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覇)감에 불과한 우리 축산업

 

김 성 훈

상지대 총장, 경실련 공동대표

 

1993년 12월 15일, 7년간 끌어오던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고 이듬해 4월까지 각 정부가 국별 이행계획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당시 최준구 회장을 비롯, 축산단체 대표들이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는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 자격으로 전국의 모든 시민·농민·소비자·환경·종교단체 186개 NGO를 이끌고 2년째 정부와 가트(GATT, 오늘날의 WTO 전신)를 상대로 UR 비상대책 범국민회의를 주도하고 있었다. 축산 대표들은 나를 만나 전국적으로 쌀 수입시장개발만 주요 관심사상으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축산문제는 별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잘못 오해했었다는 솔직한 고백을 털어 놓았다. 그래서 축산단체는 어느 하나 적극적으로 범국민 투쟁운동에 참여하지 않했던 결과, 막상 UR 농업협상정문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일본에 비해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우유, 유제품 등 이만저만할 손실이 더 클 것으로 예상돼 난감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일본이 얻어낸 쇠고기 수입개방 피해 억제 조치(Safe Guard)마저 지키지 못해 우리 축산산업의 앞날이 크게 걱정된다고 뒤늦게 후회하는 한탄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다시 2004년 WTO 쌀재협상이 재개되어 지난해 국회 비준 때까지 전국의 모든 농민단체들이 혹독한 추위를 무릅쓰고 동토의 아스팔트 데모 농사를 짓고 있을 때도 축산단체들은 직접관계가 없는 양 방관만 해왔다. 정부가 비밀리에 쌀협정 과정에서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양해했다는 풍문이 나돌고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양보한 조건이 이번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면서 우리 정부가 내놓은 4대 선결조건의 하나인 광우병 쇠고기 수입재개이며, 지금 추가 개방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인생살이가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며, 나와 직접 이해관계가 없으면 모른채 하는 것이 득” 이라 하지만, 지난 10여년간 수 차례의 추가적인 농업개방 협상 때마다 축산단체들이 보여준 대응방식은 눈앞(目前)의 이해(利害)에만 너무 집착한 모습으로 농업계에 더 깊이 각인되어 왔다. 옛말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 했듯이 입술이 없어지면 이(齒)가 시린 법이다. 경종(耕種)농업이 없는 축산이 없으며 축산이 없는 경종농업은 없다”는 것이 농업의 절대 진리이다. 고래로 자연순환농법에서는 유축(有畜)농업이 그 기본이다. 오늘날의 친환경유기농업의 원리 역시 유축농업에 의한 순환농법이 그 기본을 이루고 있다.

한미 FTA 협상이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정부가 스크린쿼터 축소와 광우병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했고 이를 우리가 수용했다는 것이 최근 대통령의 해석이었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지난해에 다 끝낸 “쌀수입 시장 추가 개방”과 “개성공단 제품의 국산품 불인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위 두 요구가 모두 사리에 맞지 않고 WTO 국제법에도 어긋나며 10년째 시행해온 국내법에도 저촉되는데도 왜 미국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지 그 속마음이 궁금하다. 협상초기에 정부가 이 두 사안은 협상대상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단호하게 거부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혹시 이렇게 엄포를 놓고 미국은 훨씬 더 이익이 크게 걸려 있는 각종 경제, 투자, 기업, 제도개선과 지적재산, 의약품 정책 개폐를 얻어내려고 하는 것일가. 그리고 자동차, 의료, 서비스 분야를 미국식으로 고치게 하자는 뜻일가. 이른바 옛 통전(通典)에서 말한 ‘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친다.)’, 또는 ‘도남의재북(圖南意在北: 남쪽을 도모함에 뜻은 북쪽에 두는)’ 전술인지, 아무튼 이 두 항목은 미국 측에는 하등의 손실이 없고 밑져야 본전 이상을 차지하는 “꽃놀이 패”임이 분명하다.

사실이 이러하니 오는 9월 노대통령 방미 시 “‘부시 일병이 노무현 일병 구하기’로 짐짓 꽃놀이패인 이 두 사안을 양보해주고 대신 더 큰 이익이 걸린 숙원사항들을 싹쓸이로 양보받아 타결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손익을 따져볼 길이 없는  일반국민들은 “와! 협상을 잘했다”라고 환호할지 모른다. 그렇게 언론들도 대서특필할 것이다. 마치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때 쌀을 지키려다 축산물과 다른 분야를 대폭 놓쳤듯이 이번에도 농업분야에 한정해 볼 경우 유제품, 쇠고기, 돼지고기, 감귤, 사과 등이 패감이 되어 피해를 보고, 그와 더불어 공공제도개선, 자동차, 의약품과 서비스업 역시 대폭 양보할지도 모른다. 무턱대고 큰 나라라면 사죽을 못쓰는 자칭 “보수”이자 돌림의 단체들과 일부 국민들은 환영할 확률이 높다. “아, 꽃놀이 패”의 즐거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