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 낙농목장 아직도 대한민국 인구 중 5분의 1이 사는 서울 안에는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젖줄, 아직까지 극히 소수의 낙농목장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근교의 축산도 타지역으로 밀려나고 있는 추세에 서울 안에서 낙농을 영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확실히 서울은 낙농의 불모지이다. 비록 그린벨트 지역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행정구역상 서울시 내에서 대가축인 젖소들이 사육되고 있다는 점 만큼은 이채로운 사실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지역이 지속적인 발전의 모습을 띤 지역이고 보면, 여전히 존속하여 과거 낙농의 모습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이들 목장은 한국낙농의 ‘화석’이라 불러도 좋겠다. 금번 월간낙농육우 3월호에서는 이들 목장 중 두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목장생활과 애로를 들어봤다. 원지목장 서울 내에서 숲과 절, 공원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청계산, 그 입구 맞은편 동네 안을 조금만 들어가면 확 트인 곳에 원지목장(서울 서초구 신원동 소재)을 만날 수 있다. 목장 주변이 위치한 동네에는 일반 가정집을 비롯하여 과거 낙농단지였음을 암시할 수 있는 목장들의 흔적과 모 식품업체에서 관리하는 물류보관 컨테이너 등이 있다. 원지목장은 착유우 35두 사육으로 일평균 1,100kg의 우유를 납유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있는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문환식 목장주의 집안은 현재의 원지목장 터에서 18대째 이어온 서울 토박이 농민이다. 문환식 목장주가 낙농을 시작한 해는 7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이곳은 축산단지였다. 82년 농우(農牛) 사육농가에만 목축업을 허가하던 당시, 원지목장은 적법하게 허가를 받고 축사를 건축하였다. 그러나 행정상 불이익도 많이 받는 편이다. 축사 증축을 위해 해당구청에 찾아갔던 94년, 서울시 및 광역시는 농촌지역이 아니므로 축사증축을 불허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또한 해당구청으로부터 조례법상 고속도로에서부터 가시거리 500m 이내에 축사시설 등은 이전대상이므로 무조건 1~2개월 내로 목장을 이전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전비용에 대해서는 일체의 보조도 없이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축산업등록제 등록 마저 불가능하여 각종 보조지원 사업에서 제외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환식 목장주는 담배 한모금을 한껏 들이마시고 내쉬더니 이내 말을 잇는다. “대대손손 물려받은 우리 땅에서 조례법이 생기기 이전부터 낙농을 시작했는데 그저 아연실색할 뿐이죠. 더욱 기막힌 사실은 막내아들에게 목장을 물려주려고 사업자등록증 변경을 하려고 했는데 대표자명도 바꿀 수 없다네요. 이건 아예 구내에서 낙농을 하지 못하도록 그 싹부터 잘라놓겠다는 심산이 아니겠냐구요.” 사실 원지목장은 상당히 깨끗하게 관리하는 편이다. 도로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에 해당구청 환경과 담당공무원이 빈번히 방문하여 둘러보지만 환경문제상 별 지적할 것을 찾지 못하고 돌아가곤 한다고 한다. 비가림시설, 오폐수처리시설, 분뇨유출 방지 시설 등을 모두 문제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운동장 상태는 젖소 유두의 청결에 직결되기 때문에 운동장 관리가 남다르다. 그래서 체세포수 때문에 고민하지는 않는다. 수시로 청결히 관리하고 있는 톱밥발효 운동장은 유기질 비료 공장에서 정기적으로 수거하고 있기 때문에 축분누적의 문제는 전혀 없다. 문목장주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한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이 땅에서 시작한 낙농, 전 정말 천직이라 여기고 관리해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으니, 굳이 이곳에서 낙농을 하는 동안은 시설 투자할 마음은 없습니다. 