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자기가 자꾸 애 낳자구 대들렀으면서” “어머 얘 잘됐다. 니네도 큰 도움이 되겠네. 13% 인상이면 그거 괜찮은 것 아니니. 옷 값은 오르기는커녕 할인 판매를 해도 안 팔린다 얘. 이러다 우리도 굶어죽게 생겼네.” 민자씨는 참으로 기가 차지도 않았다. 원유값 인상된다고 해서 당장 낙농가들이 돈 방석에 앉는 걸로 착각을 하는 것이었다. 며칠 전 서울 사는 사촌동생도 그 얘길 하더니 사람들이 하나같이 원유인상은 곧 낙농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양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더 기가 막힌 일은 정부와 여당이 우유업계가 낙농가의 원유 납품가를 현재보다 13%가량 올리도록 유도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이미 협회가 유업체들과 이미 원유값 인상에 합의했고, 업체들이 내부사정이 있어 확정발표를 연기해달라고 해 기다리던 중이었는데 무슨 지들이 힘을 쓴 것처럼 보도가 된 거였다. 그러니 목소리 큰 민자씨 입이 근질거리던 참에 화살은 점순씨 에게로 돌아갔다. “얘, 점순아. 너는 야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라. 선무당이 사람 잡는 다더니 니가 그 짝 났다 야. 얘, 원유값만 오르니. 사료값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온갖 물건값 다오르는데 모처럼만에 우유값 오른다고 해서 당장 큰돈이 들어오는 거 아니야. 사실 니가 몰라서 그러지. 우리야 큰 빚은 없지만 젖소 키우는 집들 알고 보면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한둘 아니다 너. 젖소 많으면 뭐하니. 원유를 받아줘야 하는데 생산 되는대로 다 받아주질 않거든. 에구, 목장 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질 않단다. 요즘은 돈도 안되구 힘만 든다구. 아이구 야,그리구 더 웃기지도 않는 것은 높으신 양반들이라니까. 마치 자기네들이 큰 인심 써서 원유값 인상시켜준 것처럼 하니 그거 꼴불견 아니니” 그래도 점순씨는 원유값 인상된다는 뉴스 듣고 친구로써 덕담하느라고 한 말이었는데 민자씨는 정작 낙농가 속도 모르고 겉만 보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 있던 차에 점숙씨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이구 얘 그래도 니들은 학교 다니는 애들은 없잖어. 우리는 대학생이 둘, 고등학생이 하나 자그마치 돈 퍼가는 애들이 셋이나 된다구. 우리 큰애는 사립학교라서 등록금이 자그마치 삼백이 넘어간다. 오죽하면 2학기 등록금 내느라 내 목걸이까지 팔았겠냐.” 듣고 보니 점순이네도 애들 학비 대느라 힘은 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셋이지. 학비 말고도 애들 책값 용돈 학원비 다 합하면 웬만큼 벌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녀도 익히 잘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두 니 신랑이 능력 있잖어. 회사 잘된다면서.” 민자씨 말에 점순씨는 혀를 찼다. “야, 너두 정말 모르는 소리 한다. 요즘 잘나가는 회사들이 어딨어. 돈이 안돌아서 난리도 아니야 얘. 추석 때 직원들 월급 땡겨주느라구 내가 사채도 3천을 끌어왔어야. 지금 장사하는 사람이구 공장같구 있는 사람이구 다 하나같이 난리가 아니야. 오죽하면 엊그제는 우리 그이가 회사 문 닫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모른다구 하더라. 경기가 너무 않좋으니까 뭐든 잘되는 게 없는 거야” 그제서야 민자씨는 요즘 다들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히려 점순씨를 위로해주지 못하고 자기 입장만 내세운 것 같아 그녀는 말을 돌렸다. “아이구. 야. 점순아 그래도 애들한테 돈 들어가는 것은 당장은 힘이 들 지언정 시간 지나면 다 남는 장사 아니니. 애들 잘되면 그걸로 좋은 거지. 야 아들이 셋에 남편까지 네 남자 데리구 사니 얼마나 행복허냐. 그래도 니가 부럽다야. ” “얼씨구. 누구는 남 안가진 아들 가졌나. 너두 둘이나 되잖어. 야 나는 사실 요즘 딸이 하나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생기더라. 내가 아는 친구 하나는 딸이 시집갔는데 얼마전에 외국 여행도 보내줬단다야. 옛날 같지 않아서 요즘 젊은애들은 시집을 가도 직장 다녀 돈을버니까 친정에 돈 쓰는 것도 자연스럽게 쓰더라구. 어디 그뿐여. 아들놈들은 장가가면 지 마누라 말만 듣느라 엄마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더라. 차라리 딸은 친구처럼 이런 저런 말도 하고 마음 씀씀이 자체가 다른 것 같더라.” 듣고 보니 민자씨도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만 둘이니 둘째 마저 결혼 시키면 더 허무하고 외로울테니 점순씨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허기사 듣고 보니 니 말도 일리가 있다. 여자 마음은 그래도 여자가 알지. 그러나 저러나 나는 이미 할머니 다 돼서 늦둥이를 낳을수도 없고 이 일을 어쩐다냐. 