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 외에도 줄기·잎을 한우 사료로… 5월 수확, ha당 250만원 수입
“농약없는 안전사료” 환영 육질 좋고 고기양도 10% 많아

[조선일보 김창곤기자]

전북 김제시 성덕면 호남평야. 지평선처럼 펼쳐진 보리 논들이 초봄 햇살에 초록을 더해간다. 농민 곽정호(56)씨가 10㎝쯤 고개를 내민 보리 위에 비료를 뿌리고 있다. 곽씨는 “유난했던 눈과 추위를 뚫고 보리들이 싹을 냈다”며 “봄볕에 쑥쑥 자라면 5월에 수확한다”고 했다.

거둬들이는 것은 보리 알곡만이 아니다. 줄기와 잎까지 모두 한우의 사료로 쓴다. 이른바 ‘총체(總體)보리’다. 이삭이 여물기 전, 수분을 50~60%쯤 머금은 5월 중순에 통째로 벤다. 보릿대째 600㎏ 무게로 둥글게 묶은 뒤 비닐랩을 씌워 공기를 차단하면 요구르트처럼 상큼하게 발효된다. 이렇게 보관했다가 소의 입에 맞게, 쌀겨·옥수수·콩껍질·맥주찌꺼기 등을 섞어 배합사료(TMR)로 가공한다.

“곡류는 물론, 건초까지 사료로 수입하는 마당 아닙니까. 총체보리는 외화 지출을 줄이면서 농가 소득을 높이고, 고품질 한우도 길러내는 효자 작목입니다.”(도홍기 전북도 축산행정과장)

식량으로서의 보리는 판로가 한계에 왔다. 그렇지만 전북에서의 총체보리 재배면적은 크게 늘고 있다. 3년 전 223㏊(1㏊는 약 3000평)이던 재배 면적이 재작년 1059㏊, 작년 3285㏊, 그리고 올해는 4493㏊로 급증했다. 총체보리 선호는 ㏊당 250만원쯤 소득이 보장되는 데다, 타작 일손이 들지 않고, 수확도 일러 벼농사를 압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11월 보리를 파종한 뒤 한 차례 웃거름을 주고 논물만 관리하면 한우생산단체가 기계로 베어간다.

총체보리는 알곡과 섬유질이 혼합된 완전사료이자, 농약 없는 안전사료여서 환영받는다. 섬유질을 충분히 섭취한 송아지는 칼로리 높은 곡물을 먹은 소보다 체구가 커서 고기 양도 10% 많다. 성장 단계에 따라 곡물 등의 함량을 달리하면 고기 품질도 우수하다. 농촌진흥청 축산연구소 김원호(43) 박사는 “총체보리 혼합사료로 기른 소 3마리 가운데 2마리는 육질 1등급 이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며 “사료비가 15% 절감되는 점을 감안하면 20%쯤 높은 소득이 보장되는 셈”이라고 했다.

당연히 한우 농가가 외면할 리 없다. 전북한우협동조합 300여 조합원은 총체보리 한우를 작년에 1만5000마리로 늘리면서 ‘총체보리 한우’라는 브랜드까지 등록했다. 25㎏ 규격에 4가지로 배합을 달리한 총체보리 사료를 한 달에 2000ｔ씩 생산하는 공장도 세웠다.

전북에서의 총체보리 재배 확대는 축산연구소와 전북도, 한우농가가 손잡고 이뤄냈다.

축산연구소는 IMF 금융구제 이후 외국산 사료용 곡물·건초값이 폭등하자 총체보리 사료화에 착안했다. 1998년 정읍의 논 10㏊에서 총체보리를 거둬 인근 농가 한우들에게 먹여 보면서 보관·가공·배합사료 제작 기술도 확립해왔다.

보리의 사료화는 농가 소득에 관심을 가진 전북도와도 이해가 맞았다. 도는 총체보리 재배설명회를 열고, 트랙터와 같은 수확장비 664대를 축산단체에 지원했다. 총체보리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투입된 사업비는 총 287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