이곳에 이미 많이 투자해놨기도 하고.... 막내아들 녀석이 본격적으로 이 목장을 맡을 때쯤이면 사정이 나아져야 할텐데, 그렇지 못하다면 서울을 벗어나 이전하는 것도 생각해야겠지요.” 전체 낙농가의 수가 9천여 가구도 채 안남은 실정이다. 우리 낙농산업의 유지를 위해 단 한 농가도 아쉬운 때이다. 목장의 존폐까지 심각히 고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이들 목장의 어려움은 다른 도시근교 낙농목장의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속히 해당구청과의 융통성 있는 합의가 이뤄져 문환식씨의 막내아들 병택씨가 도심 속 낙농목장의 명맥을 이어 나가주기를 기대해본다. 서초목장 양재역에서 성남방면으로 5분남짓 거리. 대모산과 구룡산 아래에 위치한 서초목장 주변은 헌인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주변에는 유일하게 낙농목장인 서초목장과 비육농가 10여농가들을 포함하여 여러 양축농가들이 저마다의 업을 영위하고 있다. 서초목장의 총 사육두수 25두 중 착유우는 6두에 불과해 일평균납유량은 130kg정도(총쿼터 250kg)인 영세낙농가이다. 납유량을 늘리고는 싶지만 투자할 자금도 충당하기 어려운 형편이고 유사비 마저도 너무 부담스러워진지 오래인 터. 적자라도 면하면 다행이라, 겨우 후보우 육성으로 현상유지나 해나갈 뿐이라 한다. 입지요건상으로도 불리했다. 이미 서초목장 주변으로 운집한 비닐하우스 농가(무허가 시설물)들이 주변의 땅들을 모조리 점유해놓은 바람에 사료작물을 재배할 면적이 없어 조사료 자급이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70년대 초 낙농을 시작한 서초목장은 지금의 장소로 오기까지 4번 이상 옮겨다녔다. 유용자 목장주는 그중 93년 ‘K’건설회사의 터널공사로 겪은 고초를 잊지 못한다. 시도, 때도 없는 발파작업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유질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새끼가 든 어미는 모조리 유산하여 목장경영에 있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이치에 어두웠던 유용자 목장주 부부는 결국 보상 한푼 받지 못한채 쫓겨나다 시피 하여 현재 머문 자리에 이르게 된 것. 지금도 그때의 생각을 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라 말한다. 유독 가장 어려웠던 IMF 때 해당구청에서 요구한대로 비가림시설을 갖추느라 서초목장은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배수, 정화조시설도 갖추고 있고, 우분도 운동장 한 가운데 쌓아놓다가 수시 트랙터로 옮기는 등 어떠한 환경문제를 유발할 요인도 없지만 요즘은 침수방지턱을 갖추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며 유용자씨 부부는 고민이다. 유용자 목장주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35년 이상 일군 목장이라 자녀들이 물려 받았으면 하는 바램이었지만, 요즘은 빠듯한 살림에 자녀한테 도움을 받는 달이 늘고 있어 낙농은 4~5년 후까지만 하고 접을까 합니다.” 역시 어느 목장이든 향후 목장경영의 지속여부에 있어 주요변수 중 하나가 목장주 자녀의 낙농업승계 여부 일텐데 결국 서초목장도 이들 노부부를 대신하여 운영해줄 후계자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목장을 방문한 필자를 향해 처음에는 적잖은 경계심을 품고 있는 듯한 유용자 목장주의 인상에서 어렵잖게 경제적 어려움, 행정적 압력에서 무던히 시달려왔음을 느꼈지만 항상 힘찬 유용자 목장주의 목소리에서만큼은 남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많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죠. 어떤 이들은 우리가 60대라서 동정의 눈으로 보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은근히 불쾌합니다. 20대나 60대나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나이 먹어서 못할 것은 없어요.” 참말로 인생사 새옹지마라 한다면 서울 울타리 내에서 이들 노부부가 의욕을 갖고 낙농을 영위하는 동안만큼은 더 이상 경영상의 압박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미 이들이 겪은 역정만으로도 받을 시련은 충분하니까... < 취재 : 이세연, 이용일 > ※ 서초목장의 목장주 사진은 목장주의 요청으로 게재치 않았사오니 많은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