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소농이 흔들리면 농업도 위태롭다

 

성 경 일
강원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교수

 

1. 생산주도형의 농업

 

농업은 오랫동안 자연과 공생하면서 지속가능한 산업으로서 전개되어 왔으며, 토양이나 수질 보전, 보건휴양, 국토의 경관유지 등 다양한 공익적인 기능을 해왔다. 그러나 20세기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대량의 식량생산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농경지·가축의 규모확대, 생산성증대, 작물·가축의 품종개량, 재배·사양기술의 개선, 화학비료·농약 등의 화학자재 사용, 에너지 다량 투입에 의한 기계화, 시설화 등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이러한 농업의 규모화, 집약화 및 공업화는 60억명 세계인구의 생존을 기본적으로 보장이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생산주도의 농업활동은 생태환경에 부하가 걸려, 결과적으로 지구환경을 악화시키고 파괴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삼림, 초지, 습지 등을 개간하여 생겨난 농경지의 확대는 지구온난화나 야생동식물의 멸종을 초래하고 있고, 과도한 토지이용은 토양침식과 사막화를, 부적절한 관개는 토양의 염류화 피해를, 단작이나 연작에 따른 화학비료나 농약의 과도한 사용은 수질오염과 지하수의 고갈이나 식품의 안전성까지 위협하고 있다. 또한 농업생산력의 저하와 농촌사회의 폐허는 도시로의 인구집중을 가져왔으며 도시의 과밀인구로 인한 심각성은 항상 사회불안요소로 존재하고 있다. 지금도 세계 10억의 인구가 기아상태에 있어 식량의 증산은 농업이 해야 할 사회적인 책무이지만, 농업의 집약화, 공업화 및 규모확대와 같은 지금까지의 생산방식을 고수하는 한 지구환경의 파괴나 지구온난화는 가속화되어 저탄소녹색성장을 위한 지속가능한 농업은 불가능하다.

 

2. 안전한 먹거리

 

국민이 농업에 기대하는 것은 안전하고 안정적인 식량공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식생활은 윤택해지고 편리해졌지만, 우리의 먹거리와 식생활이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식품첨가물이나 잔류농약, 식중독 및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불안, 허위상표 등 식품위생관리에 대한 불신 그리고 인수공통전염병의 증가 등 먹거리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과 불신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먹거리인 식품의 부가가치는 브랜드상품화나 명품화 등의 차별화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안전성에 의하여 확보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식품의 안전성은 생산·유통측면에서의 안전성확보를 위하여 취해지는 각종 조치와 식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의식개혁에 의하여 크게 개선된다. 소비자는 벌레 먹은 농산물은 기피하고 겉으로 보기좋고 매끈하게 만들어진 농산물을 선호한다. 또한 농작물의 특성에 맞는 풍토를 찾아 거기에 적합한 작물을 재배하여 생산된 농산물은 무시하고 명품으로 포장된 농산물을 선호하는 등의 소비성향은 결국 농약과 화학비료 등의 다량사용을 생산자인 농민에 강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보다 넓은 의미에서 먹거리의 안전성은 독성, 병원성, 이물질의 혼입을 막는 것 뿐만 아니라 음식의 섭취로 인하여 보다 건전한 심신의 활동이 보장되고 풍요로운 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먹거리는 지역과 민족 등에 의하여 그 풍토에 적합한 기술로서 생산되며, 그것이 오랜 시간동안 축적되어 고유의 문화를 형성한다. 따라서 먹거리가 균일화나 획일화된 상태로 생산되거나 특정지역에서의 집중 생산되는 규모확대 중심의 지금의 농업생산방식은 지역이나 국가 고유의 문화적인 다양성을 상실하게 하여 건전한 사회를 이룰 수 없게 만든다.

 

3. 국가 농업정책의 근간

 

