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도 좀 가꾸고 화장도 하고 그래” 최근 불경기로 인해 서민경제가 힘들어지자 00시에서는 저소득층 자녀 1만5천3백50명에게 학교우유 무료급식 사업비를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또 지방의 한 도시 일부 주민들은 홀로 사는 70대 이상 노인에게 ‘사랑의 우유와 요구르트’를 제공하며 이들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슴이 훈훈해지는 우유를 통한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때로는 우유가 도전하는 사람들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텔레비전 퀴즈프로그램에서 ‘골든벨’을 울린 한 소녀는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해 검정고시로 중학교에 입학한 뒤 동네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배움을 이어갔고 고등학교는 교내 우유배달로 번 근로장학금으로 다녔습니다. 1월1일 망년회가 아니라 신년회를 위해 민자씨 동갑계원 12명이 마동목장에 모여 점심을 해먹고는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중이었다. 우유 얘기가 나왔으니 목장댁 오민자 여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다들 들었지. 우유가 이렇게 좋은 거라니까 우리네 살아가는 얘기속에서 우유가 빠지면 안될정도라구. 자기들도 집에서 우유좀 많이 마셔. 그래야지 우리같은 사람들도 먹구살지. 기회 있으면 우유로 좋은 일들도 좀 하구” 그러자 수퍼댁이 거들었다. “맞어. 겨울되니까 우리 가게 우유가 덜 나가. 우유만큼 싼게 어딨어. 물값이나 우유값이나 같은 걸 뭐. 우리 가게와서 우유들좀 사가라구. 노화예방에도 우유가 좋다잖어. 우유 많이 먹어봐. 집집마다 신랑들이 달라질거라구.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구. 피부좋고 얼굴에 윤기흐르는 마누라가 좋지 얼굴에 버짐 핀 여자가 좋겠어” 수퍽댁의 말에 여자들은 깔깔대고 웃었다. 나이가 들으나 젊으나 여자들 여럿이 만나면 수다는 여전했다. 남자 면 남자, 자식이면 자식, 돈이면 돈 어찌그리 할 얘기도 많고 사연도 많은 지 시간 가는줄 모르는게 여자들 수다 아닌가. 누군가 목장댁 오민자 여사는 아직도 폐경기가 오지 않았는데 그건 아마도 매일 아침 젖소에서 나오는 따끈따끈한 우유를 많이 마셨기 때문일거라며 매일 아침 우유나 얻어먹으러 오자고 하자 또 한반탕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사람이 여럿이다 보니 게중에는 쓸만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도 있는 법. 농협 과장 사모님이 입을 열었다. “새해들어 우리도 좋은 일이나 한번 해보자구. 읍내 보육원 있잖아. 요즘들어 이혼하는 사람들도 많아져 거기 애들이 늘어났다더라구. 내가 듣기로는 도시 하고는 달라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구 . 애들 우유 먹일만큼 운영자금이 넉넉하지는 못한 것 같더라구. 한번 찾아가서 봉투 놓고 오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차라리 우리가 우유값을 대주면 어떨까 싶어. 우리 모임에 적립된 돈도 5백이 넘는데다 앞으로 회비에 우유값 2만원씩만 더 추가시키면 어떨까 싶어” 아이들 40명이라고 해도 우유값은 사실 월 50만원 정도면 가능했다. 반은 추가된 회비로 충당하고 나머지 반은 이미 통장에 모아둔 돈에서 해결하면 큰 부담도 안되면서 아이들 40명에게 날마다 우유를 사줄 수 있으니 민자씨는 그야말로 좋은 생각이다 싶었다. “어머머, 역시 농협 사모님은 정이 넘친다니까. 굿 아이디어( Good Idea)” 그러자 이번에는 란제리 여주인이 나섰다. “그려, 그것도 좋은 생각여. 사실 나가 어렸을때 조실부모하고 오빠 밑에서 컸는디. 아따 아그들이 우유를 먹을때 입만 다신적이 한두번이 아니랑께. 그때 참 서러워서 눈물도 많이 쏟았어. 그 우유 한모금이 뭐길래. 참말로 서럽더라니께. 애들 키우면서도 그때 생각이 나서 우리 애들은 우유 대놓고 먹여부렸어.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그들 체격이 다 크잖아. 나는 찬성이라니께” 누구하나 반대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나이가 50대 중반이니 먹고 사는 게 힘든 시기도 지나고 아이들도 다 커서 시집 장가 보낸 집들이 많아 부담스러워 하는 이들이 없으니 만장일치로 즉석에서 결정이 됐다. 새해 첫날부터 음식장만하느라 민자씨 피곤하긴 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좋은 결과를 낳아 너무도 뿌듯했다. 수퍼댁하고 독거노인들 돌보는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부모없이 외롭게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한 안스러움이 늘 가슴에 남아있었기에 그녀로서는 더없이 좋았다. 연초부터 좋은 일이 생겼으니 올 한해는 좋은 일만 있기를 그녀는 기원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남동생에게 일이 터졌다. 친정이 5남매나 되는 까닭에 무슨 일만 터지면 동생들은 맏딸인 민자씨에게 매달렸다. “언니, 내말은 듣지도 않아. 고집은 드럽게 세 잖아. 그래서 성질이 나서 이혼을 하던지 나가 죽던지 니 맘대로 하라고 했어. 아니 미친놈이 따로 없지 그래. 애들 이제 초등학교 다니고 얼마나 귀여울때야. 알콩달콩 사는 재미가 절로 날 텐데 뭔놈의 바람이냐구 글쎄.” 서울 여동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의 내용은 이제 서른 일곱 된 막내 남동생이 바람을 피다가 처에게 들통이 났고 처가 뭐라고 하자 이혼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부부사이라지만 자신의 남동생 못난 얘깃거리를 말할 수도 없고 해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데 그냥 참고 넘겼다. 전화에 대고 소리를 쳐보았자 남편에게 광고하는 일이니 차라리 직접 만나보는 게 낳겠다 싶었다. 이튿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 민자씨는 여동생을 데리고 막내 남동생 집으로 갔다. 