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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호 권두언 <국내 낙농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이 되려면... >
관리자  /   2009-08-06 4710

권두언

국내 낙농산업이 지속가능한 산업이 되려면...

 

윤 성 식
연세대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한국유가공기술과학회 회장)

 

식문화적으로 보면 유즙(milk)은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식으로 이용하는 식품이다. 강우량이 부족하여 쌀농사가 불가능한 서아시아 지방에서 시작된 유목생활은 비가 적고 서늘한 유럽으로 이전되어 목축업으로 크게 발전하였고, 우유는 그들의 중요한 식품이 되었다. 우리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쌀밥과 된장국처럼 서양 사람들은 빵과 우유를 먹고 살아왔다. 우리들이 쌀밥을 먹고 배탈이 난 경험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 우유는 신이내린 생존의 식품으로 조상 대대로 이용하여 왔다. 서양 사람들의 체격이 우리보다 크고 체력이 강인한 것은 빵과 우유 그리고 고기를 주식으로 해온 그들의 식습관 때문이라 해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불과 50여년 전, 쌀과 보리를 주식해오던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로 지칭되는 가난과 궁핍 속에서 허덕여야했었다. 조상이 물려준 배고픈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이 땅에 젖소를 들여오기 시작하였고, 정부의 축산장려정책 덕분에 축산업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지금은 35조에 달하는 식품시장 중에서 유제품시장이 대략 5조원이나 된다. 과거에는 낙농업이 인기가 높아 1985년에는 젖소 사육농가가 약 43,000가구, 사육두수도 550,000여두나 된 적도 있었으니 현재의 7,200여 농가와 비교하면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늘 우유에는 “완전식품”이라는 최고의 찬사가 붙여졌고, 우유를 마시는 사람이 마치 부유층으로 인식되던 시절도 있었다.

 

이처럼 기아시대에는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최고의 식품으로 인식되었던 우유가 현대의 포식시대에 접어들면서 절대 먹어서는 안되는 유해식품으로, 심지어는 독성물질(toxin)로 혹평되는 사례까지 생기고 있다. 극히 일부의 학자들이 포함된 우유반대(항우유) 운동가(anti-milk activists)들은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면서 우유 및 유제품의 영양학적 진실을 왜곡하고, 과잉섭취에 따른 부작용을 마치 우유가 불량식품이나 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다. 특히 프랭크 오스키 박사(Frank A. Oski)가 쓴 “우유를 절대 먹지마라(Don't drink your milk: New frightening facts about the world's most overrated nutrient)”와 비고리타와 코헨(Brian Vigorita와 Robert Cohen)이 공동으로 펴낸 “우유-치명적인 유독물질(Milk-The Deadly Poison)”이라는 단행본에는 우유와 유제품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만약 우유가 해로운 식품이라면 전통적으로 우유를 먹고 살아온 서양 사람들은 평생 질병에 시달려야 할 것이고 평균 수명도 줄어들어야 할 것이다. 우유 위해론이 과학적 진실이라면 왜 지구상의 수많은 보건기구들은 침묵하고 있겠는가. 그들의 주장대로 거대 유가공기업의 로비 때문인가 묻고 싶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내에도 이러한 사람들의 궤변을 여과없이 들여와 대중 매체를 통하여 우유 유해론을 보도하는 일이 자주 생기고 있어 소비자들을 불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체된 국내 낙농산업을 위축시키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조직적인 항우유/우유거부운동이 유행병처럼 대중 속으로 퍼져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낙농업계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만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유가공제품이 외국산에 비해서 얼마나 위생적인지, 한국인의 건강에 영양학적으로 무엇이 긴요하고, 섭취량은 얼마가 적당한지, 우유소비의 최대 걸림돌인 유당불내증 등 대중의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나 서적이 별로 없음을 보면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근거없이 떠도는 항우유증후군(?)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낙농가와 기업 그리고 낙농학계가 긴밀하게 협력할 때가 아닐까?

