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낙농산업,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만들자 하 석 건 지역아카데미 기획연구이사 지난 10월 하순에 낙농육우협회 여성분과위원회 회원들과 함께 프랑스와 독일에서 연수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낙농분야에 전문지식과 관심이 부족했던 필자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 낙농산업의 발전에 숨은 공로자들인 여성낙농인들의 열정과 실력에 존경과 격려를 보내고 싶다. 새로운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은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와 열심에 달려있기에 위기의 시대에 여성낙농인들에게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고 하겠다. 위기의 본질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는 이제 실물경제로 번져서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 낙농산업은 원자재 가격과 사료 가격의 상승이라는 난관을 넘기는 가 싶더니, 이번에는 금융위기라는 거대한 파도를 만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사료가격의 상승은 생산자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이번 금융위기와 경기침체는 우유의 소비수요 감소를 불러오기 때문에 생산자가 대응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좁아진다. 이번 경제위기가 낙농경영체의 경영상황과 낙농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서둘러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가서는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낙농산업을 도약시키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위기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위기는 표면적으로는 금융자산의 거품이 붕괴되고, 무역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21세기의 새로운 지식산업 사회로 진입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경제와 사회전체의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잘 읽어내야만 낙농경영체들은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 지금 요동치고 있는 변화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자본시설과 자연자원보다 지식과 정보, 즉 사람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가치의 원천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은 우리에 비해 엄청나게 큰 규모의 초지와 농토를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자연조건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생산기술과 경영역량의 혁신, 생산자들의 연대와 단결, 낙농산업 전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 생산자단체, 가공 및 유통사업자 단체들의 파트너십과 같은 사람과 조직의 역량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마도 프랑스와 독일은 불리한 자연조건에서도 낙농산업을 오늘의 수준까지 끌어올린 우리 낙농경영체들의 역량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의 시대는 “사람의 능력” 즉 “지식과 조직의 역량”이 경쟁력과 가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명품과 표준상품이 양극화되면서 공존하는 한편 지구촌 경제가 통합되고, 새로운 사고를 가진 젊은 계층과 수명이 연장되면서 늘어난 고령층이 공존하는 등 혼돈스럽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질서를 향해서 나가는 전환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이 소멸되고 흑인이 미국대통령이 되면서 획일적인 힘과 사고방식이 다원화된 세력과 사상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서 기존의 금융시스템이 새로운 변화의 힘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대형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다. 성공은 위기의 어머니 국가나 기업의 위기는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구가하고 있을 때 그 내부에서 위기는 이미 잉태되고 있기 마련이다. 미국이 신의 영역을 넘어서는 오만과 자기 과신에 빠졌을 때 이미 위기는 잉태된 것이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다. 한 국가나 경영체가 위기에 빠지는 원인은 성공을 가져다준 시스템이나 사업모델에 지속적으로 의존하려는 안일함에 빠진 채 자발적인 변화를 게을리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새로운 경제환경과 사회변화를 만나면서 마찰이 생기고 위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낙농업계는 다른 농업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있고 합리적이면서 창의적인 면을 많이 보여준다. 그러나 낙농업계의 다양한 주체들은 위기의 본질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근시안적인 안목을 가지고 낙농산업의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낙농가들과 유업체들, 그리고 유통업체들은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키려는 이기주의의 대립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에 나름대로 성공을 경험했던 생산과 경영방식 그리고 시장구조가 향후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산업과 시장은 성공과 위기를 반복하면서 성장해나가는 본질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원유가격이 비싸면 수입으로 전환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낙농산업 전체가 몰락해도 자신은 예외일 것이라고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시장과 산업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 것이다. 국내 우유생산과 낙농산업 기반이 몰락하면 제품과 시장의 혁신은 사라지고 따라서 소비수요 기반과 제도적 기반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수입도 의미가 없어진다. 구멍가게 수준이면 몰라도. 낙농경영체들은 다른 농업부분에 비해 큰 규모의 투자와 자산을 운영하면서도 경영마인드와 경영관리체계는 여전히 낙농가, 즉 기업이 아닌 가족농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농기계와 장비를 새로 구입하기 위해 면밀한 경영분석은 고사하고 구입한 농기계와 장비들을 깔끔하게 관리하는 경우도 드물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관리된 회계장부와 경영분석 자료가 있어야하는데 쉽게 보이지 않는다. 우유수급은 불균형이고 사료가격과 원자재가격은 오르는데도 여전히 최대생산이 최고수익을 보장한다는 생각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가치의 상승으로부터 얻어진 수익과 낙농경영으로부터 얻어진 수익이 혼돈되면서 낙농업의 경쟁력은 불안에 빠진다. 