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야 뭐야 뭐야? ” 결혼식, 칠순잔치, 돌잔치, 개업식 등등 5월이 되면서 목장댁 민자씨는 토요일 일요일 집에서 엉덩이 붙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3년 전 큰아들 결혼을 시킨데 다 올 가을쯤에는 작은 아들도 결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보니 다른 집 애경사를 더더욱 일일이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 한사람은 목장을 돌봐야 하니 웬만해서는 민자씨가 이곳저곳 찾아 다녀야 했다. 물론 상가집은 남편이 가지만 나머지는 서울이든 부산이든 그녀의 몫이었다. 여름도 오기 전부터 20도가 넘는 한낮의 기온은 그야말로 놀러 다니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지만 남의 집 경사에 가는 일은 생각처럼 즐거움으로만 가득할 수는 없었다. 당사자들을 축하해주고 또 오랫동안 못 봤던 친척 친구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얘기를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지만 한가지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흰봉투였다. 3년 전 아들결혼식 때 축의금을 준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안겨주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받은 축의금 금액을 노트에서 일일이 확인 한 후 조금이라도 더 넣거나 아니면 같은 금액은 넣어주어야 했다. 어떤 주말은 하루에 세 곳씩 겹치기도 해서 그 중에서도 친분이 두터운 집 행사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봉투만 보내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주 주말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촌 여동생 큰 딸 결혼식에 가느라 동갑계원 아들 결혼식에는 가질 못했다. 조카딸 결혼식은 서울에서 있는 터라 하는 수 없이 5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수퍼댁에게 대신 전해달라고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갑계원들의 경우 애경사에 5만원을 봉투에 넣는 것이 마치 법처럼 통했기에 이번 역시 그녀는 5만원을 넣었다. 그리고 친정 사촌 여동생의 딸 결혼식에는 15만원을 넣었다. 나이 서른 둘에 과부가 되어 애들 둘 키우느라 온갖 고생을 한 사촌동생을 생각하면 백만원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었지만 축의금으로 나가는 돈이 한두푼이 아니다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아들 결혼식을 치룬 택시집 여자는 뒤늦게 끼어든 동갑계원이면서도 말수가 적고 퉁명스러워 여간해야 누구에게 안부 전화 한 통 먼저 하는 법이 없었다. 근본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인간관계가 적극적이지도 못하고 매사에 한박자 느린 조금은 답답한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동갑계원들 사이에는 ‘형광등’으로 통할 정도였다. 가뜩이나 수퍼댁이 그녀를 흉보는 전화를 한 후에라서 민자씨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전 시아버지 돌아가셨을때도 문상을 다녀왔지만 일 치루고 나서 전화 한 통 없었는데 이번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수퍼댁의 말이었다. 그런 그녀가 민자씨에게 전화를 걸어온 게 아닌가? 사람이 안하던 짓을 하면 상대는 당황할 수밖에 없는 일. 목소리를 듣는 순간 민자씨는 오히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카딸 때문에 그 집 아들 결혼식을 못 갔으니 일단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여자의 목소리는 달랐다. “거그 목장집 맞지유. 저기 내는 읍네 택시집이유” 평소 그 여자의 목소리는 남자 목소리처럼 중성적인데다 느리기는 거북이 걸음 저리가라 하는 수준이었지만 전화 속의 목소리는 그리 늦지도 않고 상냥하기가 그지없었다. “맞아유. 아니 어쩐일여유. 나는 너무 미안해서 전화도 못했네유. 아이구 그 날 나도 꼭 가려고 했는데 우리 친청 조카딸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까지 갖다오느라 못갔어유. 미안해유”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말처럼 민자씨는 선수를 쳤다. 어쩌겠는가. 평소 친한 편은 아닐지라도 어차피 계원인데다 자신이 할 도리를 다 못했으니 죽어주는 수밖에. 하지만 여자의 말은 의외였다. “아이구 그럼유. 조카딸 결혼식에는 꼭 가야지유. 저그 유. 읍나오면 우리집에 좀 꼭 한번 와유. 거시기 그러니까. 내가 목장댁 줄려구 속옷 한 벌 샀거든유. 근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마유. 꼭이유”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아니라 수박이 덩쿨째 굴러오는 일이니 민자씨로서는 더욱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속옷이라니유. 난 그런 거 받을만한 일 한것 없는데유. 다들 힘든데 그런 걸 뭐하러 사준대유 그래” 민자씨 머리로서는 도대체 해석이 안되는 일이었다. 그 누구도 택시집 여자한테서 어떤 선물은 커녕 칼국수 한번 얻어먹어 본적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터이니 참으로 난감하기도 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 언제 나와유. 