손아래 올케는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자초지종 얘기를 들어보니 내용은 이랬다. 작년 여름부터 새벽에 들어오는 날이 많아지더니 겨울들어서는 일주일에 한두번은 아예 집에 안들어오더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자기 사업하는 사람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핸드폰 문자메시지 수신함을 열어보니 “오빠 사랑해” “오빠야 잘자” 뭐 이런 메시지들이 있어 뒤를 밟아본 결과 역시 바람을 피고 있었다고 했다. 여자는 서른 세살 먹은 노처녀로 법무사 사무실 직원이었다. 하지만 민자씨 올케는 워낙 참한 성격이라서 여자를 만나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말했고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로 관계를 정리하라고 말로 타일렀단다. 그런데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여자에 홀려 남동생은 이혼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민자씨는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가 보아도 자신의 남동생이 정신없는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으니 올케 보기가 차마 민망스럽고 미안할 따름이었다. 민자씨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 남동생은 전화를 받고 집으로 왔다. 민자씨는 말이 남동생이지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자식처럼 생각하며 챙긴 동생이었다. 그래서 더 괘씸하고 분통이 터졌다. 들어오는 남동생 옷을 잡아끌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궈버렸다. “야 미친놈아. 너 사람 새끼 맞아. 이 천벌 받을 놈. 세상에 재영 엄마같은 여자가 어딨어. 이제 쳐먹고 살만한가보네. 꼴에 바람을 피워. 너 장가 가는 거 보고 죽는게 소원이라던 돌아가신 엄마 생각해서라도 그러는게 아니지. 너 나쁜놈이야. 너 이지랄하라구 누나가 대학 학비 보태주고 결혼비용 보태줬니” 민자씨 눈에서 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나이 오십이 넘었으니 사람인지라 누구나 딴 생각 한번쯤은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혼하겠다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남동생 하는 말이 더 우습지도 않았다. “성격이 않맞는데 어떻게 사냐구요. 누나는 재영 엄마하고 안 살아봤으니까 모르지” 민자씨 더욱 화가 솟구쳤다. “미친놈 개 풀 뜯어쳐 먹는 소릴하네. 그러면 처음부터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결혼이 무슨 장난이야. 재영 재성이는 어떡할려구. 너 같은 놈하고는 말이 안 된다. 에라 이 싸가지없는 놈아. 니가 인간 새끼라면 이러는거 아니지. 그래 이혼해라 새끼야 니 자식들 고아원에 갔다놓구 먹을 것 못 먹으면서 고생시켜봐라 자식아. 너 엄청나게 행복하게 살겠다” 민자씨 참다못해 동생의 귀뺨을 두어번 갈겨주고 올케를 앞세워 여자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올케는 오히려 남동생 성질만 더 건드려놓는 일이라며 머뭇거렸지만 오민자 여사의 말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다. 사무실은 집에서 불과 500미터 거리도 안떨어져 있었다. 민자씨는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욕부터 나오지는 않았다.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사장이라는 사람과 여자를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사장님 초면에 실례하겠습니다. 하지만 동생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네요. 보아하니 사장님도 이 아가씨만한 따님이 있을텐데요. 가정있는 남자 흔들어놓는 것은 집안 전체를 무너뜨리는 일인데 이 아가씨가 그런 엄청난 일을 저질렀네요. 생각같아서는 지금 당장 집으로 찾아가 부모들 보는 앞에서 쑥대밭을 만들어놓고 싶지만 오늘은 제가 참으려고 합니다. 사장님께서도 직원은 자식이나 마찬가지이니 이 아가씨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아가씨 나좀 보라구. 시집도 안간 처녀가 불장난으로 인생 망치지 말구 이쯤에서 정리해. 만일 두 사람 정리안되면 아가씨 집에 가서 부모들에게 직접 말할테니까. 나 여러말 안하겠어. 앞으로 빠른 시일내에 우리 올케 앞에서 무릅꿇고 용서받아. 안그러면 간통으로 집어 쳐넣을테니까. 내말 알아들지? 상스러운 욕나오고 머리채 잡아끄는 일 없었으면 해. 알았어 ” 민자씨는 곧장 집으로 내려왔다. 이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여자가 더 잘 아는 법. 동생과 바람이 난 아가씨는 관상 자체가 남자 복이 없고 팔자가 드세 보였다. 여러 남자 만나야 될 그런 관상이니 동생과는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도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정도 시간이 흘렀다. 민자씨는 동생네집에 연락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올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신경쓰게 해서 죄송해요. 그 아가씨 회사 그만두었구요. 곧 공부하러 외국간데요. 애 아빠도 마음을 정리하는 눈치예요. 형님 아니었더라면....,” 민자씨 그제서야 올케에게도 한마디했다. “여자가 마음만 착해서 남자 사랑 받는 건 아니야. 피부도 좀 가꾸고 화장도 하고 그래. 애 낳고 나면 관리를 안 하는데 그러니까 남자가 밖으로 돌지. 우유 많이 먹으면 좋다니까 하루 두서너개씩 먹으라고 애들도 먹이고. 알았어” 역시 민자씨는 또 우유타령이었다. 정말 우유를 많이 마시면 남자들이 바람 안필만큼 피부가 좋아지는 걸까? 궁금하면 직접 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