. 일주일 지나자 만수말대로 비싼 제품들이 행사장에 진열됐고 연일 달라지는 유명강사들과 그들의 말솜씨에 여자들은 백만원 이백만원어치씩 마구 사기 시작했다. 수퍼댁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수퍼댁은 제품 구입에 관심 없어 보이는 민자씨를 졸라댔다. “ 목장댁 우리는 은나노 매트 사자. 80만원이라는데 남자들 그것도 좋아진다잖아. 사자. ” 하지만 민자씨는 행사가 끝나면 그냥 굴러들어올 제품인데다 원가가 8만원도 안된다는 말을 들은 이상 구입은 미친짓이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민자씨는 핑계를 댔다. “ 나도 사고 싶지. 그런데 아휴 요즘 우리 쪼들려 할부로 구입하는 것도 힘들다구. 난 다음에 살래 ” 그러자 이번엔 그야말로 거절하기 힘든 말을 하는 게 아닌가? “ 저기 목장댁. 그러면 내가 우리카드도 6개월할부에 사줄테니까 나한테 내면 되잖아. 돈 있을 때 천천히 갚아” 이 말을 들은 판매직원은 수퍼댁의 제안에 “ 어머 어머니 너무 현명하세요. 두 분 우애도 너무 좋구요. 그냥 눈 딱감고 구입하세요 ” 라면 포장된 제품 두개를 그녀들 앞으로 내미는게 아닌가? 순간 민자씨 자신은 속이 나빠서 급히 화장실좀 다녀오겠다면서 제품구입은 다음하겠다고 말하고는 급히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수퍼댁은 매트 80만원, 기능성화장품셑트 50만원 이렇게 130만원어치를 그날 카드로 구입했다. 이튿날 민자씨는 입에서 13만원이라는 말이 빙빙 도는데도 차마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그리고 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 친구에게 사실대로 말을 안했으니 나도 공범이야. ”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