너는 애들이 아직 학교 다니니 늦둥이 하나 낳아라. 나이 오십에 애 낳는 여자들도 더러 있더구만” 민자씨 말에 점순씨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야 야 너 너무 웃긴다 얘. 아무리 딸이 좋다기로서니 나이 오십 넘어 어떻게 애를 낳니. 창피스럽게. 그보다도 폐경기 지난지가 언젠데. 만들구 싶어도 이젠 늦었다. 며느리 보면 딸처럼 이뻐해주는 일 밖에 없다 야” 나이가 드나 젊으나 여자들 전화로 수다 한번 떨었다면 이삼십분은 기본이 아닌가. 귀에 땀이 차도록 점순씨와 수다를 떨고 나니 어느새 밖은 어두워 있었다. 상가 집에 간 남편은 한밤중이 되어야 올 것이니 혼자서 저녁을 먹기도 그렇고 해서 방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찬바람 나는 가을이니 그 옛날 처녀시절 친구들과 설악산 놀러 갔던 일이 떠올랐다. 꽃같은 스무살 처녀 셋이서 여관방에 누워 각자 이상형을 얘기했었는데 고등학교 때 짝사랑했던 선생님을 잊지 못해 독신으로 살겠다던 미자는 3년도 안지나서 친구 남동생을 꼬셔 시집을 가서는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집이 가난해서 공장 다니면서 돈 벌어 집에 갔다 주던 효녀 정심이는 복이 없어서 인지 시집도 가난한 집으로 가서 고생만 하다가 먹고 살만해지니까 몇 년전 자궁암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민자씨 그녀는 집안형편상 자신이 대학을 못다녔기에 배우자는 꼭 대학을 나온 남자여야 하고 이왕이면 사업을 해서 돈 많이 벌고 늦가을 희색 바바리 코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사실 직장 다니던 중 이상형 같은 남자를 한번 만나기는 했지만 여자관계가 복잡한 것 같아서 두 세번 만나다가 그만 둔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저러나 이제 염색을 하지 않으면 흰머리가 너무 많아 보기 흉할 정도가 된 민자씨는 어느새 이처럼 나이가 들어버린 자신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든 민자씨. 꿈을 꾸기 시작했는데 그야말로 행복한 공주가 된 듯한 모습의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단풍 나무들로 둘러쌓인 작은 공원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정말로 그녀의 이상형이었던 희색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사랑 노래를 불러주는 게 아닌가. 민자씨는 너무 황홀해서 떨리는 가슴을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데 그때 남자가 말했다. “민자씨 우리 아이는 몇이나 날까요? ” “어머머,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해요” “뭐 이미 우리 두 사람 마음은 결정된 거잖소. 다음 주에 부모님들 상견례만 하면 되는 일인데 뭘 그리 부끄러워 하십니까. 나는 사실 아들이 좋아요. 외아들이라서 혼자 크다보니까 많이 외로웠지요. 그래서 아들 셋 정도 낳으면 어떨까 싶은데” “어머머 안돼요. 저는 그냥 아들 하나 딸 하나 그렇게 남매만 가졌으면 좋겠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사람은 어느새 부부가 되어 한 이불 속에서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남자는 그녀를 끌어안으면서 속삭였다. “여보 우리 아들 하나만 더 낳자. 그러면 내가 날마다 당신 업고 다니지 ” 하지만 민자씨는 아들이 싫었다. 피부로 느껴지는 남자의 따뜻한 체온은 너무 황홀했지만 아들을 낳기는 실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순간적으로 그녀는 복을 차 버리듯 이불을 발로 걷어 차면서 소리 쳤다. “싫어요. 난 딸을 낳을 거예요. 딸, 딸이 좋다구요 . 딸 딸 딸 낳을 거라구요” 그때 그녀는 낯익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바바리코트가 잘 어울리는 그 훤칠하고 젊은 남자는 온데간데없구 옆에는 이제 나이 육십이 다 되어 머리는 반백이 된 남편이 자신을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마치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서. “아따 이사람 잠꼬대도 심하네. 아니 갑자기 왜 딸 타령이야. 허허허. 참 나. 갑자기 20년 전으로 돌아갔나. 사람 잠 못자게 끌어않지를 않나. 아 그렇게 딸이 낳고 싶으면 낳아 보라구. 나는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 민자씨 얼굴이 빨개지면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되는 순간이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했던가? 그 다음 민자씨 말이 한마디로 쇼킹 그 자체였다. “아 내가 언제 딸 타령을 했다구 그래유. 자기가 자꾸 애 낳자구 대들렀으면서. 참말로 나이 들어서 별일 이네유.” 필자연락처 : ☎ 019-609-95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