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련하니까 살이 찌지? ” “아이구야 이거 큰 일 났구먼. 겨울 지나고 나니 몸무게가 4키로나 늘었네. 몸에 뭔 이상이 있나. 이러다가 뚱보 할멈 소리 듣겄네. 너는 얼마나 나가냐” “어휴 언니는 별 걸 다물어봐. 그리고 말야 고작 57키로 나가면서 뭔 놈의 뚱보할멈. 그런 소리 하지도 말어. 남 속 터지게” “너는 원래 좀 쪘잖어. 나는 야 갑자기 몸무게가 늘어나니까 그렇지” “하여튼 언니는 예전부터 남 속 긁어대는 선수라니까.” 친척 결혼식에 올라왔다 여동생이 하루 자고 가라고 난리를 쳐서 함께 목욕탕을 간 민자씨는 겨울동안 살이 좀 찐 것 같다는 생각은 했지만 4키로 씩이나 늘어났을 줄은 몰랐다. 몸무게가 여간해서 변동이 없는 그녀로서는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몸무게가 65키로 넘게 나가는 동생입장에서야 민자씨 말이 엄살처럼 들리겠지만 그녀로서는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나이 들어서 살이 찌는 것은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라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어왔던 터라서 괜한 걱정이 앞섰다. 목욕탕을 나오면서도 민자씨는 혼자 중얼 중얼 거렸다. “아픈 데는 없는데 이거 살이 갑자기 찌는 건 안 좋은 건데.” 머리도 덜 말랐는데 나가자고 보챈다면서 잔소리를 늘어놓던 동생은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말을 받아쳤다. “언니는 정말이지 살이 찐 게 문제가 아니고 그 뭐야 신경쇠약증세가 더 큰 문제가 되겠네. 아니 걱정할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왜 그래. 아니 그 나이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나갈 일 있수. 도대체 그 속을 알 수가 없네. 57키로면 오히려 딱 좋은 거야. 여러 소리 말구 저기 가서 쥬스나 하나씩 마시자구.” 동생은 그녀를 골목 어귀에 있는 수퍼마켓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동생은 과일 쥬스가 몸에 좋다면서 두개를 꺼내더니 계산대위에 올려놓았다. 순간 민자씨는 소리치듯 말했다. “난 아녀. 우유 마실 겨” 그러자 동생은 기가 막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금방 살 쪄서 걱정된다던 사람이 웬 우유는. 목장 사모님 이라서 우유소비 촉진시킬라구” 그러자 마흔 정도나 됐을까 한 주인여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우유보다는 과일쥬스가 훨씬 좋지요. 피부도 좋아지고 살 찔 염려 안해도 되구요. 동생분이 좋은 거 사주시려는데 이거 드세요” 순간 민자씨 멀쩡한 사람 바보 되는 거 한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가만히 있으면 정말이지 진짜 바보 취급당할 것만 같아 그녀는 입을 열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모르네유. 뉴스도 안보시나유. 며칠 되지도 않았구먼. 외국서 우유 다이어트가 성공적이라 잖아유. 몸무게가 6㎏, 체지방이 6.7㎏ 줄어든 사람도 있었다는데. 그뿐이 아녀. 허리둘레·혈압·콜레스테롤도 우유를 섭취한 사람들이 수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는 예기 못들었시유” 쥬스 가격표를 보았더니 무려 우유의 두 배나 됐다. 민자씨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집어 들었다. 동생과 여주인은 할말이 없어 멍하니 민자씨만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동생은 못믿겠다는 눈치였다. 우유 마시면 건강해지고 키도 큰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다이어트에도 효과적이라는 말은 처음 듣는다는 거였다. 게다가 자기 딸들에게까지 물어보면서 고개만 살레살레 흔들었다. “언니 아까 수퍼마켓에서 한 말 진짜 맞아. 우리 애들도 모른다잖아. 세상에 언니는 거짓말도 어쩜 그렇게 유창하게 할 수 있어. 마치 외워서 우유 홍보하는 사람 같더라니까 ” 그녀는 방송에서 보고 들은 대로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의심많은 동생 때문에 대학생 고등학생인 조카들과 제부앞에서 거짓말쟁이로 추락하는 순간이었다. 동생은 큰 의미없이 하는 말이겠지만 민자씨로서는 낮뜨거워지는 일이 아닐수 없었으니 이 위기상황을 잘 넘겨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없는 얘기까지 동원시키게 된 그녀. “너는 사람 말을 그렇게도 못믿냐. 방송에 보도된지 열흘도 안됐다니까. 그 거시기 뭐냐. 외국 박사도 나와서 설명하구 살빠진 사람도 나왔구먼. 