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배를 탄 공동운명체 김 창 석 농축유통신문 편집위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젖을 짜기 위한 젖소를 도입한 것이 1902년으로 기록되고 있으니 우리나라 낙농사도 어언 1백년이 넘는 세월을 갈피속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낙농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60여 성상이 흐른 1960년대라고 보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8.15, 6.25를 거치는 동안 주로 미국에서 들어온 낙농제품(분유, 연유, 버터, 치즈)들로 인해 일부 소비층에 치우쳤던 우유관련 제품들에 대한 식품적 가치 인식이 일반 국민들에게 확산되고 이에따라 우유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공급부족 사태가 빚어지자 정부가 1962년부터 낙농업 발전 10개년 계획을 마련 본격적으로 젖소 도입에 나서게 된 것이다. 도입 첫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1천여두가 들어오고 매년 1천여두가 계속 도입되면서부터 낙농이 하나의 산업으로 어엿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필자가 경기도 화성에서 착유우 10마리를 확보하고 낙농업을 시작한 것이 1960년대 후반―.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야산을 전모씨와 둘이서 개간하여 길을 새로 내고 축사를 짓기 다섯달만에 배정받은 젖소를 축사에 수용하기 까지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 그림, 사진으로 보면서 그렇게 동경해오던 덴마크의 목가적인 풍경을 그리며 동화속에 나오는 주인공이 될 꿈에 등에 밴 땀냄새조차 그윽했었다. 그러나 젖소기르기는 그렇게 낭만적이지가 않았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똥치우기도 고역이려니와 꼭두새벽부터 양동이를 끼고 앉아 젖을 짜야하는 일(당시에는 착유기가 없어 손으로 착유를 했다). 방목한다고 소를 풀어 놓았다가 남의 밭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기가 예사며, 매일 납유를 위해 소달구지에 우유통을 싣고 10여리가 넘는 산길을 헤쳐가야 하는 어려움,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이면 길이 끊겨 며칠씩 납유를 못해 아까운 우유를 썩여버린 일(당시에는 냉장시설도 없었음) 등등 특히 일년이 넘도록 하루도 쉬어볼 틈이 없는 목부의 생활은 고생이란 모르고 손가락으로 물방울을 튀기면서 살아온 서울내기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련이며 고초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임신된 소가 새끼를 낳았을 때 느낀 생명의 경외감, 보름마다 서울우유조합에 가서 정산을 하고 푸짐한 먹을거리를 사들고 목장으로 돌아올때의 포만감 등은 그때까지의 고단함을 잊게하는 즐거움 이었다. 사정에 의해 약 3년간에 걸친 목장 생활을 청산했지만 지금도 당시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에 선연하게 그려진다. 7∼8년전엔가 용인시 사암에 있는 낙농현장을 취재하면서 ‘아 내가 그려왔던 낙농업이 바로 이런것이구나’하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드넓은 초지, 완벽한 축사구조, 깨끗한 위생시설, 냄새 안나는 분뇨처리과정, 거기에 덧붙여 저수지가 바라보이는 풍경 어느 하나 나무랄 것이 없었고 목장주인은 낙농업을 한다는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그 당당했던 목장 주인을 지난 8월 전국낙농인 총궐기대회에서 볼수 있었다. 낙농인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찼던 그의 표정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고 말이 아닌 절규로, 탄식으로 자신의 심정을 내뱉는 그는 결코 내가 그토록 부러워 했던 용인 사암의 낙농인이 아니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만들었는가―. 한때는 우유 및 유제품의 수요증가로 인해 유업체간에 원유쟁탈전을 벌여 원유가 까지 무시하고 웃돈을 얹어주거나 여러 가지 특혜를 주는 등 유통질서가 극히 문란해 집유고정화 조치라는 웃기지 않는 정책까지 등장했던 낙농업계가 이제는 쿼터제 시행으로 원유생산까지 제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과연 무엇이 잘못되서 일까? 또 지난 궐기대회에서 주요 타겟이 된 축산업등록제는 왜 밀어붙여야만 하는지 속시원한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낙농업계가 워낙 강하게 밀어붙여 간신히 얻어내긴 했지만 원유대인상도 기대치 이하이다. 7년간 사료대는 사료대대로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치솟아 경영여건은 악화일로를 거듭하는 동안 유대인상에 열쇠를 쥐고있는 유업체들은 외국산 값싼 분유를 들여다가 유제품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고 물가안정이란 미명하에 농축산물 가격을 붙잡아 매려고만 애썼던 정책 당국자들은 지금의 사태에 대해 무엇이라고 변명을 할것인가. 물론 우유소비가 줄어들고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은 밑바탕에 깔려있다. 생산조절제 시행으로 우리나라 우유생산은 크게 늘어나고 있지는 않지만 소비 감소의 폭이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 IMF때 보다 가혹하다는 불황탓도 있지만 우유소비 감소는 거의 필연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정부·유업체·낙농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먼저 화두로 떠올려야 한다. 낙농현안과는 거리가 먼 축산업등록제로 낙농인들을 핍박하는 정부대신 감소하는 우유소비 패턴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정부가 필요하고 값싼 외제 분유수입에만 목을 매다는 유업체 보다는 낙농인과의 한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소비자 기호에 부응한 신제품을 개발하여 우유소비촉진에 기여하는 유업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비자단체들도 국내낙농산업발전을 위해 학교급식확대 등에 더욱 동참하는 제 구실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격랑의 물결속에서 표류하는 주인공들인 낙농인들도 이 위기를 탈출해야할 공동의 지혜를 모으는데 적극 노력해야 할 것이다. 40여년전 화성의 산속목장에서 똥냄새도 마다않고 젖소에 울고 웃던 이름없던 청년의 바램 ‘낙농진흥’은 그렇게 해서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