 

필자는 얼마 전 낙농진흥회에서 주관한 오세아니아 낙농산업시찰단의 일원으로 뉴질랜드와 호주의 목장과 가공공장 그리고 낙농관련기관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세계적인 낙농국가인 이들 두 국가의 낙농체계를 살펴보고 다가올 한-뉴, 한-호 FTA 체결을 대비하는 측면에서 우리나라 낙농관계자들에게는 매우 뜻 깊은 행사였다. 아시다시피 뉴질랜드는 인구가 410만에 불과한 섬나라이지만 국민 한 사람 당 젖소 한마리가 있을 정도로 낙농업이 경제의 중심인 나라이다. 농가당 평균 130두의 젖소를 키우고 있고, 호주와는 달리 농후사료를 전혀 쓰지 않는 대신 방목과 철저한 계절번식을 통하여 번식과 원유생산을 조절하고 있었다. 회사에 속한 농가들은 리터당 3.4센트의 Levy(자조금 성격의 부과금)를 납부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정부의 주도하에 전국에 무려 168개에 달하던 소규모 조합들을 1995년도에는 13개로 합병시켰고, 그 후 정부기관인 Dairy Board와 기존 13개 조합의 합병을 유도하여 2001년에는 완전 사기업인 “폰테라(Fonterra)”라는 다국적 유가공회사를 출범시켰다고 한다. 사원이 11,000명에 달하는 폰테라사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세계 5대 유가공회사로 우뚝 서게 되었고, 생산품의 95%를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필자가 오클랜드에 있는 이 회사를 방문하였을 때 그들은 자국 유제품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지난 1990년대부터 규제철폐(deregulation)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우리 일행은 오클랜드에서 크게 멀지않은 도시 근교의 목장 한 곳을 방문하였다. 약 200에이커에 달하는 드넓은 목초지에 젖소들이 자연순환방식으로 방목 사육되고 있었고, 착유와 동시에 젖소별로 유성분 검사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유 품질(quality) 뿐만 아니라 위생 및 방역(biosecurity) 관리에 역점을 두고 경영하고 있었다.
한편 호주는 연간 우유생산량 9천2백만 톤 중에서 약 80%인 7천2백만 톤을 빅토리아주와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생산하고 있었다. 전체 우유생산량의 2%만이 국내용 시유로 소비되고 나머지 98%는 각종 유제품으로 가공되어 전 세계에 수출되고 있다. 자매국가인 뉴질랜드 낙농제품의 호주시장 접근을 허용함에 따라서 국내 낙농업의 규제 철폐와 구조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기존 가공용(manufacturing) 우유  및 음용유(drink)용 우유 생산자들에게 각각 levy를 부과하였고, 제품가격이 인상됨으로써 결국 소비자들이 부담하여 조성한 “국내시장 보조금(Dairy Market Support)"을 2,000년 6월까지 운용하다가 그 후에는 규제 철폐에 따른 대책으로 마련한 ‘낙농구조조정프로그램(DSAP)” 하에서 리터당 11 cents(120원 정도)를 음용류 판매에 부과하였다. 이렇게 조성한 기금은 2008년까지 호주 낙농업의 국가경쟁력을 끌어 올리는데 사용되도록 지원되어 왔다. 우리가 방문했던 워남불치즈 & 버터회사(Warrnambool Cheese & Butter Company)는 호주에서도 규모가 상당히 큰 기업으로 572개의 농가에서 원유를 공급받아 체다를 중심으로 한 자연치즈와 유청분말 생산에 주력하고 있으며, 외국 회사와 전략적인 제휴를 모색하고 있었다. 일찍이 1935년 미국 Kraft사와 업무제휴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네덜란드 Friesland Foods사와 합작을 추진했다. 호주의 낙농산업을 관장하는 Dairy Australia는 Melbourne에 위치해 있는 기관으로 호주 유가공 제품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호주 낙농조정국(DAA)의 행정적 지원을 담당하는 곳으로, 이 기관의 해외 마켓팅 담당자는 매달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우리나라 시장개척에 열성적이다. 그들은 미리미리 자유무역협정(FTA)에 대비하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들은 이렇게 분주히 국제적 시장 변화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경영이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낙농가는 낙농가대로 정부의 지원에 호소하고 있고, 값비싼 원유를 사다 유제품을 만들어야하는 유가공회사들은 치열한 시장경쟁으로 편할 날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낙농 패러다임을 언제까지 끌고 가야 하나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바야흐로 세계는 지구촌이 되어가고 있다. 국가간 상품 교역이 그 어느 때보다 빈번하게 이루어져 경쟁은 더 치열해 질 것이다.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가급적 여러 나라와 FTA 협정 등을 통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국산 공산품을 세계시장에 내다 파는 대신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여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을 허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내의 농업정책도 변화가 감지된다. 현 정부는 과거 농산품 생산중심의 정책을 가공중심의 식품(foods)과 하나로 묶어 “농림수산식품부”를 발족시켰고, 최근에는 축산과 관련된 농림부의 부서를 점차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농협도 구조조정을 통하여 축산관련 업무를 타 부서와 통합 운영하려고 준비 중에 있다. 