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내말이 틀렸시유?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차라리 모르는 게 편하지”
“무슨말여. 갑자기 왜 그러는 겨”
“속상혀 죽겄어. 이러지도 못허구 저러지도 못허구.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쯧쯧”
“자기가 왜 남편이 없어. 누가 들으면 큰일 날 소리를 혀”
“내가 아니구, 우리 여동생 말하는 겨. 아이구 복도 없는 년여”

아침부터 걸려온 슈퍼댁의 전화내용은 혼자된 여동생이 일하다가 넘어졌는데 다리도 금이 가고 팔목도 금이 가서 병원에 누워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는데 딸 하나 있는 것은 이미 두 달 전 프랑스 남자 만나서 식도 안올리고 프랑스에 갔기에 누구 하나 돌봐줄 사람도 없으니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얘기였다. 살짝 넘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팔목과 다리 두 곳을 다 다친 것은 골다공증이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자들이야 폐경기가 되면 대부분 골다공증이 오고 나이가 많이 들면 남자 여자 할것없이 골다공증이 나타난다는 정도는 민자씨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상식. 하지만 슈퍼댁의 슬픔은 이제 나이 오십도 안된 여동생이 골다공증이 온 것이 다 남편 없이 혼자 고생하며 살아온 것이라며 안쓰럽다는 거였다.
슈퍼댁과의 전화를 끝내고 나자 민자씨의 마음까지 우울해졌다.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은 남편 사랑받고 자식 키워 보람을 얻는 행복도 있지만 워낙 남녀가 평등하지 않던 시절을 살아온 터에 그녀는 임신을 했을때도 딸보다는 아들을 원했을 정도였다. 특히 민자씨는 늘 열 살이나 어린 여동생도 봉건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의 반대에 대학을 못간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안타까웠다. 동생은 워낙 공부를 잘해서 그 시절 대학에 들어갔다면 지금쯤은 한 인물 했을 게 분명했다. 미인인데다 머리도 좋으니 학창시절부터 남자들이 줄을 설 정도였는데 대학 못가고 회사 다니다보니 그저 평범한 남자 만나 고생하며 사는 모습을 보면 언니로서 속이 상했다. 더욱이 몇 년 전부터는 남편이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당했는데 마땅히 할일이 없으니 퇴직금 받아서 편의점을 차렸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들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데다 인건비도 줄여야하는 터라 하는 수없이 둘이서 교대로 편의점을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민자씨 자신이야 자식들 다 커서 결혼 시켰고 남편과 둘이서 먹고 사는 데는 크게 힘든 일 없으니 늘 여동생이 걱정였다.
심란한 마음에 민자씨는 전화를 걸었다.
“숙자냐?”
“어쩐일여. 밝은 대낮에 언니가.”
“전화 거는데 밤낮이 따로 있냐. 아픈데는 없냐?”
“하루 열시간씩 매장 지키는데 아픈데가 없을리 있겠수. 나도 이제는 팔다리가 쑤신다니까. 생각보다 힘들어”
“거시기 너두 계단 오르내리고 할때 조심하고 걸어다닐때 서두르지말고 다녀라”
“갑자기 왜 어린애들 한테 하는 말을 하는 겨 언니는”
“아이구 내가 아는 친구 여동생이 그냥 살짝 넘어졌는데 팔 다리가 다 부서졌다더라. 그게 다 골다공증 때문이라던데..... 조심혀”
“못살아 정말. 언니 나는 아직은 골다공증 올 나이는 아니잖아”
“얘가 뭘 모르는구먼. 요즘은 폐경기가 아니더라도 골다공증 온 사람들 많다던데. 건강은 자신하면 못써”
“어머 듣고 보니 좀 그러네. 얼마 전에 키를 재 봤는데 5년 전보다도 2센티는 줄어든 것 같더라구”
“그려, 골다공증이 왜 나이가 들면서 키가 작아진다든지 약간의 충격으로 손목뼈가 골절된다던지 그런거잖어. 폐경기 되면 그게 더 빨리 온다더구먼. 너두 키가 작아졌으면 뭔 문제가 있는 겨”
“어머, 우리 언니 아는 것도 많으셔. 알았어유. 조심할게”
“조심도 조심이지만 우유를 자주 먹어. 아니 하루에 두 세개씩 먹어.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고 하니까. 그리고 햇빛도 자주 씌어주고. 비타민 D가 부족하면 골다공증도 빨리온다더라. 비타민 D 채우는데는 햇빛을 받는 게 아주 좋다더라.”
