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식량전쟁에 대비하는 공공재입니다.

 

정 재 돈

전국농민연대 상임대표(한국가톨릭농민회)

 

모든 주권국가는 자국의 안보와 사회 안정의 기초가 되는 식량을 자급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국의 식량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한 나라의 주식(主食)을 비롯한 먹을거리의 수입을 강요하는 일은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며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WTO(세계무역기구), DDA(도하개발아젠다) 농업협상, FTA(자유무역협상)의 지속적 추진으로 농산물의 개방은 점점 가속화되고 한국의 농업과 식량주권은 그야말로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오늘날 전국의 낙농가들이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도 한국의 농업과 식량주권의 위기상황과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낙농가라면 농민 중에도 으뜸농민 엘리트 농민이며, 낙농육우산업을 대표하는 우유는 국민 건강을 지키는 주요한 식량자원입니다.

그러나 혼합분유를 비롯한 유제품의 수입개방으로 인해 낙농가는 정상적인 경제생활조차 어렵게 되고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사료값은 아예 낙농을 포기하는 지경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당국은 2004년 발표한 「농업·농촌종합대책」에서 구체적인 세부계획도 없이 “유업체로의 직결체제 전환”과 “생산자와 유업체가 자율 협의하여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로의 개편” 이라는 것으로 시장경쟁원리에 따라 원유가를 조정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낙농말살정책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유는 식량자원으로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해 낙농선진국에서는 안정적인 공급량 확보를 위해 강력한 국경보호조치를 취하고 있는 형편인데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의 낙농가에게 원유가를 시장의 경쟁에 맡기라는 것은 정부가 낙농을 포기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얼마 전 영국 ‘옵저버’지에 폭로된 미 국방부 펜타곤 비밀보고서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20년까지 엄청난 기상재해로 인해 세계농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전 세계는 식량·물·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또한 식량 확보 전쟁을 위해 한국, 일본, 독일 등이 핵무기를 개발할 것이며 이미 핵보유국인 중국, 인도 등도 핵전쟁태세를 갖출 것임을 예상하면서 식량과 에너지가 부족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경고하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나온 미 CIA보고서는 곧 중국이 물 부족과 사막화 등으로 식량수입량이 대폭 확대되어 바야흐로 전 세계는 식량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 때문에 세계 농업과 에너지를 자기 손안에 넣기 위해 미국은 절대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침공하였고, 우리에게는 FTA를 통해 쌀을 비롯한 농축산물 수입개방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세계는 식량자원을 나라의 안보와 주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농업에 대한 투자는 민족의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선진국의 농업경쟁력은 농업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국과 EU 등이 자국농민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보조금과 온갖 직불제로 소득보전을 책임지는 것은 농업과 농산물이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 다원적 가치를 가진 공공재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정부당국도 지금 당장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서야합니다. 일본이 우유자급율을 2010년까지 75%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을 공표했듯이 우리 정부당국도 우유를 포함한 주곡, 잡곡 등 품목별 식량자급률을 법제화하여 일관성있는 농업중시정책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정부당국이 나선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낙농육우산업의 현안문제들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남아도는 잉여원유를 전량 수매하여 기초식량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북한에 어린이 학교급식 등 다양한 형태의 식량지원사업을 한다면 낙농육우산업의 활로를 찾는 동시에 남북간 교류를 통한 통일운동에도 기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올해 농업정세는 매우 엄중합니다. 2월 임시국회에 계류중인 ‘양곡관리법 개정안’, ‘쌀소득보전기금법’, ‘추곡수매가 4%인하안’, ‘농지법 개정안’ 등은 향후 농업정책의 골간을 바꾸는 중대법안임에도 제대로 된 심의도 없이 졸속처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올 12월에 홍콩에서 열리는 ‘WTO / DDA 제6차 각료회의와 농업협상’과 계속되는 국가간 FTA는 우리의 식량주권을 직접적으로 위협받고 있습니다. 낙농육우산업만 보아도 WTO/DDA 농업협상에서 강력한 국경보호조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우리나라의 우유시장이 무너지듯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개방정책에 속수무책으로 식량주권을 상실한다면 우리 민족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입니다. 이는 농민만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 농업전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모두의 힘과 지혜를 모아야합니다. 범국민적으로 단결하여 ‘우리농업지키기 범국민 식량주권연대’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방법이 없으면 찾고, 대안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반드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해야합니다. 왜냐하면 농업과 식량은 곧 나라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