이러다가 축산분야가 아예 없어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경제학에 해박한 정책입안자들은 “비교우위이론(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에 따라 원유생산비가 오세아니아 국가에 비해 2배나 비싸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우유를 비롯한 낙농제품을 수입하는 것이 국내 소비자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나라 농업, 아니 낙농업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국토가 좁아 농지가격이 비싸고 조사료 기반이 취약하여 세계의 곡물가격의 등락에 따라 국내 낙농업의 희비가 교차되는 우리의 가련한 현실을 보면서 앞날에 대한 근심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불황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국내의 당면한 낙농현안 중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챙겨야 할까. 다시 말하면 지난 시절 우리 농촌을 잘살게 해 줄 수 있었던 우리의 축산업이 FTA시대에도 도태되지 않고 지속가능한(sustainable) 농업으로 살아남아 장기적으로 안정된 낙농업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서둘러야 할 것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당면한 현안 중 우선순위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우리의 제반 낙농여건이 외국에 비해 열악하다고 하여 이 땅에서 생명산업인 농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본다. 개방화 사회에서 외국산 농산물 유입이 불가피하다 해도 식량안보는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생산하지 않으면 그들의 노리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솔직히 국내 낙농가를 생산비가 낮은 호주나 뉴질랜드로 이주시켜 값싼 원유를 생산하도록 할 수 없다면 국내 낙농업계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사료 확보를 포함한 원유 생산비의 절감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낙농제품이 국민의 건강한 생활에 중요하고 그 수요가 있는 한 이 땅에서 신선한 우유의 생산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생산성과 경제성을 고려한 안정적인 경영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하고, 가공업체 또한 외국산 수입 유제품과 시장에서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 어느 국가나 고민은 있다. 뉴질랜드도 섬유산업의 사양화를 예견하고 양을 전부 살처분 하고 젖소 중심의 낙농으로 개편하였다고 들었다.
진부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한국의 낙농은 낙농 선진국의 기술모방이 아니라 한국적 현실에 맞는 한국적 낙농산업으로 변천, 발전해 나아가야 한다. 외국에서 제조한 수입산 김치제품이 한국인에게 구미에 맞지 않는 다면 국내시장에서 팔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가공 제품 또한 한국인의 기호에 맞는 제품이 아니라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우유는 식품학적 속성상 생산과 가공이 바늘과 실처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 생산자와 가공업자가 대결구도가 아니라 우유라는 “공통의 선(善)”을 향하여 협력하는 가운데 우유의 생산, 연구 및 개발을 담당하는 고급두뇌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말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서 국내 낙농산업을 누가 선도해야 하는가. 지난 90년대만 해도 국내에는 약 30여개의 낙농관련학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동물자원학과나 바이오관련학과로 그 학과 명칭이 변경되었고, 학생들이 배우는 커리큘럼 또한 그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축산대학을 보유한 유수의 대학에서 조차 국내 낙농업을 사양산업으로 보고 낙농학이나 유가공학을 전공한 교수 채용을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우리 사회 최고의 교육기관이라 할 수 있는 대학에 낙농을 전공한 교수가 없다보니 배우는 학생도 별로 없고, 업계에서는 전공한 고급인력을 구할 수 없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이 이 지경이 되는 것을 국내 낙농업계에서는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대학에 설치된 응용학문은 관련산업의 지원이 없이 홀로서기가 거의 불가능하고, 산업체 역시 유능한 전문인력의 공급이 없다면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낙농산업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인재 양성이 반드시 필요하고, 대학에 대한 업계의 관심과 지원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경제여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후학을 키우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나라 낙농업이 지구촌화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2009년 11월호 권두언<선진 낙농산업 발전을 향한 새로운 역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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