그러나 나름대로 성공했기 때문에 이러한 과거의 방식과 경험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중요한 자산이라고 믿고 있는 경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게 만들고 위기를 자초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위기는 성공의 어머니 경제발전과 경기변동이론을 창시한 죠셉 슘페터라는 경제학자는 위기를 극복하는 힘은 “기업가 정신”이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영방식, 새로운 상품을 개발해서 기존의 틀을 바꾸는 혁신(Innovation)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기업가의 역량”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 만나고 있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해오던 방식에서 과감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업가적인 도전정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기존의 방식에 얽매여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기 어렵지만, 생존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 위기상황에서는 변화를 추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위기 때는 견딜 수 있는 세밀한 대책을 세워서 실천에 옮기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회복의 시기에 대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살아남은 자는 이른바 “생존의 효과”라는 도약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즉 위기동안 아무생각 없었던 기업과 새로운 호황기에 준비가 미흡했던 기업들은 시장에서 탈락하는 반면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고 준비했던 기업들은 경쟁자들이 사라진 시장을 독차지하게 된다. “생존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위기를 잘 극복해야 한다. 불필요한 비용과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현금자산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위험을 잘 관리해야 한다. 호황기에는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사고나 손실이 불황기에는 농장의 운명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바짝 졸라매고 사업과 주변을 치밀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한 자심감과 두려운 마음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 희망과 긴장, 생존과 죽음, 성공과 실패가 교차되는 상황과 마음에서 가장 창의적인 사고와 영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친목모임이나 행사 등에 참여를 자제하고 사업경영에 집중해야 한다. 위기의 터널을 벋어났을 때 도약을 준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낙농인들이 “낙농경영체”의 경영가라는 사실을 재인식 하는 것이다. 농장을 하나의 경영체 또는 기업으로 인식하고 경영전략과 경영기술을 경쟁력의 핵심으로 받아들이는 기업가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인식위에 경영상황을 체계적으로 진단하고 경영목표와 경영전략을 정비해야한다. 깔끔한 사무실을 준비하고 서류와 장부들도 정돈하면서 농기계와 장비들도 목록을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효율적인 경영판단을 도와줄 뿐 만 아니라 집중력을 향상시켜준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에서 벤치마킹해야할 중요한 부문이 바로 이러한 기업가적인 마인드와 체계적인 경영관리 기술에서 얻어지는 경쟁력이다. “생존의 효과“를 얻기 위한 두 번째 요소는 목장들 간의 사업협력, 합병, 인수 등과 같은 방법으로 규모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경쟁요소들은 식품안전, 위생관리, 노동비용 절감을 위한 기계화, 유가공을 통한 부가가치 향상 등으로 대부분 고정투자를 요구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투자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규모의 경제성과를 통해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소규모 개별 농장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렵고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일정 지역 안에 위치한 낙농경영체들간의 사업협력을 통해서 규모화를 달성하고 필요한 경우 경영체를 합병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예를 들자면 요즘 유행하는 ”치즈“ 가공시설의 경우도 여러 농장들이 공동으로 투자해서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소규모의 여러 낙농경영체들이 합병을 통해서 규모화를 갖춘 새로운 농장시설을 만드는 계획을 구상할 수도 있다. 그밖에도 많은 창조적인 방법과 전략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장점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낙농업계의 협력관계 구축이다. 미래의 경쟁력 확보는 사료공급과 원자재에서부터 생산, 가공, 물류, 유통에 이르는 이른바 공급체인 (Supply Chain)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데 달렸다. 따라서 공급체인 안에 존재하는 경제주체들, 즉 사료 및 원자재 공급자, 생산자, 유업체, 물류회사, 유통업체 등은 상호간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이해관계의 충돌을 협력관계로 전환시키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생산자의 이익과 유업체의 이익은 제로섬 관계, 즉 한 쪽의 이익이 다른 쪽의 손해로 인식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이러한 대립관계를 지속한 산업계는 모두 망했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한 산업계의 전체공급망에 있는 다양한 주체들이 상호간에 협력적인 노력을 통해서 시장의 안정과 산업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취약점은 바로 이러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협력과 건설적인 경쟁관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낙농육우협회는 당면한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협회는 별도로 전문 연구소나 “위기관리본부”를 설치해서, 낙농산업과 관련된 경제여건과 시장동향을 면밀히 관찰하고 회원들의 상황에 대한 정보수집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유업체, 유통업체들은 물론 정부당국과 긴밀하게 협의해나갈 수 있는 위기관리 채널을 마련해서 향후 상황들을 전망하고 각각에 따라 필요한 대책들을 미리 검토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이번 위기를 계기로 우리 낙농산업 시스템을 우리 실정에 적합하게 선진화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새로운 전략과 변화를 추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말연시의 각종 관련 모임과 행사는 효과적인 “위기관리”를 중심으로 긴장감과 희망이 공존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뤄지기를 기대한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모아 위기를 다스리고 미래를 준비한다면 우리 낙농산업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