농업이 지금까지의 시대를 넘어 이룬 최대의 역할은 첫 번째가 인간의 생존과 생활을 위하여 식량과 생활자재를 공급하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데 공헌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인간의 생활 활동에 필요한 대상과 장소를 개척하고 확대하는 역할을 들 수 있다. 즉 자연을 이용하여 동식물이나 미생물의 기능을 개량하고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확대, 재생산하였으며, 지역사회를 형성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세 번째는 생물자원이나 생태계의 유지 및 관리, 지역의 각종 자원을 순환적으로 이용하여 환경보전과 환경개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3가지의 역할은 상호 유기적이고 보안적인 관계에 있어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으며, 어느 하나가 붕괴된다면 같이 공멸하는 관계에 있다. 이러한 농업의 역할은 21세기에서도 농업활동의 핵으로서 계승,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농업에서도 규모를 확대하여 조직화, 전문화, 집중화 및 균일화하면 농촌과 농민이 잘 살고 우리 고유의 농촌의 문화를 유지하며 발전 계승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절실히 필요하다. 농업도 분명히 일반적인 경제성장의 경우처럼 세계화나 글로벌 경쟁 속에서 과학기술과 전문화를 통해 크고(규모화), 높고(높은 생산성) 빠른 성장이 보다 많은 풍요로움을 제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졌으며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도 부인하지 않는다. 다시 강조하자면 농업도 분야/품목에 따라 규모확대, 경쟁력강화, 조직화 등의 모습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업의 생산과정에서 석유나 각종 원료자재를 다량 투입하여 많은 먹거리를 제공하여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준다고 해도, 이미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흔히 말하는 환경오염과 농촌붕괴나 문화상실 등의 인간성 파괴라는 극복하기 힘든 부산물을 남긴다면 냉철한 자세로 꼼꼼히 지금의 농업을 재검토해야 한다.
국가 농업 정책의 근간이 “농업의 기본이 되는 토지를 소수의 대규모농가(상업농)에 집중하여 국제경쟁력에 견딜 수 있는 근대적 기계화 농업을 확립하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농업이 수행해 온 다양한 역할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경제 합리주의 입장에서 보면 생산효율이 낮은 농업에 규모확대, 기계화 등의 고도의 수단을 도입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을 향상시키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정되어 있는 면적의 농지에 고도의 수단을 도입하는 순간 지금까지 같이 농사를 짓고 아름다운 농촌을 지키며 동고동락하던 나의 이웃인 소규모 농가는 망할 수밖에 없게 된다. 즉 어느 날 소규모 농가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피할 수 없는 경쟁에서 밀려 패자가 되어 버린다. 현대농업에서 생산성을 추구하고자 규모화를 하면 할수록 소수의 기업농민만 남게 되며, 그들만은 배불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 대가로 대대수의 패자를 만들어 또 다른 사회적인 문제를 만들어내고, 농업이 기여하는 지속성/영속성이라는 소중한 특질과 우리의 농촌의 다양한 가치는 점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4. 농업의 다양한 역할

그래서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다르다. 그래서 농업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때 그 가치를 발휘한다. 독일의 슈마허는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소비하는 일은 우리 문명을 위태롭게 하지만 주변의 살아있는 자연을 낭비하는 일은 우리의 생명 자체를 위협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농업은 살아 있는 자연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낭비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농업은 식량안보와 국토보전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다운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생명산업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농업의 다양한 역할을 누가 어떻게 할 것인가? 생산자와 소비자인 국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그중에서 우리가 새롭게 들여다봐야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작은 것”이며, 규모가 작은 “소농”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작은 것이 합당한 곳에서는 작은 것이 미덕임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즉 소농이 적합하다면 소농을 육성하는 의식전환과 정책이 요구된다. 모든 지역이나 국가의 농업이 미국이 되거나 일본이 되거나 네덜란드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슈마허는 그의 저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작은 것은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효과적이며 편하고 즐겁고 영원하다고 강조하면서 규모확대, 거대화, 조직화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 뿐인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 작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것이 농업에서는 소농일 수 있다. 일본의 쯔노 유킨도는 그의 저서 “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 왔는가” 에서도 소농은 농업의 본래의 특성과 풍토를 살리며 지역농업의 활성화에 기여하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저서를 번역한 역자의 후기에 있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농학계 교수인 나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요즈음 각광받고 있는 환경농업이라는 것도 경쟁과 수출을 전제로 한다면 이미 환경농업일 수 없으며,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라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 실천방법은 가족형 소농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 허물어져가는 우리나라 농업이 이 지경으로 될 때까지 농업을 운위하며, 호구지책을 해결해 이 나라의 넘쳐나는 농업전문가(공무원, 연구자, 대학교수, 공사직원 등)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즈음에서 지금까지 우리 농업의 발전을 위해서 신념을 갖고 개발한 다양한 기술연구가 오히려 인간이나 자연환경에 피해를 주는 것은 없었는지, 과감히 돌아보아야 한다. 만약 피해를 주었다면 그 대안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제대로 된 21세기 농업을 재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의 문장도 우리 농업의 모든 문제와 해결해야할 방향을 함축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어느 책자에서 인용하였다. “세계화의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일터를 지키고 있는 농민에게 복을 주시어 그들이 일상의 일들에서 자연생명의 신비를 체험하며, 저희와 땅을 살리는 그들의 수고가 이 사회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게 하소서” 그 대안의 하나가 소농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다음 호에는 소농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