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쩌지요? 글｜박창수 그림｜성주삼 비가 와서 답답한 속을 뚫어준 것 같어서 마음은 시원한데 홍수 피해를 본 사람들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속이 상하네유. 비도 너무 주책맞게 많이 쏟아져유. 안그려유” “농사 지으려면 비는 당연히 와야지. 요즘 물이 부족하다잖어.” “좋은 점도 있지만 여름철 한때 장사하는 사람들은 힘들 거 같어유. 거시기 우리 고향친구가 부산으로 시집 갔잖어유. 바닷가서 식당한다는데 비가 하도 와서 올 여름장사는 망친거나 다름없다 더라구유. 장마라고는 하지만 벌써 내일 모레면 8월인데. 지금이 한참 휴가철이잖어유.” “휴가도 좋지만 이놈의 세상이 시끄러워서 누군들 맘 편하게 쉬겄어. 경기는 좋아지고 있다는데 서민들은 눈꼽 만큼도 좋아진 게 없는데다 국회는 늘 치고 받으며 저 모양이고 말여.” 시골에 사나 도시에 사나 대한민국 땅덩어리 안에 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경기 안좋고 정치싸움은 허구헌날 지속되는 이같은 상황에서 어디 사는 누구인들 마음 편할 리가 없으니, 민자씨 부부도 속상하기로는 매한가지였다. 자신들이야 나이 육십 아래 위로 당장 어디 취직을 할 일도 아니고 그럭저럭 목장 지키면서 먹고 살면 되지만 한창 일하는 나인인 30대 두 아들을 생각하면 걱정스러울 뿐인 것이다. 게다가 이틀 전 민자씨는 작년에 결혼한 여고동창생의 딸이 이혼했는데 이혼 사유가 너무도 기가 막혀서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돈 많고 직업이 치과의사라고 해서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불경기 여파로 병원이 제대로 안되어서 거꾸로 빚만 3억 이상을 진 상태이고 많다던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빛 좋은 개살구 꼴이라는 것이었다. 때문에 아직 애라도 낳지 않았을 때 이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친정엄마가 나서서 이혼을 시켰다는 거였다. 돈과 명예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렇지 단지 돈 많고 의사라는 것 때문에 결혼해놓고 1년 만에 다시 이혼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게 민자씨의 생각이었다. 여자들 남 얘기 하기 좋아하니 소문은 또 얼마나 빠른가. 어떻게 알았는지 이번에는 강원도 산다는 춘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민자야 너 그 얘기 들었냐? 서울 영숙이 딸 이혼했다잖어.” “아이구. 여편네들 소문은 빠르구먼. 뭐 좋은 일이라고 다들 그렇게 말들이 많은겨” “영숙이 그것이 얼마나 코를 들었냐. 돈 많은 의사 사위 본다고. 참 묘한 일여. 그러니까 옛말에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잖어. 나도 우리 막내 딸 시집 보내야 하는데 큰일여. 아무한테나 보낼 수는 없고 말여” “딸은 엄마 팔자 따라가는 거여. 니가 시집 잘 갔으니까 잘 가겄지 뭐. 니 딸 얼굴도 이쁘더구먼.” “영숙이 딸은 뭐 못생겼냐? 허기사 소문에는 눈 코 턱 다 뜯어 고쳐 줬다는 말도 있긴 하더라만.” “나는 딸이 없어 잘 모르겄다만. 부모들이 더 문제여. 아니 결혼을 했으면 서로 노력해서 잘 살도록 도와주고 잘못하면 혼도 내고 그래야 하는 거 아녀. 그런데 요즘은 이혼도 부모들이 더 앞에 나서서 부추기더구먼. 참고 사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거라구. 돈 없다고 갈라서면 사업 실패했거나 직장 짤린 놈들은 다 이혼 당해야겠네. 부부가 마음으로, 정으로 사는 거지. 돈만으로 사는 건 아니거든”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는 말인데. 요즘 세상이 어디 그러냐. 돈 앞에서는 똑똑하고 잘난 놈들도 다 똑같더구먼. 