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제도개혁의 과제

 

조석진

영남대학교 교수

 

지난 2002년 6월 분유재고가 19,700톤에 달하면서 원유수급불균형이 심화되자 농림부는 낙농문제의 해결을 위해 ‘낙농산업발전대책협의회(낙발협)’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낙발협은 2003년 10월 제1차 회의를 시작으로 2004년 6월 제3차 회의를 마치기까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였다. 그 후 집유체계개편과 관련한 논의과정에서 진흥회농가의 직결전환과 관련한 기준원유량조정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낙발협을 ‘원유집유직결전환 및 기준원유량조정협의회(조정협의회)’로 전환하였다. 조정협의회는 2004년 10월에서 2005년 4월까지 4차에 걸친 회의를 마친 후 2005년 7월 다시 낙발협을 재가동하여 2005년 12월 현재 제4차 회의까지 마쳤다.

유감스럽게도 2003년 10월부터 2년여에 걸쳐 낙농문제를 논의해 왔으나 현재까지 근본적인 문제는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논의가 결코 시간낭비였다고 할 수만은 없다. 즉 원유수급불균형이 지속되는 가운데 낙농가와 유업체 모두가 이의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 왔다. 또한 이 과정에서 단일쿼터제의 실시가 불가피하다는 점에 대해 상당 부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단일 쿼터제를 중심으로 국제화시대에 부합하는 낙농제도개혁을 위한 협상 주체간의 이견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각자는 지엽적인 문제를 떠나 한국 낙농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양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언제까지 평행선을 달리는 서로의 주장만을 되풀이 할 경우 낙농산업은 안락사(安樂死)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낙농산업을 둘러싼 대내외적인 여건이 급변하고 있다. DDA 협상에 병행해서 한일 FTA가 진행 중이며, 최근에는 한미 FTA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본, 미국과의 FTA가 체결될 경우 장기적으로 낙농부문에 대한 영향이 가장 클것으로 전망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미일 양국과의 FTA가 체결될 경우 북해도산 시유 및 미국산 유제품의 수입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최근 환율하락에 따라 북해도의 대규모 낙농가의 우유생산비가 400원대까지 하락하고 있음을 감안할 때 그같은 가능성은 점차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낙농제도개혁을 둘러싼 논의를 되도록 빠른 시일 내에 매듭 짓고, 소비확대 및 경쟁력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낙농산업기반을 구축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다. 또한 이를 위해 유업체와 낙농가는 현재의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신 점차 거래교섭력을 강화하고 있는 대형 할인마트까지를 포함하여 낙농산업 구성원 모두의 상생을 위한 협조체계 구축에 적극 나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항상 소비자를 중심에 두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교급식을 포함하여 우유소비를 둘러싼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할 경우 낙농산업은 축소균형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달리 “우유는 완전식품이라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먹을거리 중의 하나이다”라는 사고가 점차 소비자를 지배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대체재의 증가, 출산율저하, 주 5일제 확대 및 노령인구의 증가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요인이 점차 소비를 압박하고 있다. 이 같은 시장의 변화가 유업체와 생산자의 의사결정에 신속히 반영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유통체계관리(supply-chain-management)가 불가피하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낙농산업 구성원 상호간의 정보의 공유를 통한 협조체계구축이 필수적이다. 갈등과 대립을 지양하고, 낙농현실에 대한 정확한 사실인식을 바탕으로 상생의 길을 모색하지 않는 한 국제화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낙농산업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나 낙농산업의 특성상 이 모든 것은 국제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낙농제도의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국제화시대에 어느 한 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거나 불리한 제도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자와 유업체는 현재 진행 중인 제도개혁 논의에 있어서 오늘의 어려움을 초래한 과거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납세자부담을 통해서라도 양자가 수용할 수 있는 제도개혁을 이끌어 내기 위해 과감한 정책결정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