뭐 내야 집에 늘 있으니께 아무 때나 들려유” 통화는 끝났지만 민자씨 도대체 뭘 어찌좋을지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말라고 했으니 수퍼댁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물을 했다면 오지랖이 넓은 수퍼댁이 모를리 없었고 결혼식 하객들에게 일일이 옷을 선물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적이 없으니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민자씨는 전화를 받고난 후 내내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면서 웃기도 하고 고민도 하고 그랬다. 게다가 속옷을 사놓았다고 하니 궁금증은 더했다. 끝에는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점쟁이에게 점을 보았더니 아들내외가 잘 살려면 띠가 같은 아들 난 여자에게 속옷을 선물하라고 해서 마음에도 없는 선물을 준비한 것은 아닐까. 저녁밥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이 말을 할까 말까 생각하던 중에 민자씨에게 걸려온 또 한 통의 전화는 그녀의 얼굴을 그야말로 홍당무로 만들어버렸다. 여동생이었다. “어머 언니 어떻게 된 거야. 근자한테서는 뭐 들은 얘기 없어.” 갑작스런 질문에 민자씨는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 갑자기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말을 하는 겨” 그러나 민자씨의 완벽한 실수는 해명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언니는 그래 5만원이 뭐야. 그래도 사촌동생 딸인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봐. 둘째 장가 들때 근자가 5만원 하면 언니는 뭐 속이 좋을 것 같어. 아니 평소에는 인심 넉넉하면서 왜 그랬어. 그 날 집에 와서 이서방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더구먼.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 오후에 할인점에서 근자년을 만났잖어. 대뜸 한다는 말이 ‘민자 언니 무슨 일 있니. 요즘 살기 힘들어’ 그러는 거야. 순간 떠오르는 게 바로 그 축의금 때문이 아닐까 싶더라구. 혹시 다른 집으로 간 봉투하고 바뀐 거 아녀” ‘오 마이 갓’(Oh my god)을 외쳐야 하는 상황이었다. 순간 민자씨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했다. 문제는 봉투가 바뀐거였다. 택시집 축의금인 5만원 봉투는 사촌동생네로 가고 사촌동생에게 낼 축의금 15만원이 든 봉투는 택시집으로 간 거였다. 그러니까 택시집 여자가 자기 딴에는 너무 후한 축의금 이어서 속옷을 선물하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일은 이미 벌어졌으니 수습을 해야 하는데 답이 나오질 않았다. 이미 한번 축의금을 낸 마당에 사촌동생에게 10만원 더 주기도 그랬다. 근자가 속으로 얼마나 서운했을까를 생각하니 밥이 입으로 들어가질 않았다. 밥 먹다말고 불안해하면서 수저를 놓고 일어나는 그녀를 보면서 남편은 멍하니 쳐다보기만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났는데도 민자씨는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지 못했다. 속도 상하고 미안한 마음에 차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하루는 남편이 없는 틈을 타 용기를 내어 수화기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가 사촌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 이 사실을 알면 자기 얼굴에 먹칠했다고 화를 낼 일이니 몰래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여. 민자언니. 야 근자야 어쩌면 좋냐. 나 니 얼굴을 못 보겠구먼” 사촌동생은 이미 무슨 말인지 감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게 무슨 말여 언니. 왜 언니가 뭐 나한테 서운하게 한거라두 있수?” 솔직히 털어놓는 것 이상의 묘안은 없었다. “아니 그게 어찌된 일이냐면 우리 동갑계원 아들도 그 날 결혼을 했는디 내가 봉투를 바꿔서 줘버렸구먼.” 그러자 사촌여동생은 깔깔깔 웃어대는 게 아닌가? 미안하긴 했지만 옷음소리에 자존심이 폭싹 무너지는 그런 기분이었다. 사촌 여동생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언니 아직 치매 올 나이 아닌데. 봉투 다른 집 줄거하고 바뀌었지. 괜찮아요. 내가 언니 마음만 알고 있으면 됐지 뭐. 언니가 15만원 넣었는데 그 봉투가 다른 집으로 갔다구. 나는 괜찮으니까 마음 편하게 가져요. 하하하” 민자씨는 친여동생인 형자가 눈치 하나는 빠르다고 생각했다.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는데도 이미 알아서 뒤처리까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민자씨의 착각이었다. 그녀의 실수를 대신 입막음한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입막음인지 골탕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참 언니 형부는 예나 지금이나 늘 인자하고 좋으셔. 글쎄 전화로 이것저것 물어보시는데 꼭 우리 오빠같더라니까. 형부가 그러대. 둘째 보낼때는 배로 주겠다구. 하하하” 민자씨 이번에는 정말로 ‘오 마이 갓’(Oh my god)이 입밖으로 뛰쳐나왔다. 남편은 모르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모든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순간 민자씨는 알면서도 모른척 응큼스럽게 있었던 남편에 대한 배신감이 분노로 끓어올랐다. 그래서 소리쳤다. “뭐야, 뭐야, 뭐야 당신이 뭐길래 날 이렇게 열받게 만들어. 응? 그때 하필이면 텔레비전에서도 방실이의 ‘뭐야 뭐야 뭐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뭐야 뭐야 뭐야 ~ 제발 날 내버려두지 마 ~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