“아이구 나 참 언니 때문에 못살아. 아니 건강학 박사 다 됐어. 잘 알아들었수. 고마워 신경써주셔서”
“그리고 우유는 하루 5번씩 먹어도 괜찮다더라. 모르는 사람들이 우유 많이 먹으면 살찐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 어느 나라 박사가 실험을 했는데 하루 세 번씩 마신 사람들에 비해 다섯 번씩 마신 사람들이 살이 더 많이 빠졌고 복부지방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더구먼. 그뿐이 아녀. 또 혈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나 심장병과 당뇨병 위험도 줄어들었다니까 팔기만 하지말구 눈 앞에 있는 것 마셔. 그거 몇푼한다구.”
“언니 장사하는 사람이 그게 쉬운 일인줄 알아. 하나라도 더 팔 생각하면 못 마셔”
“얘, 지집애야. 골다공증 걸려서 몸 망가지는 것 보다는 조금 덜 팔고 마시라구. 유제품에는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있어서 포만감을 금방 느끼게 하고 몸의 대사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구”
여동생과 전화통화 하는 것을 지켜보았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이 말했다.
“아이구. 우리 오여사님 우유에 대해서는 박사수준이구먼. 아 언제 그렇게 많은 지식을 쌓았는가? 역시 목장 30년 넘게 지켜온 보람이 있구먼”
남편의 말에 민자씨는 기분이 우쭐해졌다. 그러니 오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거야 다 기본 아녀유. 내가 이래뵈두 대학만 다녔다면 교수는 충분히 됐을 거구먼유”
대학 얘기가 나오자 남편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민자씨 살면서 늘 더 못배운 게 한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마누라 아픈 속을 더 긁어놓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며느리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것은.
“그래 나다.”
“아버님은 어디계셔요”
“왜 나한테 못할 말 있냐?”
“그런 건 아니고요. 여쭤볼게 있어서요. 아버님은 우유에 대해 잘 아시잖아요”
갑자기 며느리 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얘, 니 시아버지 만큼은 나도 알어. 나한테 말혀. 뭔지”
“죄-송해요. 어머니. 저는 그냥. 성민이가 초코우유를 너무 좋아해서요. 하루 두세개씩 마시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날마다 싸워요.”
“그려. 모르는 사람들은 애들한테 딸기 우유, 초코우유 이런 게 안좋다고 하는데 괜찮어. 하루 두개 정도는 마셔도 괜찮아. 한참 커야하는 때이니까 우유 많이 마시게 해라. 오히려 못마시면 병된다”
“네 어머님. 별일은 없으시죠. 날씨 쌀쌀한데 건강 조심하셔요”
전화를 끊고 그녀가 아주 자신만만하게 마치 낙농학 박사님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그제서야 남편이 입을 열었다.
“사실은 초코우유가......,”
“뭐 내말이 틀렸시유 ?”
“틀렸다고 하기 보다는 아이들이 커피나 초콜릿이 들어 있는 우유, 아이스크림, 케이크, 탄산음료 등을 많이 먹으면 안되거든. 카페인 섭취량이 많아지기 때문이지. 성민이 또래의 어린이는 하루에 콜라 1캔(250㎖), 초콜릿 1개(30g), 커피우유 1개(200㎖l)를 먹으면 카페인 섭취량이 약 86mg으로 1일 섭취기준인 75mg을 넘게 되거든. 카페인 많이 섭취하면 성장에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겨”
순간 민자씨 얼굴이 빨갛게 되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박학다식한 남편 앞에서 짧은 지식을 갖고 잘난 척 한 것은 둘째문제이고 일단 며느리에게 잘못된 상식을 알려주었으니 그 댓가는 손자 녀석의 건강에 해가 되는 일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일. 우유박사처럼 행동하려다 오히려 무식한 할망구가 된 그녀. 그날 밤 민자씨는 밤새 잠을 못잤단다. 이튿날 며느리에게 다시 알려줄까 말까 고민을 한 것이다. 시어머니로서 자존심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