아 어디 그뿐인줄 알어. 우리 동갑계원중에 수퍼마켓하는 친구 있잖어. 그 여편네는 날마다 우유 두개씩 마신다는구먼. 그래서 그런지 1~2년 사이에 몸무게가 5키로나 줄었다니까.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을 줄도 알어야지 워째 그렇게 못믿는 겨. 너는 어릴적부터 남 의심을 잘하더니만 아직도 그러냐 ” 사실 수퍼마켓댁이 우유로 살을 뺏다는 말은 민자씨 그녀가 엉겁결에 지어낸 말이었다. 상황이 이쯤되자 조카딸들은 이모인 민자씨 편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제부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처형말을 믿어보라며 동생에게 눈치를 주었다. 우유사건은 이쯤에서 마무리가 되어야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지 일주일쯤 지났을까. 여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나야. 지난번에 우유얘기 있잖아. 내가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진짜 나왔더라구. 그래서 어제부터 나 우유다이어트 시작했다우. 가능한 물 대신 우유를 마시기로 했어. 우유값이 생각보다 싸더라구. 어머 똑똑한 우리 언니덕에 나 날씬한 몸매 만들겠어. 고마워 언니” 그러나 민자씨 걱정이 앞섰다. 방송에 나온 건 사실이지만 자신이 직접 해본 것도 아닌데다 수퍼마켓댁이 살 빠졌다는 말은 거짓말인데 혹시 우유 먹어서 오히려 살이 불어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다이어트도 좋지만 우유를 물처럼 마셨다가는 돈도 만만찮을텐데. 니가 알아서 잘 하겄지만 적당히 하거라. 훗날 탈나면 언니 탓하지하지말구. 알겄지” 전화는 이렇게 끝났지만 민자씨 내심 불안하기만 했다. 국내에서는 우유다이어트가 입증된 것이 아니니 외국 뉴스 한번 보고 소문을 낸 장본인으로서 그 귀추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밥을 하다가도 빨래를 하다가도 온통 여동생의 우유다이어트 결과가 궁금해질 뿐이었다. 조급함에 며칠 후에는 여동생 집에 직접 전화를 걸었더니 대학생인 조카가 받았다. 급한김에 주책스러움 같은 것은 내팽게치고 동생의 다이어트 효과에 대해서 묻자 조카가 하는 말은 의외였다. “다이어트 효과는 아직 안나타났지만 아빠가 엄마 피부좋아졌다는 말에 요즘 기분이 상한가래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어찌되었든 피부라도 좋아졌다니 여간 다행스러운일이 아니었다. 전화를 끊고 민자씨 속으로 그랬다. - 그럼 그렇지 우유가 얼마나 좋은건디. 피부 좋아지면 남편 사랑 받지. 젊어져서 좋지 그럼 그럼. - 좋은 것일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줘서 같이 좋아진다면 이 또한 행복한 일. 앞으로 사람들을 만나면 우유를 마시면 피부가 며칠만에 좋아진다고 소문을 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실을 남편에게 말하자 남편은 싱겁게 피식 웃을 뿐 별 말이 없었다. 단 한가지 우유도 체질에 따라 잘 받는 이가 있으니 처음부터 많은 양을 마시는 것 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는 게 좋다는 말 뿐이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어디 세상 모든 일이 즐거움과 기쁨만 이어지겠는가. 일주일쯤 지났을까. 아침부터 전화가 요란하게 울어댔다. 수화기를 들자 마자 고막을 찢는 듯한 엄청나게 큰 소리가 귀에 와닿았다 “언니. 나 언니 때문에 미쳐 죽어. 지금 며칠째인지 몰라. 설사만 나와서 병원에 다니고 오늘은 가게도 못나갔다니까. 다이어트는 무슨 다이어트. 의사가 뭐라는 줄 알아. 나한테 무식하다잖아. ” 폭탄이 연거푸 터지듯 동생의 입에서는 원망과 화가 잔뜩 섞인 말들이 튀어나왔다. “언니 어쩌면 좋아. 이뿐만이 아녀. 우리 집 앞 그 수퍼마켓 있잖어. 내가 하루 서너통씩 사다먹었더니 진짜로 우유 다이어트 붐이 일어나는 줄 알고 주문량을 늘렸는데 며칠전부터는 나 부터 사가질 않으니 재고가 쌓여 난리가 났다고 하소연 하잖아. 이 모든 게 언니 탓이라니까 ” 잘되면 내탓 안되면 조상탓이라더니 여동생은 모든 탓을 민자씨에게로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민자씨도 할말은 있었다. 여동생은 마치 녹차 다이어트 하듯 하루 2리터 넘는 우유를 뱃속에 넣은 셈이었으니 문제가 일어날만도 했던 것이다. 하루 1리터 정도만 꾸준히 마셨다면 좋았을 일이었다. 나이 오십 다되어서 우는 소리를 하며 투정하는 동생에게 화가 난 민자씨도 한마디 날렸다. “지집애야. 우유가 물이니. 너무 많이 쳐마셨으니 그렇지. 지가 분수없이 마셔댄건 생각않아하구. 그렇게 미련하니까 살이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