그런 거 보면 참 요즘 애들은 우리네처럼 부모 마음 아플까봐 싸워도 싸웠다는 말 한번 못하고 아무리 속이 상해도 자식 바라보면서 참고 묵묵하게 살지는 못할 거여.” 애 낳아서 키우다가 이혼도 잘하는 요즘 젊은 부부들 보면 민자씨도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면서 늘 노심초사 자신의 두 아들만은 그런 일이 없길 바랄뿐인 것이다. 어쩌다 며느리의 전화 목소리가 시원찮기라도 하면 걱정이 앞서는 게 시어머니인 그녀의 마음이다. 언젠가 한번은 큰 며느리가 시집온 지 석 달도 안되었을 때 전화로 하는 말이 “어머님 글쎄 오빠가 좀 이상해요. 회사 여직원하고 너무 친한 거 같아요. 그래서 .....,” 라고 하는 거였다. 부모는 누구나 다 자기 자식이 최고라고 믿지만 민자씨는 그런 차원을 떠나서 큰 아들이 워낙 성실한 편이어서 결혼한 지 세 달 만에 바람을 피운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래서 그날 당장 서울 아들 회사로 찾아가 이실직고 하라고 다그쳤는데 결과는 참으로 싱거웠다. 큰 아들은 일하면서 워낙 다른 직원들을 잘 도와주고 챙겨주는 편이라서 가끔씩 여직원들이 고맙다는 표시로 책 같은 선물을 사서 주곤 하는데 이런 선물을 보고 그만 며느리가 오해를 한 것이다. 그때 민자씨는 며느리를 앞에 앉혀놓고 따끔하게 혼을 냈었다. “부부는 서로 믿고 사는 사람들여. 니들 둘이 서로 믿지 못하면 그게 무슨 부부여. 나 여태 젖소 키워 두 아들 키웠지만 우리 애들 정신만은 지대로 박힌 애들로 키웠다. 한번 더 이런 불상사 일어나면 그때는 차라리 갈라서라. 허구 헌날 신랑 의심하고 살면 니가 더 괴로울 거여. 안그려?” 이 말에 며느리는 잘못했다고 빌고 울고 그랬다. 그리고 그 후로는 둘이 싸우고 지지고 볶든 부부 문제로 전화가 걸려오는 법은 없었다. 날이 후덥지근하더니 다시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텃밭에 가서 열무나 뜯어다 김치를 담그려고 했는데 장대비가 퍼부어 우비를 입고 나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다. 축사에 나가려던 남편도 천둥소리에 번개까지 치는 것을 보고는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고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이제는 비도 그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민자씨는 남편 좋아하는 파전이나 하나 부쳐보려고 막 일어서는데 그때 또 전화가 울렸다. 작은 며느리였다. “어-머-님! 어쩌지요?” “뭔 일여.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여.” “아이고 이거 말하기 좀 창피하기도 하고 그래요.” “아니 무슨 일인데 그려. 작은 애 한테 뭔 일 있는겨.” 갑자기 영숙이 딸 이혼 얘기가 떠올라서 혹시 작은 아들 부부도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오는 게 아닌가? “니들 싸웠냐? 작은 애 성질이 좀 급하니까 니가 좀 참지.” 하지만 그 다음 며느리의 대답에 민자씨, 그야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머니 저 병원 갔다 왔는데 쌍둥이래요. 어떻게해요. 저 혼자서 못 키우는데…” “그 말이 참 말여?” 민자씨 내외는 그간 결혼한 지 2년이 되었는데도 작은아들에게 애가 없어서 걱정을 하던 터였으니 이건 즐겁게 기절 할 일 아닌가? 장대비 보다도 더 화끈하게 그녀의 답답한 속을 개운하게 풀어주는 특보였던 것이다. 순간 민자씨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여보 쌍 -쌍둥이래유. 하 - 하 -하 -하” 그날 오후 민자씨 부부는 빗속을 뚫고 서울 작은 아들네 집으로 달려가 며느리를 차에 태우고 내려왔다. 쌍둥이 낳으려면 먹는 걸 잘 먹어야 하니까 몸보신이라도 시켜주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